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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김천신문 |
꽃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만 나 역시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꽃을 보면 발걸음이 멈춰지고 마음이 헛헛한 날엔 곁에 두고 위안을 삼았다. 성인이 되어선 꽃장식을 배우러 다니기도 하고 꽃집을 아지트삼아 솜씨를 뽐내며 놀기도 했다.
꽃을 좋아하기 때문에 농부에게 시집오는 게 두렵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자연의 삶 안에는 나만의 아기자기한 텃밭, 예쁜 정원을 만들겠다는 기대도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시집와 한 해 두 해……여섯 번째 봄, 꽃으로 일렁였던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 봄은 두렵고 꽃은 긴장이다.
농업 중에서도 과수원 운영은 일 년의 사이클로 돌아간다.
겨울에 가지관리 토양관리 등의 작업이 있긴 하지만 가시적인 큰 틀에서 보면 봄의 꽃이 시작이고 가을의 수확이 마무리다.
첫 단추인 꽃에서 한해 농사가 결정되기도 한다. 꽃이 피면 열매 맺음이 당연한데 문제는 날씨다. 개화기 내내 비가오거나 바람이 심하면 벌 나비가 활동하기 힘들고 강추위가 찾아오면 애써 핀 꽃이 수정 능력을 잃는다. 꽃은 마냥 기다려 주지 않고 벌이 열심히 도우려한들 사람이 아무리 노력한들 하늘이 하는 일엔 당해낼 수가 없다.
불안정한 봄 날씨에 짧은 개화기로 벌 나비에 의한 자연수정만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매년 닥치기에 한 해 농사가 시작부터 허무하지 않도록 인공수정을 준비하고 있다.
미리 따낸 꽃송이에서 수술을 분리하고 꽃가루를 채취하여 보드라운 새가슴 털로 만든 봉에 묻혀 열매 맺음 좋을 위치의 꽃에 톡톡…… 벌 다리에 묻은 꽃가루가 끈적한 암술에 우연히 닿듯이 꽃가루여 어서 오라 받아들일 준비가 된 꽃의 암술에 가볍게 묻혀준다.
배꽃이 한창인 요즘 3~4일 내에 수정작업이 잘 되도록 바짝 긴장하는데 배꽃이 피기 시작하면서 비가 잦다. 오늘도 기상예보에 없던 비바람을 만나 목표량 반절밖에 못하고 도중에 작업을 그만두었다. 올해도 쉽지 않은 봄이다.
작년에는 개화기에 영하로 떨어진 날씨로 냉해를 많이 입었다. 수정을 하는데 암술이 얼어 까맣게 마른 게 보였다. 그 꽃들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피어 아직 가능성이 있는 꽃들을 일일이 찾아가며 암술 끝에 꽃가루를 터치했었다. 아무래도 열매의 품질과 생산량에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기에 그만하면 선방이었다고 위로했다.
열매 맺음을 생각하며 꽃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농업이라는 이 일을 통해 꽃이 달리 보인다. 농업으로 일궈가는 삶은 꽃에 대한 시각을 바꾸었다.
꽃은 열매를 위함이고 열매는 씨앗을 위함이고 씨앗은 종족번식을 위함이다. 꽃으로 우거진 터널 안에 서면 나무가 피워낸 수많은 꽃들을 통해 종족번식의 갈망이 느껴지며 꽃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에 소름이 돋기도 한다.
수정이 된 꽃들이 미련 없이 꽃잎을 떨구고 씨방을 통통히 불리는데 수정이 채 안 된 꽃은 마지막까지 나 여기 있노라 벌을 부르기 위해 치맛자락 같은 꽃잎 떨구지 않으려 애를 쓰는 게 보인다.
모양과 향기만으로 꽃이 아름답다 느끼던 표면적인 느낌에서 왜 그런 모양, 왜 그런 향기를 뿜는지에 대한 본질을 가깝게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 주어진 사명을 다하고 가려는 꽃의 생명력, 그 앞에 경의를 표하는 내가 달라졌다.
흐드러진 배꽃이 엄마의 손뜨개 레이스처럼 예쁘다. 시인을 꿈꾸던 소녀의 감성이 사라져 예전처럼 꽃을 보고 가슴이 일렁이지 않는 것이 안타까운가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그나저나 내일도 모레도 날씨가 좋아야 할 텐데…….
아~ 하늘, 아~ 꽃, 아슬한 이 봄의 긴장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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