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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만삭의 몸으로 아이를 업고 땀을 흘리면서 대문을 들어서는 아주머니는 우리 집 옆방에 세 들어 살고 있는 분이었다.
한 달 전 사정에 의하여 집사람이 방을 비워달라고 했는가보다. 이 말을 들은 아주머니는 셋방을 구하려고 이 골목 저 골목을 다니면서 알아보아도 셋방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1970년대로 기억하는데 그 당시 아파트는 없었고 먹고 살기 이한 의식주에서 주택을 마련하기는 힘든 때여서 셋방이 나기 바쁘게 들어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사정을 시름에 잠겨 하소연을 하더라고 집사람을 통해서 딱한 사정을 전해 들었다.
이 말을 듣고 문득 생각나는 것이 공무원 재직 중 상주에서 근무 할 때 남의 집 셋방을 얻어 살았다.
지금 51세가 된 막내 종말이를 임신해서 만삭이 되었는데 주인집 아주머니와 같은 해 같은 달에 출산예정이어서 한 집에서 두 사람이 같이 출산을 못한다는 속설 때문에 주인집에서 방을 빼달라고 했다.
집사람이 방을 얻으려고 사방을 수소문하고 돌아 다녀 보았으나 여의치 않았다. 산일(産日)은 다가오는데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어느 날 집에 잠시 들렀더니 집사람이 부엌에서 자리를 펴고 있어서 무엇 하느냐고 물었더니 출산이 급해서 여기서라도 아이를 낳으려고 준비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 당시 부엌이란 지금 같은 주방(廚房)이 아니라 불 때는 솥이 있는 땅바닥으로 찬바람이 들어오는 허술한 환경이기 때문에 출산 장소로는 부적절한 환경이다.
속설 때문에 산모의 심적 압박감에서 초조한 나머지 옹졸한 생각으로 부엌에서 출산준비를 하는 장면을 본 나는 무능하고 못난 자신의 원망과 분통을 느꼈다. 황당한 마음으로 급히 집사람을 자전거에 태우고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누님 댁으로 가서 눕히는 즉시 몇 분 뒤에 순산한 남아가 지금의 막내 자식이다.
당시의 봉급은 1만5천500원으로 궁핍한 생계를 짐작할 수 있다. 여행 중 출산이 급해서 화장실이나 차 안이나 비행기 안에서 출산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집을 두고 부엌에서 출산할 생각을 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분통이 터지고 아찔한 생각이 든다.
이러한 과거의 두고두고 잊지 못할 기억 때문에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사자성어가 생각났다.
역지사지란 서로의 처지를 바꿔 생각한다는 뜻으로 상대방의 처지에서 사고(思考)해 보는 것. 나의 입장만 생각하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는 것이다. 과거 나 자신의 입장에서 큰 아들을 불러 옆방 아주머니 사정을 이야기하고 2층 슬라브 지붕 바닥에 조립식으로 방, 주방 겸 거실, 화장실을 넣고 옆방 아주머니를 2층으로 옮기도록 하였다.
이해를 돕기 위해 ‘역지사지’의 유래는 이렇다. 옛날 어느 영감의 귀한 딸이 부잣집 며느리로 시집을 갔는데 오랜만에 딸을 보러갔다. 모처럼 오신 아버지를 위해서 딸은 갈비를 굽고 닭을 잡아 볶고 온갖 정성을 다하여 대접을 했다. 딸집에서 돌아온 영감에게 마누라가 농담 삼아 당신 부자 딸네 집에 가서 대접을 잘 받았느냐고 물으니 대접은 무슨 대접 하면서 영감은 소리를 버럭 지르는 것이었다.
“밥상에 내가 먹을 것이 뭐가 있어! 두부가 있나, 묵이 있나, 닭도 많던데 달걀하나 쩌 놓았나, 치아가 안 좋은 내가 그까짓 갈비구이며 닭볶음이 내게 무슨 소용이란 말이여!
마누라는 영감의 치아가 부실해서 집에서는 국물이나 먹고 지내던 것을 딸이 좀 더 현명(賢命)했더라면 늙은 아버지의 치아를 생각했을 것이고 아버지의 경우에 맞는 음식을 대접 했을 것이다.
역지사지로 자기만의 생각을 떠나 처지를 바꿔 상대방의 위치에서 즉 아버지의 치아를 생각 했더라면 이런 실수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끝으로 소통과 공감의 핵심 비결로서 역지사지에 이어 타인의 감정에서 입장을 바꿔 느껴보고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하는 역지감지(易地感知)가 있다. 또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알았다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뀐 입장을 고려해서 주변 사람들에 느낀 바를 실천에 옮기는 것이 역지행지(易地行之)이다.
역지사지의 뜻을 알고 역지감지와 역지행지를 동시에 실천하는 삼합완성이 알고 느끼고 실천하는 역지사지 이행의 완성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