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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썰렁하던 우리 집 베란다에 봄볕이 흥건하다. 연년이 봄이면 낡은 집에 봄치장이라고 하는 것이 팬지나 바이올렛 수선화 같은 꽃모종 몇 개 사와서 빈 화분에 심어 놓고 들여다보는 일이다. 봄손님 앉힐 곳 물청소를 하던 중에 항아리 사이에 지렁이 같은 것이 움찔거려서 쭈욱 당겨 보았다. 어머나, 봄손님이 벌써 와있었다. 지난해 가을 감자박스를 베란다에서 치웠는데 빠삐용처럼 탈출한 감자 한 알이 겨울을 견디며 새싹을 두 뼘이나 키웠다. 제 몸이 쪼글해지도록 햇빛바라기한 감자가 자식바라기 하는 우리 엄마 같아서 감자랑 독대하고 죄인처럼 쪼그리고 앉았는데 딸의 마음을 곁에서 지켜보고 계시는 듯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야야~~ 집에 밸일 없냐? 김 서방은? 군대 간 외손자는 전화가 자주 오냐? 손녀들은 잘 있고? 때늦게 서방 대신 네가 새벽에 나가 돈버니라 고생이 많다. 너는 아픈 데가 없쟈?” “엄마, 우리 집은 다 잘 있어요. 아부지는 어디 가셨어요?” “너그 아부지는 감기 때문에 빙은(병원)에 갔다. 너그 잘 잇스마 (있으면) 됐다. 끊자.” “엄마 엄@@.” 아버지 전립선 암검사는 끝내 안 받으시려고 하는지. 고향의 봄은 어디쯤 왔는지 여쭤봐야 하는데. 언제나 그렇듯 소방사가 소방점검 하듯 딸네집 무탈만 확인하고는 전화가 툭 끊어졌다. 지난해 초겨울 으슬으슬 춥고 요의를 자주 느낀 아버지께서 종합검진을 받았는데 피 수치가 높다고 큰 병원에서 검진을 받아보라고 했다. 결과는 전립선비대증과 암일 가능성이 8:2라고 했다. 결과가 미진하여 또 한 번의 검사를 받고 아버지는 결단을 내리셨다. 다행히 암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하고 설령 암이라고 해도 더 이상 병원은 가지 않겠다. 병원에서 암이라는 결과가 나오는 순간부터 항암치료를 해야 하고 수술을 하라고 할 것이니 그 때부터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닐 것이다. 특별하게 아픈 곳 없이 여든 해까지 건강하게 살았으면 잘 살았다. 너희 엄마하고 나한테 갑작스런 병마가 찾아오고 소생 가능성이 없는데 생명연장술 같은 건 일체 하지마라. 그런 거 하지마라고 쓰고 도장 찍어 문갑에 넣어 놓았다. 큰 병원 종합검사를 다시 받아보자고 해도 요지부동이신 아버지. 맏딸의 참척을 겪으시면서 삶의 욕심과 집착을 다 버려서 더는 비울 것이 없어 청보리밭을 타고 넘는 바람이 되셨다는 아버지의 결단을 말릴 수가 없었다. 겨울을 건강하게 넘기셨는데 감기가 애를 먹이나보다. 다시는 뵐 수 없는 곳으로 부모님를 떠나보내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가슴만 쓸어내릴 뿐 자주 찾아뵙지를 못하고 산다. 엄마에게 딸의 안부를 묻게 하고 사는 내 가슴속을 싹이 나 쪼글쪼글 해진 감자 한 알이 후벼판다. 자식바라기 하는 우리 엄마, 새봄이 와도 쉰이 넘은 딸 걱정 하시느라 싹틔운 감자보다 더 쪼글쪼글하시겠다. 집 앞 논두렁에 쑥이 얼굴은 내밀었는지, 배나무골 자두밭에 냉이가 봄옷을 갈아입었는지, 뒷산 진달래꽃망울은 처녀 젖꼭지만큼 부풀었는지, 우리 아빠 엄마 손잡고 걸어봐야겠다. 봄! 가슴 설레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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