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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나에게 페루라는 나라는 참으로 멀고도 생소한 나라였다. 내가 페루에 와서 살게 될 줄이야. 정말로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13년 전 브라질에서 4년 동안 생활하면서도 파라과이,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등 인근나라에는 몇 번 가보았지만 페루는 늘 반대편인 태평양쪽의 먼 나라였다.
그래서 세계적인 관광지인 마추픽추를 늘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끝내 가보지 못해 큰 아쉬움을 안고 귀국했었는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까지 다시 이렇게 내가 페루로 오게 되었다는 것은 아무래도 나의 전생이 페루와의 어쩔 수 없는 인연의 고리를 갖고 있었던 건 아닐까? 아니면 그 때의 아쉬움을 보상해주려고 운명이 나에게 보내는 행운의 선물인가?
호기심으로 가득 찬 많은 의문들을 가지고 왔지만 이곳에서 부딪치는 일마다 놀라는 일투성이다. 먼저 페루의 자연환경이 이렇게 건조하고 열악하다는 것에 놀랐다.
안데스 산맥은 태평양 연안에서 매우 급경사를 이루며 5천~6천m 불쑥 솟아나 동쪽으로는 아마존강 상류 지역의 밀림지대까지 고원지대를 이루며 서서히 고도가 내려간다. 안데스 산맥을 넘어 아마존 강 상류와 지류지역은 밀림지대로 연중 강우량이 많은 곳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 곳에는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는다.
대부분의 페루인들은 안데스 산맥의 5천~6천m 정상에서 2천~3천m 내려온 곳, 즉 해발 2천~3천m 동쪽고원지대와 서쪽 태평양연안의 급경사 지역에 산포해 있다. 그런데 이 서쪽 태평양 연안의 급경사지역의 식생이 참으로 흥미롭다. 이 지역은 간혹 비가 내리는지 짧은 풀이라도 새파랗게 자라서 농사와 목축이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해안 쪽으로 내려올수록 기후가 점점 건조해지다가 해안가는 그야말로 극도로 건조해 풀 한포기 자랄 수 없는 황무지가 되어 버린다. 바닷가나 해발 1천m에서 2천m 사이에 위치한 도시들도 안데스 산맥의 만년설이 녹아 땅 속으로 스며들었다가 용출하여 흘러내리는 계곡지역에만 발달 해 있다.
이런 지역들은 모두 특이한 풍광을 가지고 있다. 도시가 발달해 있는 계곡주변만 푸름을 볼 수 있고 주위의 높은 산과 언덕들은 풀과 나무들이 자라지 못하는 회백색 황무지의 배경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는 신기한 풍광이다.
또 한 번 놀란 것은 페루인들의 심성이다. 처음 리마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대사관에서 마중 나온 영사의 첫 인사가 리마는 매우 위험한 곳이니 강도나 날치기를 당하지 않도록 하라는 당부의 말이었다.
난생 처음 발을 내디딘 생소한 땅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주위의 모든 페루인들이 모두 강도와 도둑으로 보인다. 지레짐작으로 페루인들은 모두가 심성이 좋지 못한 사람으로 여기게 되었다. 얼굴색도 오랜 세월동안 태양에 그을린 구리 빛 검은 피부로 보기에 그리 썩 호감을 주는 모습이 아니었고 키는 자그마한 게 한국인과 별반 차이가 없지만 머리가 크고 상체가 무척 발달하여 아주 다부지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모습부터가 나의 선입견에 더욱 더 부채질을 해댔던 것 같다.
