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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도 해주지 않는 따뜻한 점심을 차려 주시던 작은어머니, 왜소한 체격에 많은 농사를 지으시며 양자로 간 우리 아버지 생신 잊지 않고 기억하셨다. 쌀밥은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던 시절에도 여름이 생신인 아버지를 위해 작은어머니는 쌀 한 자루 머리에 이고 십리 길을 걸어서 오셨다. 우리 어머니 대신 제사까지 떠맡아 살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으셨다. 눈물 콧물 흘리며 청솔가지 지펴 가마솥에 보리밥을 짓던 어머니는 작은어머니를 반갑게 맞으셨다. 말수가 적은 작은어머니는 별 말씀도 없이 쌀 한 자루 마루에 내려놓고 찬물로 목을 축이고 해거름한 저녁 온 길을 재촉해 가셨다. 작은어머니가 바쁘실 때는 사촌 오빠 언니가 쌀이며 사과를 나눠가지고 아버지 생신에 왔다. 쌀과 사과에서 아버지를 공경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제사 때가 되면 오빠들과 쌀밥 먹으러 작은집에 갔다. 작은어머니는 싱거운 제사 음식처럼 큰소리 내지 않고 조용조용 밥상을 차려 주며 “밥 많이 먹어” 하며 이것저것 갖다 주고 나서야 밥을 드셨다. 우리 어머니처럼 일도 시키지 않아 사촌 언니가 부러웠다. 읍내에 있는 작은집은 어리시절 낯선 읍내에 갈 때 의지가 되었다. 추운 겨울 작은집에 들르면 작은어머니는 손 녹이라고 화롯불에 고구마를 구워 주시며 몸을 녹이고 가라고 아랫목을 내 주시는 자상한 분이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 친정에 갈 때면 빼놓지 않고 작은어머니를 보러 간다. 인사만 하고 나오려고 하면 “감자떡 만들어 먹고 가” 하시며 마른 고추며 마늘을 아까운줄 모르고 주셨다. 그러셨던 작은어머니가 어느 날 머리를 자르고 나를 알아보지 못하시더니 갈 때마다 엉뚱한 소리를 하신다. 딸보다 더 자주 찾아가는 나를 그렇게나 좋아 하셨던 작은어머니가 초췌한 모습으로 우두커니 서서 먼 산을 바라보신다. “작은어머니, 저 왔어요” 하며 두 손을 잡자 얼른 뿌리치며 “왜 이래요? 누구세요?” 한다. “나 종순이에요!” “종순이? 몰라요”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지 머리를 때리며 “왜 이렇게 안 죽는지 몰라” 하신다. 너무도 안타까워 물수건으로 손과 발을 닦아 드리자 “왜 이래요? 내버려둬요” 하시며 조카딸도 못 알아보시는 작은어머니, 윗목에 차려진 치매노인의 밥상이 초라했다. 어린아이 간식처럼 삶은 감자며 계란찜이 차려져 있었다. 사촌 오빠가 일을 가며 차려 놓은 모양이다. 치매에 드신 작은어머니는 나를 요양보호사인줄 알았을까? 그런 작은어머니 내년까지 살아 계실지. 점심 때 따뜻한 밥 해주는 사람은 작은어머니 밖에 없었는데. 나는 따뜻한 밥 한 끼 지어드리지 못했는데. 작은어머니는 들판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가을걷이 할 고민을 하고 계신 것일까? 되돌릴 수 없는 세월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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