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i김천신문 |
기쁘게 맞이해야 할 9월 정기 승진 인사를 앞두고 좀 색다른 걱정을 하게 되었다. 이 시기쯤 되면 대개 골프하고 중형 이상의 자동차를 버젓이 몰고 다니는 것이 일반적인데 경제 사정이 여의치 못하기 때문이다.
골프는 안 하면 그뿐이지만 자동차는 나날이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라 소형차를 몰고 새로운 직장에 출근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에 주눅이 찾아든다.
그래서 지금 소형차는 아내가 가지고 대출을 내어 중형 중고라도 구입하자고 제의해보지만 아내는 번번이 “당신 운전 실력에는 소형이 딱 알맞아요!” 하며 반대를 한다. 사실 나는 운전 감각이 둔하고 주차할 때도 헤매는 경우가 많은 게 사실이다. ‘그래, 그렇게 하지’ 해 놓고도 그 마음이 또 작심삼일이다.
이 무렵 사서 선생님을 통해서 ‘여덟 단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자존, 본질, 견(見), 권위 등의 주제로 조곤조곤 들려주는 저자의 말에 ‘그래 내 생각대로 살자!’ 다짐을 하곤 했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나면 과연 내가 다른 사람들의 이목으로부터 당당하고 자유스러워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으로 또 망설여지는 것이었다. 그 책에서 들려주는‘남과 다르면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드는 환경에서, 또한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자존을 싹 틔우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는 말은 필자를 위한 격려인 것만 같았다.
나아가 그 책의 저자는 계속 필자를 설득해 주었다. 결국 해결점은 과감하게 자존과 본질을 살리는 길이라고. 그러한 선택은 ‘중심점을 내 안에 찍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며 바깥의 기준선에 휘둘리지 않는 데서 지켜지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어느 정년퇴임하신 교수님의 저서에는 어떠한 선택 앞에 놓일 때마다 이런 기준을 내세운다고 소개되어 있다.
“내가 주도적으로 하는 선택인가, 내가 살아온 삶이나 앞으로 살아갈 삶의 본질을 해치지 않는 선택인가를 물어 하나라도 ‘아니다’는 답이 나오면 그 선택은 하지 않는다.”
참으로 명쾌한 결단을 예비하는 기준이라 여겨져 공감이 간다.
그러던 중 지난 광복절 무렵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울 공항에서 숙소로 이동할 때 우리나라 소형차를 이용하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에 대해 어느 신부는 교황은 일찍부터 자기 본질에 충실하며 형식을 떨구는 수양을 계속해 왔다는 것이었다. 그때서야 필자는 무릎을 탁 칠 수 있었다. 자동차는 내 삶의 본질이라기보다는 이동의 수단이지 않은가.
지난 여름 ‘여덟 단어’라는 책이 내 삶의 자세에 대한 뜨거운 고민의 동반자가 되어주었는데 입추(立秋)를 지나 확연히 내 가슴으로 운행되어 온 교황의 소형 자동차는 그 기준 설정을 시원하게 도와 준 길잡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 삶의 기준은 또한 내 삶의 가을 초입에 얻은 값진 수확이기도 하여 감사할 따름이다. 왜냐하면 아내에게 진심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었기에 말이다.
“여보, 나는 소형 자동차를 그대로 타고, 대신에 당신 경차를 한 대 구입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