하지만 지방 중소도시인 이곳 모케구아에 내려 와서 몇 달 동안 현지인들과 조심스럽게 부대끼며 생활해 본 결과 페루인들의 심성이 의외로 너무 맑다는 사실에 놀랐다. 대도시인 리마에는 급격한 도시화로 유입된 도시빈민들에 의한 생계형 강·절도사건이 빈번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정도의 사건들은 어느 나라의 대도시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정도의 것이라고 한다. 그 것을 두고 전체 페루인 들의 심성을 의심했으니 빙산의 드러난 부분만을 보고 물 밑에 숨겨진 진실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한 것 같다.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면서 삶을 이어 온 우리 동양인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자연환경은 그 곳에 오랜 세월 살아 온 사람들의 심성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믿어 왔다. 그리고 자연환경요소 중 물은 사람의 심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물은 사람의 심성을 푸근하고도 넉넉하게 만들어 준다. 가뭄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민심이 흉흉해 진다고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물이 흔하지 않은 이렇게 메마른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아 온 페루인들의 심성이 메마르거나 야비하지 않고 맑은 여유로움으로 흘러넘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게다가 오랜 세월 백인들의 혹독한 지배구도 속에서도 피폐해지지 않고 페루 서민들의 심성을 저리 맑게 보존하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답은 맑은 하늘에 있는 것 같았다.
페루의 맑은 하늘을 처음 보게 된 것은 따끄나 공항에 내려 모케구아로 가는 그 황량한 사막의 도로 한가운데에서였다. 자동차가 구름이 엷게 낀 따끄나의 해변시가지를 벗어나 높은 산 중턱으로 올라서자 구름이 벗겨지면서 차창 밖에는 온 통 회백색 황무지, 작열하는 태양빛 그리고 푸른 하늘, 이 세 가지로 가득 차 버린다.
그 이후는 항상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주 된 자연환경은 그 세 가지가 전부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페루인들이 옛날부터 모여 사는 안데스 고원지대에는 우기 때인 두서너 달을 제외하고는 사시사철 이렇게 강렬한 태양과 맑은 하늘이 계속된다는 사실도 함께 확인 할 수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잉카제국의 멸망을 초래한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 여태 풀리지 않던 수수께끼의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왜 잉카의 마지막 황제 아툴알파가 7만의 대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기만술에 속아 고작 180여명의 병사들에게 사로잡히게 되었는지, 왜 잉카족들은 황제를 석방하겠노라는 피사로의 약속을 하늘처럼 믿고 6톤의 황금과 12톤의 은을 모아 피사로에게 바쳤는지, 해답은 너무도 맑은 저 하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자손손 대대로 저렇게 맑은 하늘아래 살아 온 잉카족들은 태생적 순진무구함에 길들여져 있어 남을 속이거나 전술이라는 이름으로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일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나만의 생각일까? 황금과 은만 빼앗고 황제를 처형할 줄을 저 하늘처럼 맑은 마음의 잉카인들이 꿈엔들 눈치 챌 수 있었겠는가?
역사가들은 잉카제국의 멸망 원인을 유럽인들이 가지고 온 천연두 병균과 잉카제국의 내부분열 등 여러 가지로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한 가지 덧붙이고 싶다. 유럽인들이 가지고 있던 사악한 마음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던 잉카인들의 순진무구한 마음, 그리고 잉카인들의 마음을 수 천 년 동안 그렇게 키워 온 저 맑은 하늘도 그 원인들 중 하나라고 하면 나의 지나친 억지논리일까?
피사로는 자기가 저지른 소행 때문에 맑은 하늘이 두려웠던 걸까? 아니면 자기도 순진무구하게 변할 것을 두려워했던 걸까? 자기가 건설했던 인공도시인 리마를 맑은 하늘이 연중 지속되는 해발 천 미터 이상의 고원지대가 아니라 구름이 늘 끼어 있는 바닷가로 결정했던 것을 보면 피사로도 푸른 하늘이 인간에게 미치는 그 위력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역사의 기록을 보면 피사로의 잔인한 학살과 천연두의 전염으로 잉카인들의 인구수가 삼사십년 만에 600만에서 100만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역사 속에서는 잉카의 순진무구한 마음은 패배가 되어 안데스 골짜기들을 피로 얼룩지게 했지만 언젠가는 나와 너를 그리고 우리 모두를 살리는 구원의 메시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어느 것이 진정한 승리인지 저 푸른 하늘은 알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