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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안데스의 막걸리, ‘치차(Chicha)’

정성천(수필가)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9년 10월 02일
ⓒ 김천신문
40여년의 교직생활을 정년으로 마치고 운 좋게 찾아 온 페루생활도 2018년 9월로 벌써 3년째를 시작하게 되는 것 같다. 지난 2년 동안 한국교육자문관으로 페루남부의 건조한 ‘코스타(costa)’지역인‘모케구아(Moquegua)’에 위치한 국립기숙영재학교인 ‘꼬아르 모케구아(COAR Moquegua)’에서 근무했었다. 올해부터는 페루 교육부와 한국 국제교육원사이에 맺은 MOU협약이 갱신되는 바람에 해발 3천m가 넘는‘쿠스코(Cusco)’로 근무지를 옮겨 연장 근무를 하게 됐다. 사실 MOU가 갱신되지 않고 그대로 ‘모케구아’에서 계속 생활을 해야 했다면 근무연장을 신청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극도로 건조한 페루 ‘코스타(Costa)’지역에서의 삭막하고도 단순한 생활에 아내도 나도 너무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쿠스코’는 안데스의 3m가 넘는 고산지역(페루에서는‘씨에라’지역이라고 부른다.)이기에 야간에 기온이 떨어져 상당히 춥다는 핸디캡이 있지만 우기에는 말할 것도 없고 건기에도 때때로 비가 내리는 지역이라 ‘모케구아’자연과는 달리 온 산과 들이 푸른 풀과 관목들로 덮여 있고 나무와 숲 그리고 곳곳에 시냇물이 흘러가는 마음 푸근한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게다가 ‘쿠스코’는 옛날 잉카제국의 수도였기에 근처에는 수많은 유적들과 빼어난 자연 경관들이 많이 있어 1년 근무연장을 흔쾌히 신청했었고 오히려 연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내심 초조하기까지 했었던 기억이 난다.재계약과 건강검진을 위한 2주간의 한국체류 후 9월 초 페루로 돌아 와 ‘쿠스코’에 도착해보니 새로운 근무지인‘꼬아르 쿠스코(COAR Cusco)’는 ‘쿠스코’에서 북서쪽으로 20km 떨어진 자그마한 위성마을인 ‘뿌끼우라(Pucyura)’에 위치하고 있었다.
‘쿠스코’에 살림집을 얻을까도 생각했지만 출퇴근의 편리를 위해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소도시 ‘이즈쿠차카(Izcuchaca)’에 정착하기로 하고 호텔도 그곳으로 정했다. 하루라도 빨리 살림집을 구해야 낯 선 곳에서 생활도 안정이 되고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이미 경험으로 잘 알기에 도착 첫날부터 살림집을 구하러 다녔다.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이 묘한 것인지 우연히 만난 현지인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이틀 만에 호텔생활을 청산하고 비교적 마음에 드는 새집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 가재도구와 전자제품을 사러 바삐 뛰어다닐 때는 몰랐는데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고 나니 주위의 풍정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살림집은 ‘쿠스코’에서 인근 주인 ‘아푸리막(Apurimac)’주의 주도인 ‘아방까이(Abancay)’로 가는 주간선 국도에서 한 블록 들어간 이면도로로 비교적 한산한 소도시거리의 2층에 위치해 있다. 특이한 풍경은 길 바로 맞은편에 선술집이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곳이 주막인지도 몰랐다. 한가한 시간에 무심코 내려다보니 그 곳에서 나온 사람들이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모습들이 자주 보이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횡설수설 술주정을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모케구아’에서는 보지 못했던 광경이다. 바로 옆집에 사는 건물 주인에게 물으니 그곳이 이곳 전통술인 ‘치차(chicha)’를 파는 주막이라고 한다.‘치차’는 옥수수로 만드는 중남미 원주민들의 전통 음료이다.‘치차’에는 알콜도수가 없는‘치차 모라다(chicha morada)’와 알콜도수가 4-5도정도인 ‘치차 데 호라(chicha de jora)’두 가지가 있다. ‘치차 모라다’는 자주색 옥수수(morada)를 사용하여 발효과정을 거치지 않고 만들기에 주기가 없으며 진한 자주 빛 음료인데 반해‘치차 데 호라’는 노란 옥수수(jora)를 발효시켜서 담기에 색깔이 우리나라 막걸리와 아주 흡사하고 맛도 비슷하다. 여기서 보통 ‘치차’라고 부를 때는 주기가 있는 ‘치차 데 호라’를 지칭 한다.‘치차’는 잉카시대 국가의 중요한 제사에 제주로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종교축제의 음료로 주로 사용되었고 인간제물을 신에게 바칠 때에도 인간의 고통을 덜어 주기위해 ‘코카’ 잎과 함께 사용된 흔적들이 발견되고 있다. 지금도 안데스 고원지대에서‘치차’는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해주는 사회생활의 매개체이기도 하고 고단한 농사일에 활력을 주는 농민들의 술일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성스러운 종교의식의 중요한 술로 널리 애용되고 있다. 과거에는 중남미 전역에서 ‘치차’를 사용해 왔으나 요즈음에는 3천m가 넘는 페루 남부 고원지대의 농촌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대도시의 번화한 곳에서는 맥주가 애용되고 있지만 대도시의 뒷골목이나 그 외 중소도시의 이면도로 그리고 자그마한 시골마을 등 맥주가 비싸다고 느끼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면 의례히 ‘치차’ 주막이 존재한다.
