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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고려 말 ‘탄노가(嘆老歌)’에 “백발을 막대로 치려했더니 백발이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는 말은 안티에이지(Anti-aging)로 노화를 극도로 기피하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은 세월을 향해 10대는 10km, 20대는 20km로 달린다고 한다. 나이 많을수록 늙는 속도가 빨라서 인생 60이면 해마다 늙고, 70이면 달마다 늙고, 80이면 날마다 늙고, 90이면 시간마다 늙는다는 넋두리가 있다.
산을 오르면 다리가 무겁고 보폭이 좁아서 때로는 몸의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는 것이 낙상(落傷)의 징조다. 그 뿐 아니라 노화현상은 먼저 오감기능(五感機能)이 퇴화되된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노인 89.2%가 만성질환으로 2.6개의 병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일상의 행동에도 식사 시에는 자기도 모르게 음식을 흘리고 입승의 단추는 어긋나게 끼우고 용변을 보고는 지퍼는 잠그지 않은 채 길을 걷는다. 또 정서적인 면에서도 늘 화난 듯 무표정한 얼굴로 미소와 웃음은 찾아 볼 수도 없다. 사소한 일에 화를 내고 인사 안 한다고 하고 감사하다는 말에는 인색하고 몸 관리는 냄새가 나고 주위도 지저분하고 옷 색깔은 칙칙해 보이고 허리는 구부러진다.
자식들은 노부모의 출입을 삼가기를 바라고 모임에는 유유상종을 벗어나 세대차이로 수용을 꺼리는 눈치다.
사회적인 참여 활동에도 70세가 넘으면 남의 앞에 나서지도 말고 단상에도 올라가지 말 것이며 조직의 관리자로서는 나서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들려오는 말들이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젊은이들은 아무 말 없이 벌떡 일어서면서 앉으라는 눈치일 때는 ‘하필 내 앞에 이 노인이 서 있을까’ 속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기왕이면 “어르신 앉으세요” 하면서 일어서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때는 고맙다고 말을 하지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외국에 관광신청을 하면 같은 또래가 아니면 아예 동행 관광을 거부하고 대중의 모임에도 젊은이들 가운데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보이면 주위의 시선이 곱지 않고 소외감으로 스스로를 위축되게 한다.
지난해 83세 늦깎이로 ‘문학예술’을 통해 등단해 수필가로서 견문을 넓히기 위해 김천문인협회 회원가입을 신청해 놓고 몇 달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어서 지친 나머지 확인을 하니 회원들 나이가 60~70세이므로 80이 넘은 노인의 신규 가입은 싫어 한다는 것이다.
지난 3월 직지사 불교대학에 입학을 했는데 71세가 최고령이고 그 외는 50대 중반부터 60대였다. 이런 여건에서 수업을 받아야 하나, 망설이다가 마이크를 잡았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는데 내 나이가 너무 많아서 진퇴를 생각해 봐야겠다고 하니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배움에 무슨 나이가 있느냐고 미화(美話)로 권유하기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제 시니어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소외(疏外), 배타(排他), 불수용(不收用)의 현실은 인생퇴물이 됐다고 생각하며 비애(悲哀)를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대화를 통해 회자되고 있는 상투적인 용어는 늙더라도 죽을 때까지 홀로서기를 해야 하고 현역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히노하라 시게아키 옹은 100세에 심장내과 전문의로 근무하고 있으며 6~8km 걷기운동을 하면서 건강 관련 저서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한다. 영국의 한 비즈니스인은 60세에 퇴직하여 90세가 되어서 지난 30년간 허송세월을 보낸 것이 한이 되어 90세에서 100세까지 10년간 3권의 책을 냈다고 한다.
이제 늙어서 자식과 사회적 국가적으로 보호를 받고 사는 앞날은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은 ‘100세 시대가 축복이냐 재앙이냐’ 하는 앙케이트에서 41%가 재앙이라고 했다. 무병장수 하더라도 자식에게는 큰 짐이 되고 귀찮은 존재이다.
오래 살면서 국가와 자식들에게 보탬이 되는 것은 무병장수는 물론이고 평생 현역으로 일자리가 있는 홀로서기로 소외, 배타, 불수용의 비애의 현실을 극복하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