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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쑥 향기는 엄마의 향기

한외복(구미 거주 구성면 출신 수필가)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5년 01월 13일
ⓒ i김천신문
   마트 떡집에서 일하는 지인이 쑥떡과 약밥을 먹어보라고 주었다. 뜨끈할 때 묻혀서 콩고물이 보실보실하지는 않다고 했지만 한 입 베어 무니 입안 가득하게 고소함과 쑥 향기가 난다. 찹쌀을 섞어 쫀득쫀득 찰지다. 나이가 들수록 쑥 향기가 좋다. 쑥 향기는 고향의 향기고 엄마의 향기다. 

 조부모님과 함께 살던 어린 시절에는 봄이면 쑥떡을 자주 해먹었다. 쑥떡은 봄철 입맛 잃은 어르신들 식사대용이었는데 산촌에 떡방앗간이 있을 리 없으니 집에서 떡을 했다. 찰밥과 삶은 쑥을 돌절구에 넣고 찧어서 만들었는데 먹다보면 덜 찧어져 밥알이가 씹히기도 했지만 쑥인절미보다 더 맛난 쑥떡을 그 후로는 먹어보지 못했다. 

 별식을 만들어 먹으려면 절구와 맷돌을 사용해야 했다. 인절미도 돌절구에 찧어서 해먹었는데 바쁜 엄마를 대신해 절구질을 많이 했다. 두부를 만들 때는 맷돌질도 했다. 요즘 아이들이야 박물관에서나 보겠지만 우리 어릴 적에는 절구와 맷돌이 집집마다 있는 생활필수품이었다. 내 팔뚝이 뽀빠이 팔뚝처럼 울퉁불퉁한 알을 품고 소도 잡을 만큼 힘이 센 것은 어릴 적에 했던 절구와 맷돌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겠다. 

 고향 봄날은 삽짝만 나서면 지천으로 쑥이었고 가난한 백성들의 보릿고개 주린 배를 채워 주었던 쑥은 구황의 일등공신이었다. 감자와 쑥을 섞은 쑥밥, 쑥죽, 콩가루 섞은 쑥국을 질리도록 먹었다. 밥이나 국은 먹기 싫었지만 이른 봄 여린 햇쑥에 밀가루나 쌀가루를 묻혀 찐 사카린 달달한 맛의 쑥버무리(쑥털털이)는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맛있는 간식이었다. 

 쑥은 약이 되기도 했다. 마당 귀퉁이나 뒤란에도 쑥이 자라나 손을 베이거나 피가 나는 곳에 찧어 발라 지혈을 시키고 코피가 날 적에도 쑥을 비벼 막는 응급약이었다. 쑥으로 뜸을 뜨고 냉증 있는 몸은 따뜻하게 해주고 생리불순과 생리통을 다스리기도 했다. 인진쑥은 간 해독을 하여 기력을 증진 시키는 약재로 쓰이기도 한다. 

 할머니는 쑥 조청을 만들어 시렁에 얹어 놓고 한 숟가락씩 드셨다. 어릴 때라 몸에 좋은지 어쩐지도 모르고 단맛에 쑥 조청 단지를 할머니 몰래 수시로 열고 퍼먹었다. 그러다가 조청항아리를 떨어뜨려 깨는 바람에 할머니께 경을 치기도 했다. 

 여름 한낮 냇가에서 종일토록 미역을 감을 때면 쑥으로 귀를 막고 물장구치며 놀았던 어린 시절 추억도 새록새록 생각난다. 여름밤에는 마당 한쪽에 모기를 쫓는 모깃불을 놓았는데 쑥대궁을 태우는 자욱한 연기가 모기뿐만 아니라 해충의 범접을 막았다. 

 농삿일에 늘 쫓기며 사셨던 어머니는 쑥 뜯는 시간도 따로 못 내셨는데 논이나 밭일을 끝낸 어둑한 논두렁이나 밭두렁에서 낫으로 쑥우듬지를 소풀 베듯 베어 비료포대 가득 이고 오셨다. 밤늦도록 다듬은 쑥은 맑은 가을 햇빛에 말려 갈무리 하셨고 쑥이 없는 요즘 같은 겨울에도 쑥시루떡, 쑥절편, 쑥인절미, 쑥개떡을 해주셨다. 

 쑥 향기가 취해 정신없이 떡을 먹다보니 빈 접시다. 주름 잡힌 입으로 우물우물 쑥떡 드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립고 엄마생각이 난다. 그 옛날 절구에 찧어 만든 떡은 아니지만 마트의 쑥떡이라도 사서 친정어머니께 다녀와야겠다.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5년 0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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