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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김천 찍고

송연희(수필가·부산 거주 출향인)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7년 01월 24일
 
ⓒ 김천신문
부산과 서울의 중간쯤에 김천이 있다. 그곳에서 나는 여학교를 다녔고 직장생활도 했다. 그 도시는 내게 늘 그리움을 불러온다. 아름다운 영상들로 머물러 있는 기억 저편에는 아직도 키 작은 내가 살고 있다.

  서울은 부산에서 KTX를 타면 세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여전히 체감거리는 멀게만 느껴진다. 출가한 삼남매가 모두 서울에 보금자리를 틀고 있다 보니 심심찮게 갈 일이 생긴다. 시간을 다투는 급한 일이 아니면 김천까지 차표를 끊는다. 그곳에는 세상에서 오직 한 사람, 나를 낳아서 길러준 사랑하는 엄마가 계신다.  엄마가 해 주는 뜨신 밥을 먹고 하룻밤을 묵는다. 다음날 길을 나서면 힘들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다. 부산으로 올 때도 마찬가지다. 

  김천은 작은 도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시청이 자리를 옮기면서 도시가 많이 확장되었지만 내가 중 고등학교를 다녔던 모암동 길이나 중앙시장, 황금동 굴다리는 여전하다. 남산병원 맞은편의 허술한 상가들은 사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오륙년 직장생활을 한 빨간 벽돌의 우체국도 그 자리에서 나처럼 낡아가고 있다.

  기차가 덜컹거리며 감천 다리 위를 지나갈 때면 고개를 쭉 빼고 밖을 내다본다. 세라복을 단정하게 입은 소녀가 자주색 책가방을 들고 오고가던 길이 보인다. 감천면 쪽으로 바라보이는 길 끝에 은수네 과수원이 있고 수양버들이 냇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오솔길을 지나서 조금만 가면 오리나 되는 긴 방천이 있다.

  지금도 눈만 감으면 방천 너머에 흐르는 냇물과 먼 산 밑으로 드문드문 마을을 끼고 있는 본답(本畓). 들 가운데로 바둑판처럼 나있는 들길이 보인다. 그 들길 가운데서 만난 여름날의 소나기, 서릿발을 서걱거리며 걷던 겨울 아침의 찬 공기.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서 있던 남학생들의 긴 자전거 행렬이 떠오른다.

  김천은 전국에서 자전거도시로 유명하다. 남자학교에는 수 백 대의 자전거가 빼곡하니 서 있어 진풍경을 이뤘다. 학교가 멀던 가깝던 자전거가 통학수단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예전에는 집집마다 자전거 한 대씩은 다 있었다. 내가 유일하게 탈 수 있는 자전거도 김천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김천은 오일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우시장으로 명성을 날렸던 곳이다. 요즘은 어느 곳에나 대형마트가 있고 농사일에 필요하여 소를 키우는 사람도 없다. 명성을 잃어 가고는 있지만 그래도 5일 간격으로 장이 선다. 

  어머니는 장날이면 장터를 서성거리신다. 아주 먼 기억의 어느 한 때를 잊지 못하여서 인 것 같다. 하얀 옥양목 버선에 코고무신을 신은 젊은 여인의 모습을 찾고 싶은 것이다. 그 시절 엄마는 달걀을 광주리에 싸거나 손수 가꾼 가지, 옥수수, 우엉 같은 걸 장터에 이고 가서 팔았다. 그 돈으로 재봉실도 사고 옷감도 끊어왔다. 까만 운동화에 흰색 줄이 선명했던 내 신발은 늘 한 치수 큰 걸 사와서 걸을 때마다 조금씩 헐떡거렸었다.  

  부산에 와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땐 ‘김천’이란 글자만 봐도 반가웠다. 길을 가다가 김천 철물이니 쌀집 같은 간판을 본다. 그럴 때면 그 곳에 친 인척이라도 살고 있는 착각에 빠진다. 김천 사람들은 말씨가 순하다. “어디 가니”가 아니고 “어디 가여”다. “그래요”가 아니라 “그래여”다. 내가 똑 부러지지 않고 물러터진 건 김천의 그 어정쩡한 말씨 탓이기도 하다. 

  아들은 서울에서 일 관계로 어쩌다 김천사람을 만나면 버릇처럼 “김고 나왔어요?’”하고 묻는단다. “김고 14회 우리 아버지”로 통성명을 하다보면 단박에 아버지의 선배, 후배, 형님 아우로 줄이 만들어진다고 넉살을 떤다. 술이 취하면 집으로 전화를 거는 버릇도 애비를 꼭 닮았다.

  문당동에는 시숙 어른 내외가 살고 있다. 뒷산 자락에는 정갈한 시부모님의 산소가 있다. 남편은 산소 보살피는 걸 신앙처럼 여긴다. 얼마 전엔 연장 보관용 캐비넷을 산소 옆에 보초처럼 세워두었다. 육남매의 막내로 온갖 사랑을 다 받고 자랐음을 은연중 벼슬인 냥 자랑한다. 

  마을 앞에 대학과, 문화예술회관, 종합운동장이 들어섰다. 주위가 변하는데 이곳이라고 다를 게 없다. 절대농지라던 논밭이 야금야금 주택지로 바뀌고 원룸과 빌라가 들어서며 마을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지고 있다. 도시의 다른 쪽엔 골프장이 들어섰고 혁신도시 자리엔 12개소의 공공기관 건물이 쑥쑥 키를 높였다. 

  김천, 연기 나는 공장이라곤 찾아볼 수 없어 맑고 깨끗한 도시. 내 젊은 한 시절의 기억들이 고스란히 남아서 언제든 두런두런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곳. 글의 행간에 ‘찍고’ 같은 쉼표가 필요하듯 내 삶의 여정에 쉼표 같은 곳이 김천이다. 언제까지 그곳이 내게 쉼표가 될 것인지.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엄마 모습이 떠오른다. 김천은 내게 늘 그리운 엄마 같은 곳이다.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7년 0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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