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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거실 장식장 위에는 고려청자 두 점이 나란히 놓여있다. 구름과 학 그림이 새겨져 있는 ‘운학문’ 상감청자로 하나는 우람한 어깨에 잘록한 허리의 ‘매병’이고 다른 하나는 가느다란 목에 풍만한 엉덩이를 가진 ‘거위병’이다. 물론 진품이 아니고 유명한 국보급 유물을 모방한 복제품이다. 하지만 두 도자기가 청자 특유의 빛을 내뿜으며 마치 늠름한 신랑과 맵시 있는 새색시처럼 사이좋게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거친 바람에 주눅 들고 우울해져만 가던 내 마음에 따스한 위안이 되어준다. 그러기에 누가 뭐라 해도 나에게만은 ‘국보급’이다. 사실 내가 이들 ‘청자 부부’를 갖게 된 것은 한 달도 채 되지 않는다. 낙엽이 곱게 물들어가는 가을을 만나기 위해 가야산으로 드라이브를 갔다가 우연히 들린 도자기 판매점에서 ‘청자 부부’를 발견하게 되었다. 예전부터 가지기를 바랐던 바로 그 모습의 청자였다. 하지만 가격표를 보니 크게 비싸다고는 할 수 없어도 만만찮아 잠시 고민하던 끝에 훗날을 기약하며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하지만 그날 밤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낮에 본 도자기들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급기야는 밤새 몸살을 앓기까지 했다. ‘그래,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차지한다고 했지’ 결국 나는 도자기를 사기로 결심하고 날이 새기만을 기다렸다. 다음날 아침밥을 몇 술 뜨자마자 단숨에 차를 달려 해인사 근처 도자기 판매점으로 갔다. 도자기들이 이때까지 팔리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있음을 확인하자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흥정 끝에 값을 적당히 양보 받고 멋진 찻잔 받침도 덤으로 몇 개 얻어낸 후 정성껏 포장해서 신주단지 모시듯 자동차 뒷좌석에 실었다. 할 일을 마치고 나자 해방감이 밀려왔고 돌아가는 길에 느긋하게 해인사 구경이나 하고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해인사 주변의 아름다운 단풍과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장경판전 등을 구경한 후 돌아가는 길에 보니 본존불이 모셔진 대적광전 맞은편 건물에 ‘00선생 조선백자 달항아리 특별전시회’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큰 맘 먹고 도자기를 산 날 이 무슨 우연의 일치인가’싶어 서슴없이 전시회장에 들어섰다. 전시회장 안에는 보름달처럼 둥근 달항아리들이 유백색의 신비로운 빛을 내뿜으며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그것들은 오직 깨달음을 얻은 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을 듯한 고고한 선(禪)적 경지를 드러내며 보는 이를 압도하고 있었다. ‘다들 비슷하게 생겼는데 제목은 뭐라고 붙였을까?’하는 호기심에 허리를 굽혀 명패를 읽었다. ‘2,000만 원’이라고 적혀있었다. 순간 숨이 막힐 듯한 당혹감이 밀려왔고 이후에는 작품 구경이라기보다는 가격표 구경이 되고 말았다. 일천 오백, 이천, 이천 오백…… 이 공간은 나 같은 사람이 아닌, 다른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공간임을 느끼며 나는 도망치듯 전시회장을 빠져 나왔다. 해질 무렵 집에 도착한 나는 상감청자들을 조심스럽게 닦아서 장식장 위에 올려놓았다. 청자의 짙은 비취색이 들꽃의 소박한 향처럼 거실 전체로 스며들어 간밤의 몸살 기운마저 눈 녹듯 사라지는 듯 했다. 그러자 문득 낮에 본 달항아리가 떠올랐다. ‘만일 저 자리에 그 달항아리를 놓아둔다면?’생각만 해도 가슴이 갑갑하고 불안해졌다. 나의 ‘청자 부부’가 비싸지 않아 다행이라는 실없는 생각이 떠오르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날 밤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다시 한 번 달항아리 앞에 서있었다. 깊은 밤 고요한 어둠 속에서 항아리는 보름달처럼 탐스럽게 떠올라 있었다. 나는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달항아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아주 살짝 건드렸을 뿐인데도 내 손이 닿자마자 달항아리는 받침대에서 굴러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나는 겁에 질려 전시회장 밖으로 뛰쳐나왔다. 잠에서 깬 스님들이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나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벗어나려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밤하늘에 뜬 보름달이 등 뒤에서 쉬지 않고 나를 쫓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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