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김천신문 |
인터넷으로 상주의 가 볼만 한 곳을 검색하니 청리면 삼괴리 신앙고백비가 나왔다.
일행 중 하루 두 번 약물 투석하는 이가 있어 멀리는 못가고 점심시간에 만나 뷔페를 먹고 가기로 했다.
우리 모임은 성당 다니는 사람들이 삼십년 넘게 이어져오는 모임으로 봉사단체다. 그동안 돌아가신 이도 있고 오십대에서 칠팔십을 바라보는 연세가 되다보니 예전에는 고기며 상추, 풋고추, 밥을 싸서 갔었는데 이제는 시대가 시대인 만큼 점심은 사먹고 간식은 각자 집에 있는 것을 싸가기로 했다. 그 중에는 포도농사 짓는 이들이 많아 포도 손질 할 때는 “즈어마이가 죽어도 못 간다” 하던 이들도 포도가 익기까지 얼마동안 시간이 있어 짬을 내서 봉고차로 십여 명이 갔다.
시집오기 전 산골마을에 살 때 엄마 아버지도 모심어놓고 밭 잡곡 심기가 끝나면 천렵을 갔다. 경운기에 가마솥, 장작, 쌀, 막걸리 등 저녁까지 먹을 음식을 싣고 흙먼지 일으키며 신작로를 달려 물가로 갔다. 그날만은 더위를 피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동네 사람들이 모두 가서 하루를 즐겼다.
남자들은 불을 지피고 여자들은 감자며 옥수수를 삶아 아이들 손에 쥐어주고 닭백숙을 끓여 동네 사람들이 보신을 했다. 아이들은 멱을 감고 젊은 사람들은 다슬기도 잡고 물고기도 잡아 매운탕을 끓여 막걸리에 술판이 벌어지면 분위기가 화기애애해 지는가 싶다가 부부싸움을 하기도 했다. 엄마는 뭐가 서러운지 두 다리 뻗고 엉엉 울고 아이들은 영문도 모르고 따라 울었던 기억이 있다. 동네에서 제일 어른으로 불리는 동화 할아버지는 꽃나무를 좋아하고 그림을 잘 그렸는데 어린애처럼 잘 울었다. 지금도 운 이유를 잘 모르겠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개령에서 상주방면 길을 달려 청리면에 내리자 화장실이 급하다는 이도 있고 해서 길도 물을 겸 청리면사무소로 갔다. 낯선 봉고차가 들어가자 남자 공무원 둘이 “웬 아가씨들이 이렇게 많이 왔어요?” 농담을 하며 “더운데 얼른 면사무소로 들어갑시다” 했다. 몇은 면사무소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화장실로 갔다. 그 친절한 공무원은 의자를 내어주고 여자 공무원은 시원한 음료수를 내주며 “날씨도 더운데 드세요” 한다. 너무도 친절한 공무원은 약도까지 그려주며 신앙고백비 가는 길을 설명했다. 옆에 있던 공무원은 “내가 길을 가르쳐 주고 오는 게 났겠어!” 하며 폭염 주의보가 내린 날씨에도 차를 몰아 따라오라고 했다. 신앙고백비 입구까지 길 안내를 해 준 공무원이 고마워 싸간 음식을 주려고 하자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상주 사람들은 인심이 좋아” 하자 다른 이가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고 하자 “내가 노가다 출신 아닌가벼, 감 따러 상주 구석구석 안 가본 데가 없다” 해서 모두 웃었다. 우리 일행은 신앙고백비를 둘러보며 기도를 하고 그 분을 위해서도 기도를 했다.
상주는 곶감이 유명해서 그런지 가는 곳마다 감나무가 눈에 띄었다. 우리는 2차로 자전거박물관을 가기로 했다.
자전거박물관에 도착하니 평일이라 그런지 차는 몇 대 없었다. 자전거박물관 옆으로 흐르는 낙동강은 전날 온 비로 흙물이 흐르고 있었다. 2층으로 되어 있는 자전거박물관에는 다양한 자전거를 볼 수 있고 체험할 수 있었으며 신기한 자전거도 있었다. 어르신들은 옛날 자전거를 구경하며 살아온 날을 회상하기도 하고 5단 자전거와 경기용 자전거를 보며 신기해하기도 했다.
자전거박물관을 나와 개령으로 내비를 켜고 오다 그늘이 좋은 정자 밑에 자리를 펴고 싸간 간식을 나눠 먹었다. 놀러 가면 빼놓을 수 없는 수박, 튀김 닭, 도토리묵, 옥수수, 장떡, 감자, 계란 등 그야말로 손수 농사지은, 집에서 싸간 엄마표 간식을 풀어놓으니 진수성찬이었다.
배불리 먹고도 남아 자기가 싸간 간식을 서로 바꾸어서 싸왔다. 놀러 갔다 오면 맛있는 음식 배불리 먹으면 “구경 잘 했다” 하고 음식을 배불리 못 먹으면 아무리 좋은 데를 구경하고 와도 “다시는 안 간다”고 한다. 그날은 배불리 먹어서 그런지 하나 같이 “구경 잘 했다”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