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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친구야, 니만 알아라.

배영희
(수필가∙효동어린이집 원장)

권숙월 기자 / siinsw@hanmail.net입력 : 2018년 09월 19일
ⓒ 김천신문
친구야, 나는 비상약을 항상 가지고 다닌다.
가끔 아플 때, 삶이 힘들어질 때, 무기력증에 빠질 때 비상약을 급히 꺼낸다.
그것은 물도 필요 없고 약봉지도 필요 없고 24시간 내 몸에 붙어있으니 찾기도 쉽다.
약을 먹기까지가 중요하지 먹고 나면 한 5분만 지나도 바로 효과가 나타난다.

눈가에 근육이 풀리며 입 꼬리가 올라가고 크게 심호흡을 하게 된다.
때론 고개를 들어 먼 산을 바라보기도 하고 심지어 새소리도 즐겁게 잘 들린다.
‘어찌 그럴 수 있겠냐!’고 이가 부득부득 갈리다가도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라며 성인군자가 되지.

세상이 다 이해된다. 진짜 신비로운 마약이다. 사실 별로 비싸지도 않고 누구에게나 판매는 되고 있다. 담배나 술처럼 미성년자가 살 수 없는 것도 아니고 꼭 약국에 가서 돈을 지불하고 사는 것도 아니다.
참 다행스럽게 지위와도 관계없고 성별과도 관계가 없고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동등하게 판매가 되니 고맙기 그지없다.

특히 신부님이나 목사님이 이 약을 많이 드시는 걸 보았다. 어쩜 입에 달고 다녀서 중독자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동안은 이 비밀을 몰랐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고 아는 사람 몇몇이 자기들끼리 쉬쉬하며 사용했던 것 같다. 나이가 오십이 넘고 오만가지 약을 백방으로 찾아다니다 보니 겨우겨우 알게 되었다.

침 잘 놓는 사람도 만나봤고 한약도 지어먹어봤고 X-레이도 찍어 봤고 안 해본 게 없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는 것처럼 겉은 멀쩡한데 속은 썩어 문드러지고 몸은 안 아픈 곳이 없는데 검사결과는 매일 신경성이라니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흔히들 신경 끄라고 하지만 그게 어디 꺼지냐. 생각할수록 가슴속에 나사못 돌리듯 헤집고 들어와 때론 잠을 설치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아무도 안 듣는데서 욕이라도 실컷 했음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잖아. 사실 그동안은 나만 억울한 줄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안 힘든 사람도 없더구만. 천석군은 천 가지 걱정, 만석군은 만 가지 걱정이라더니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일수록 겉은 웃고 속은 다 상했더라구.
물론 돈 없는 사람은 돈만 있으면 해결되고 아픈 사람은 안 아프면 살 것 같은 게 이 지구 사람 전부 소원이지 아닐까 싶다만.

소원, 그래 내게도 소원은 있지. 그러나 이 약을 발견하고 나서는 그 소원조차도 내려놓게 되더라.
그게 뭐 솔직히 말하면 욕심일수도 있으니까. 이 비밀을 누설해도 될는지 모르겠다.
아님 짭짤하게 오만 원 권 한 장이라도 받고 말해줘야 되는 건 아닐까?
그래, 그래도 뭐 오랜 친구라지만 니한테 해준 것도 없는데 이참에 그냥 말해줄게.

친구야, 잘 들어라. 그건 두 글자로 되어있다.
첫 글자는 ‘ㄱ’으로 시작하고 두 번째 글자는 ‘ㅅ’으로 되었는데 귀 살짝 대 봐라.
○○, 들리나 들려?
뭐, 그리 눈을 동그랗게 뜨노.
그래 ‘감사.’다 놀랬구나!
니 그거 알았나?

있잖아, 진짜로 명약이더라. 니도 한 번 써봐라.
너무너무 힘들 때 이 약을 꺼내봐라.
‘감사’ 이렇게 니 머리에 넣어 버리는 거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힘이 난다.

그리고 누가 미울 때 있잖아. 그때도 효과 좋데이. 그만 그 사람이 안 미운거라.
감사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사람 덕분에 배운 게 너무 많은걸 느끼게 되더라.
아! 그래, 그렇지 세상엔 다 똑같은 사람만 사는 게 아니구나. 뭐 그런 걸 배운다니깐.

친구야! 우리도 이제 하나둘씩 자꾸 나이 먹어지잖아.
몸은 어둔해지지. 얼굴에 주름은 생기지. 노안은 오지, 뭐 자꾸 서글퍼지잖아. 니는 안 그렇나?
마음엔 아이가 있는데 겉은 어른인척 해야 되니까.
그러니깐 어쩜 매일 이 약을 먹어야 되는 게 맞는 것 같더라.

감사, 감사, 감사 이렇게 주문을 외는 거라. 그러면 찡그렸던 얼굴이 펴진다.
자식이 있어서 감사, 부모가 살아계셔서 감사, 일 할 수 있어 감사, 내 몸 하나 누일 곳 있어 감사, 걸어 다닐 수 있어 감사.
감사 안한 게 하나도 없는 거지 뭐.
그러니깐 내 맘 알겠제.
나는 이 약을 수시로 먹는다. 사실 오늘 아침에도 하나 먹었다.
좀 아쉬운 건 좀 더 빨리 알았더라면은 더 좋았을 걸 싶은 게지.
그러니까 니도 어서 먹어봐라
요즘 힘들어 보이더라.
니 속을 누가 알겠노.
그래, 다음에 커피나 한잔 하자.
이만 줄인다.
권숙월 기자 / siinsw@hanmail.net입력 : 2018년 0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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