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김천신문 |
“자식처럼 키운 꽃이 피었다”고 엄마 입의 침이 마른다.
눈만 뜨면 잡초를 뽑고 지팡이 짚고 물을 주시더니 애지중지 키운 과꽃, 초롱꽃, 앵두나무, 석류나무……. 그뿐인가. 풋고추 한줄, 상추 두어줄, 케일, 오이넝쿨 “혼자보기 아깝다”며 눈을 떼지 못한다.
나는 “모기 물려가며 허리도 아픈데 좀 쉬셔요” 말렸지만 “흙에서 일하고 나면 병도 낫는다”며 “이렇게 좋은걸 말리지 마라”며 밝게 웃으신다.
젊은 날 엄마의 소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남진의 노랫말처럼 아담한 집을 지어 살고 싶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동해에서 출발해 서해를 거쳐 남해 바닷가까지 배낭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대문 없는 우리 집은 동네 아지트였다. TV 앞에 옹기종기 모여 박치기 왕 김일의 레슬링도 보고 눈물을 훌쩍이며 여로도 보았다. 식사 때가 되면 둥근판에 숟가락만 얹어 된장에 상추쌈이 전부였지만…….
그런 시간들은 어느새 추억이 되고 엄마는 오직 굽은 허리로 꽃 가꾸는 일에 낙을 삼는다.
“꽃들아 잘 잤니?” 인사도 나누고 “할머니 나갔다 올게” 손도 흔든다.
생각해 보니 효도가 별게 있나 싶다.
꽃도 꽃이지만 엄마가 그리워하는 것은 사람들이 아닐까.
83세의 친구들은 하나 둘 떠나고 꽃은 피는데 한해가 다르게 엄마는 늙어간다.
그래, 사람들을 초대하자. 엄마가 키운 꽃들 좀 봐 달라고 손을 내밀자. 그러나 막상 초대하려고 하니 와 줄만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문자를 보낸다.
“혹시, 다음 주 수요일 점심 약속 없으시면 텃밭에서 키운 상추와 풋고추로 밥 한 그릇 같이해요. 울 엄마가 꽃이 너무 예쁘게 피었다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데 보여줄 사람이 없네요.”
내일이면 손님들이 온다.
엄마는 해질 때까지 뽑은 풀을 또 뽑고 나는 보이기 싫은 물건들을 장롱 뒤로 감춘다.
다들 잠시라도 귀한 시간 내어 오시는데 좋아하실까? 내 집을 보인다는 건 내 마음을 보이는 건데 그게 통할까? 산다는 게 별게 아닌데 왜 우리는 감추고 경계하고 꽁꽁 문을 닫고 사는 걸까.
벌써부터 들떠있는 엄마를 보니 마음먹길 잘 했다 싶다. 앞으로도 종종 더 많은 분들을 초대해야지.
언제라도 ‘딩동’ 벨을 눌릴 수 있는 이웃들이 그립다.
엄마, 100까지만 사세요.
두 번째 소원도 꼭 이루어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