‘치차’ 주막은 기다란 대나무 장대 끝에 붉은 천으로 싼 꽃을 달아 놓아서 누구에게나 쉽게 눈에 잘 띈다. 요즈음은 붉은 천이 아니라 흔한 붉은 비닐로 대신하는 것 같은데 청사초롱을 달아 놓았던 우리나라 옛날주막의 낭만이 생각나기도 해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치차’를 한 잔 마신 듯 마음이 훈훈해진다. 그리고 ‘치차’를 마실 때‘치차’를 처음 받는 사람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마시기 전에 대지의 여신인 ‘파차마마(Pachamama)’에게 한 모금 뿌려 반드시 헌주를 하고 난 뒤에 마셔야 하는 풍습이 우리나라 ‘고수레’풍습과 흡사해 더욱 친근감이 간다.잉카 이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술이니 그 역사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모르고 있다가 몇 해 전에 기원 5천년 전의 토기가 ‘티티카카’호수 인근에서 발견됐는데 그 토기표면에서 ‘치차’성분이 검출됐다고 한다. 아무래도 ‘치차’의 역사는 남미의 인간역사와 함께 하는 것 같다. 재료가 쌀이 아니고 옥수수라는 것 말고는 담는 방법이 우리나라 막걸리와 아주 유사하다. 요즈음은 우리나라 엿기름(맥아)처럼 옥수수의 싹을 틔워 사용하고 있지만 옛날에는 발효의 용이함을 담보하기 위해 사람들의 침을 발효에 이용했다는 점이 막걸리와 다르다고 하겠다. 안데스의 마을에서 잔치나 제사 등으로 ‘치차’가 공동으로 필요할 때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둘러 앉아 물에 불려 놓았던 옥수수 알갱이들을 각자 입으로 꼭꼭 씹어 한 곳에 내뱉어 모은다. 그리고 그것을 그늘에서 말렸다가 물과 함께 다른 옥수수가루를 더 넣고 미지근한 불에 끓인 후 토기그릇(촘바:chomba)에 넣어 2~3일 발효시켜서 ‘치차’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지금 이곳 ‘씨에라(siera)’지역의 생활 모습은 마치 우리나라 60~70년대의 생활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생활의 수준도 사람들의 의식도 나의 어린 시절과 비슷해 ‘치차’주막과 그 곳을 들락거리는 사람들을 보면 옛날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6-70년대 가난하던 시절 우리나라도 마을마다 막걸리 주막이 있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 그리고 너무 취해서 길거리 주저앉아 잠이 드는 모습들도 그 당시 흔히 보는 풍정이었다. 가난으로 인한 생활의 어려움은 술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지내기가 힘든 나약한 사람들을 만들어 낸다는 점은 우리나라나 안데스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여기도 하루 종일 주막에서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다가 끝내 주모에게 쫓겨나는 사람들도 있고 길거리 쓰러져 잠든 사람들도 종종 보인다.나의 어린 시절 우리 집은 마을에서 좀 떨어진 외딴집이었다. 석양이 뉘엿뉘엿 서산에 지고 어둠살이 서서히 짙어질 때면 동네 막걸리 주막으로 가서 여태 집에 돌아오시지 않는 아버님을 모셔오라고 어머니는 나에게 자주 심부름을 시키셨다. 어릴 때 기억으로는 아버님은 농사일 하시는 모습보다 술에 취해 있는 모습이 나에게 더 익숙하게 다가온다. 어머님께 전해들은 바로는 해방이라는 커다란 역사적인 변혁은 일찍 자수성가하신 아버님의 성취를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게 만들었다고 했다. 1910년생인 아버님은 서당교육과 신식 학교교육을 함께 받은 그 당시의 젊은 엘리트 이셨던 것 같다. 결혼 후 혈혈단신으로 북한 땅으로 가신 아버님은 함경남도 단천의 광부에서 시작해 갖은 고생 끝에 흥남 간유공장의 간부로 승승장구하시다가 해방으로 인해 모든 걸 잃어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오시게 됐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라는 참담한 현실을 겪으며 점점 더 나약한 모습으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술에 의존해서 세월을 보내셨다고 했다. 모든 생활과 자식 키우는 일을 어머님에게 맡기신 채 세월만 허비하시는 아버님의 무기력한 모습이 그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고 가난에 찌든 원망만 쌓였던 어릴 적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제는 아버님의 나약한 행동들이 원망보다도 가슴 저미는 슬픔으로 이해가 되는 걸 보니 나도 이제 나이가 꽤 든 모양이다. 하고 한 날 막걸리에 취해 세월을 보내셨던 아버님의 그 울분과 슬픔을 내 나이 60대 후반이 돼서야 헤아려보니 가슴에 싸한 회한이 스치듯 지나간다. 단 한 번이라도 아버님과 공감하는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집안의 가난을 무기력한 아버님 탓으로 돌리며 반항하는 불효의 모습도 때때로 보였던 걸 생각하니 땡감을 한 입 삼킨 듯 울컥 목이 멘다.
음력 구월 초닷새가 아버님 기일이다. 지구 반대편인 페루에서, 그것도 해발 3천m 넘는 고산지대에서 제사를 모시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아내는 추석에 차례 상차림도 정성스레 준비하더니 이 번 아버님 제사준비도 ‘쿠스코’에 가서 장을 봐 오는 등 열성적이다. 지금까지 외국에서 차례와 제사상을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 쓰이는 일이 제주 선택이었는데 이번 아버님제사에는 별 혼동이 없을 것 같다. 아버님이 막걸리를 좋아 하셨으니까 안데스의 막걸리인 ‘치차’를 아버님 영전에 올리며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어릴 때 저지른 불효한 행동을 참회하며 때 늦은 용서를 빌리라.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9년 10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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