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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4년 전 정권에서 문화예술인들을 대상으로 한 블랙리스트는 이미 밝혀졌지만 최근에 9년 전 정권에서 정보부를 동원하여 정부 정책에 비판적이었던 문화예술인들이 방송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방송 기자, PD들을 한직으로 내몬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있는 남녀 배우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덮어씌우기 위하여 이들의 누드 합성 사진을 제작하여 SNS로 유포한 사실도 드러났다.
정보부가 댓글부대 등을 동원하여 정치에 개입하고 선거에 개입하는 것보다도 언론인과 문화예술인들의 입을 막으려고 은밀하게 장막을 치는 행위가 더 심각하지 않을까? 이는 민주주의 헌법이 보장하는 사상과 예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의 꽃은 국민의 것이므로 권력이 꺾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독재와 탄압이 횡행했던 근대의 권력은 모두 무너지고 민주주의 문화를 확산하고 나라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국가 본연의 책무다. 인간을 우민화하고 창의력을 말살하려는 시도는 성공한 적이 없다.
주나라 여왕(厲王)은 세금을 무겁게 매기고 비판하는 자를 철저히 감시하고 탄압했다. 중신 소공 호(召公 虎)가 왕에게 “방민지구 심어방수(防民之口 甚於防水, 백성의 입을 막는 일은 물을 막는 일보다 심각하다는 뜻)”라고 간언했지만 듣지 않았다(사마천의 ‘사기’).
여왕은 오히려 아부하는 측근들에 둘러싸여 밀고를 장려해 비방하는 자를 잡아들여서 닥치는 대로 죽였다. 언로가 막힌 백성들은 결국 반기를 들고 왕궁을 습격하는 바람에 여왕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4년 전에 국민대통합의 시대를 열어가겠다면서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권력이 유지되었다면 과거 정권의 부정행태가 드러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원을 꿈꾸었던 그 권력은 너무나도 폐쇄적이었고 주변 인물도 정상적이지 못했다. 군주시대에도 몸을 대궐에 숨기고 특정인과만 대화하고 조정대신과 백성들과 소원해졌던 군주는 천하가 무너지고 배반할 때까지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두루 여러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은 명군(明君)이요 한쪽 말만 편벽되게 듣는 것은 암군(暗君)이었다. 암군 또는 어두운 권력은 모두 몰락했다.
박 전 대통령의 지음(知音)과도 같았던 측근의 일탈행위는 도를 넘었고 결정적인 흔적들은 너무나도 많았다. 우리 국민들은 작년 가을 국화꽃이 필 무렵부터 흰 눈이 흩날릴 때까지 광화문 광장 등지에서 촛불을 들고 분노의 심정을 하늘로 날렸다. 가끔 하늘에서 겨울비도 왔지만 그것은 촛불의 손을 막을 수 없었다.
금년 봄 박 전 대통령은 탄핵의 심판을 받았다. 형식적으로는 법적인 탄핵이지만 심정적으로는 국민반정(國民反正)의 성공 아닐까? 이제는 과거의 부조리, 불합리를 걷어내고 헌법과 법률에 따라 나라가 운영되는 정상적인 나라로 바뀌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백범 김구는 독재정치를 배격하고 우리 동포 각 개인이 언론의 자유를 누려서 국민전체의 의견대로 정치를 하는 나라, 일부 당파나 어떤 한 계급의 철학으로 다른 다수를 강제함이 없고 우리들의 이론으로 우리 자손의 사상과 신앙의 자유를 속박함이 없는 나라, 그리고 부강한 나라보다도 창의적인 문화가 꽃피는 나라를 만들고 싶어 했다(‘백범일지’). 우리는 100년 전의 백범에게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 소쩍새가 봄부터 그렇게 울었듯이 우리 역사는 민주주의를 위해서 많은 희생을 치렀다. 국민의 아픔과 상처 고통, 그리고 권력의 실패는 역사에 오롯이 기록되어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니므로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기본적 인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권력으로 문화예술인들의 정신세계를 재단할 수도 없고 성공할 수도 없다. 권력은 헌법적 가치를 존중하여야 하고 크기만큼이나 겸손해야 한다.
국민반정(國民反正) 성공의 기운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일까? 어둠에 묻혔던 과거사의 사실이 자꾸 드러나고 있다. 우리에게 역사의 거울이 있다면 그 진실을 모두 환하게 드러낼 수 있으련만 서리와 눈이 내리고 언 땅 위로 매화꽃이 향기를 품어 낼 무렵이면 또 어떤 사실이 드러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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