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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지난 6월 25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공무원연금 개혁안과 연계하여 국회가 통과시킨 행정입법을 통제할 수 있는 국회법 개정안에 관하여 거부권행사방침을 밝혔다. 그리고 정치권을 향해 ‘배신의 정치’ 등을 언급하면서 공개적으로 분노를 표출했다. 그 이후 약 2주간 대통령과 정치권, 대통령과 여당이 대립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빚어졌다.
박 대통령이 언급한 ‘배신의 정치’라는 것은 민생법안마저도 정략적으로 대하는 야당에 대하여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는 뜻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대한 말이라는 것은 중론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004년 당대표시절 유승민 의원을 비례대표 의원으로 낙점하는 등 정치적으로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3선 의원으로서 소신과 기개가 있어서 현재 대구.경북의 정치인 중 차기지도자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고, 약 5개월 전에 자신의 힘으로 여당의 원내대표라는 막강한 자리에 올랐다.
박 대통령은 유승민 원내대표가 자신의 국정철학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자신을 통한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야당과 국민을 향한 직접적인 정치를 한 것으로 의심하고 ‘배신의 정치’라는 격한 단어를 구사했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국민들은 여당내의 분열현상, 특히 대통령과 여당의 갈등관계를 매우 불안하게 생각했다. 분열과 갈등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권력투쟁의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8일 새누리당 의원총회의 ‘원내대표사퇴권고안’을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사임했다. 그는 “원내대표라는 자리에 연연한 것이 아니라 헌법이 규정하는 민주공화국, 민주주의와 법과 원칙을 지키기 위하여 미련한 고집을 피웠다”고 말했다. 이는 국회법 개정안에 관련된 원내대표로서의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는 잘못이 없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과연 박 대통령이 유승민 대표를 향하여 공개적으로 분노를 표출하고, 유승민 원내대표는 약 2주간 직을 고수함으로써 당내 분란이 일어나고 청와대와 여당의 기능이 마비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 옳은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공자는 노(魯)나라의 집권자 중 한 사람인 계강자(季康子)가“백성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겠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정치는 정도를 걸어 바로잡는 것이다(政者正也). 그대가 솔선하여 정도로 백성을 이끌면(子帥以正, 자사이정), 누가 감히 바르지 않겠는가(孰敢不正, 숙감부정)”라고 대답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작년 6월 세월호 사건 이후 ‘국가개조론’을 언급하면서 대한민국 60년 동안의 적폐청산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2012년 대선과정에서는 ‘국민통합.국민행복’을 말했고, 2014년 연초에는 ‘통일대박론’을 말했다.
그렇다면 5년 임기의 박 대통령은 위와 같은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전념하여야 할 책임이 있는 것 아닐까? 그것을 위해서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의 지도자들과도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국민들의 역량을 결집시켜야 하지 않을까?
여당의 원내대표에게 설령 문제가 있다면 공개적으로 분노를 표출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권한과 권능으로써 얼마든지 시정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분노를 표출한 것 외에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 국민들은 알 수가 없다. 특히 유승민 원내대표는 국회의원으로서 여당의원들에 의하여 선출되었고 임기가 보장되어 있으므로 대통령이 감정적으로 쫒아낼 수 없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국회법개정안에 관하여 여당의 의원총회에서 논의한 후 추진했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고, 대통령의 공격 후 의원총회에서 신임을 받았으므로 원내대표직을 던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유가 있든 없든 소위 친박 의원들은 대통령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공개적으로 유 원내대표에게 사퇴할 것을 요구했고, 그 반대편 의원들은 사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여당의 갈등구조는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어 버렸다.
여당의 원내대표는 그러한 분란을 조기에 차단할 정치적 책무도 지고 있는 것 아닐까? 유승민 원내대표는 국회의원이기 이전에 박 대통령이 사실상 만든 ‘당인(黨人)’의 한 사람이라는 겸손한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즉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박 대통령의 태도를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대통령과 당을 보호하기 위해서 희생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특히 7월 6일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 재의결이 새누리당 의원들의 표결 불참에 따른 정족수 미달로 무산된 후 김무성 대표는 혼선을 초래한 점에 관하여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그렇다면 유승민 원내대표도 당연히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지 않을까? 만약 그날 유승민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라는 언급과 관계없이 민주주의,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의 가치를 추구하는 자신의 정치철학을 말하고 원내대표직을 던지는 모습을 보였으면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을 것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자들이 권력의 겸손함에 관하여 성찰함으로써 우리의 민주주의정치제도는 성숙될 것이다. 즉 국민이 중요할 뿐 자신의 자리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