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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엄마의 런닝구

한지영(북삼초 보건교사)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5년 11월 25일
ⓒ 김천신문
 매주 금, 토 저녁시간이 되면 온 가족이 TV 앞으로 모여든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기 위해서다. 그 시절, 이웃 간의 정(情) 가득했던 한 골목 다섯 가족의 이야기를 보며 따뜻함과 그리움에 눈시울을 적시기도 한다. 지난주엔 자식을 위해 한없는 사랑을 쏟아 붓는 우리의 엄마들이 주인공이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먹먹해진 가슴으로 친정엄마도 떠올리고 시어머님도 떠올리고…….

  마산시내에서 차를 타고 30여 분 정도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가면 작은 섬들이 올망졸망 떠 있는 고요한 바다가 나타난다.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채 블루사파이어처럼 눈이 부시도록 맑고 푸른 바다가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반겨준다. 마산 9경중의 하나인 일명 ‘콰이강의 다리’로 불리는 저도연육교 근처 작은 마을에 시댁이 있다. 

  지난 주말,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한 엄마들의 눈물 이야기가 가슴을 파고든 탓에 안부전화도 드리지 않고 시댁으로 갔다. 예고도 없이 찾아가면 홀로 계신 시어머님의 반가움이 더 클 것 같아서였다. 평소 같으면 대문 밖에서 반가이 맞아 주실 텐데 예고 없는 방문이라 그런지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시어머님은 부지런함과 검소함이 몸에 밴 분이시다. “아프다” 소리를 연신 입에 달고 살지만 산으로 들로 바다로 쉴 새 없이 일을 하러 다니신다. 지금도 어쩌면 넘어가는 석양을 벗 삼아 조개를 줍느라 정신이 없으실 것이다. 

  짐을 풀고 손을 씻기 위해 욕실로 들어가니 세숫대야에 빨랫감이 담겨져 있었다. 시어머님의 속옷이었다. 외아들 내외가 오는 날이면 손님을 맞이하는 것처럼 거실이랑 욕실까지 깔끔하게 청소해두시기에 빨랫감이 담긴 것을 처음 보았다. 결혼한 지 어느새 2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시어머님의 속옷을 빨아본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하나뿐인 며느리 산후 조리를 위해 삼칠이 지날 때까지 속옷을 빨아주시던 당신을 생각하며 세숫대야에 담긴 속옷을 빨기 시작했다. 몇 개 되지 않는 옷가지들을 깨끗하게 빨아 옥상 빨랫줄에 널었다. 가지런히 널려진 속옷 중에 헤어져 구멍이 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머님의 낡은 런닝구였다.
    
  문득 초등학생이 쓴 동시 한 편이 생각났다.
  작은누나가 엄마보고/ 엄마 런닝구 다 떨어졌다./ 한 개 사라 한다./ 엄마는 옷 입으마 안 보인다고/ 떨어졌는 걸 그대로 입는다./ 런닝구 구멍이 콩만 하게/ 뚫어져 있는 줄 알았는데/대지비만 하게 뚫어져 있다./ 아버지는 그걸 보고/ 런닝구를 쭉 쭉 쨌다./ 엄마는/ 와 이카노/ 너무 째마 걸레도 못한다 한다./ 엄마는 새 걸로 갈아입고/ 째진 런닝구를 보시더니/ 두 번 더 입을 수 있을 낀데 한다.
-배한권(경산부림초 6학년(1987년) ‘엄마의 런닝구’
    
  초등학생이 다 낡아빠진 속옷을 입고 있는 엄마를 바라보며 거친 경상도 사투리로 가족들의 사랑을 표현한 이 시를 읽노라면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삶이 팍팍했던 그 시절, 어머니들은 자식 뒷바라지를 위해 무조건 아껴 쓰고, 아껴 먹고, 아껴 입으셨다. 옷장을 열면 분명 자식들이 사준 새 속옷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을 텐데 그것도 아끼시느라 너덜너덜해진 속옷을 그대로 입고 사시는 것이다. 먹고 살기가 편해진 지금도 어머니들은 아끼는 것이 습관이 되어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마음껏 하지를 못 하신다. 

  겨울이 오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머니들은 멀리 있는 자식들이 오면 주려고 이것저것 먹거리를 챙기고 계실지도 모른다. 찬바람에 꽁꽁 언 손으로 말이다. 바깥바람은 점점 살을 파고드는데 그 바람을 막아 줄 속옷은 제대로 있을까?
  다가오는 주말엔 예고도 없이 어머니를 한 번 뵈러 가야겠다. 찬바람을 이겨낼 최고로 따뜻하고 예쁜 속옷도 한 벌 사서…….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5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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