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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영희 (수필가∙효동어린이집 원장) |
ⓒ 김천신문 |
“살아간다는 게 앨범 속의 사진마냥 그렇게, 그렇게 무르익어 가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참 많이도 걸어왔고 또 어떻게 생각하면 갈 길이 아직도 먼 것 같은데 이쯤의 가을 길에서 그냥 밥 한 그릇과 술 한 잔 기울일 친구가 그립습니다. 시간은 저녁노을 여섯시, 장소는 담 낮은 우리 집, 차는 두고 오시면 더 좋고 메뉴는 별 것 없으니 기대는 마시고 가벼운 마음으로 와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손 편지로 눌러쓰고 작은 국화 한 송이, 안경, 볼펜을 책상에 올려둔 채 사진 찍어 초대장을 딱 열 명에게 보냈다.사실 아영씨 때문이다. 기쁜 충격이라고나 할까, 내 맘 안에 자라던 장미 울타리를 걷어내고 얼마 전에 은행나무 한 그루를 심게 되었다.처음엔 간첩인줄 알았다. 저렇게 세련된 여자가 이 촌구석까지 내려와 숨어 지내다니 혹시? 맞아, 분명히 그럴 거야! 생각했었다. 어떻게 저런 명료함과 그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교양, 유머와 재치까지 그녀는 나보다 상급이었다.그런데 벌써 5년 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끝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그녀의 가족관계, 어느 학교를 나왔으며, 무슨 일을 했으며, 눈치 안 채게 예리하게 파헤치기까지 했으니까. 하하! 물론 아직도 양파 같은 그녀건만....... 비가 억수로 쏟아지거나 카톡방에 친구는 약 천명이나 되는데 커피 마실 사람이 눈 닦고 봐도 없을 때나, 아니면 그냥 한가로울 때 그녀의 집으로 무작정 간다.먼저 뭐부터 얘기를 꺼내야 하나. 일단 집값부터 말해야겠다. 일천만원, 그러니까 일억 원이 아니라 천만 원짜리 집에 살고 있다. 다 쓰러져가는 농가를 개조해 그녀가 터전을 일군지 10년, 내가 보기엔 김천에서 제일 예쁜 집 같다. 식물원이며 미술관이 되었다. 그림을 했던 사람이라 그런지 낡아빠진 창고문도 작품이 되었고 마당에 깔린 돌멩이 하나도 예술, 예술이다. 라일락 한 그루가 있는데 보랏빛 꽃이 혼자보기 아깝다고 나무 아래 원탁을 놓고 따뜻한 국수 한 그릇에 라일락 축제도 했었다. 추운 겨울 어느 날 담요를 있는 대로 꺼내 어깨에 감싸고 양초를 온 마당에 켜서 기타를 치며 캐럴을 불렀다.그 동안 잘 산다는 게 돈이 많고 명예가 높아야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남 보기 근사한 차를 타고 명품가방을 들며 몰라도 아는 체 하는 것이 잘 사는 방법이라 생각했었다.마치 정숙이처럼 말이다. 서울에서 80평 아파트에 외제차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돈으로 감았건만 남편이 바람피운 다는 둥, 아들 키워봐야 소용없다는 둥, 안 아픈 곳이 없다는 둥 가끔 전화 올 때마다 어릴 적 친구라 반갑긴 한데 어서 끊고 싶어진다.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겉치레와 남 의식 때문에 나를 내몰아 살 것인지, 내가 하고 싶은 일에 가치를 두며 소소한 행복을 느낄 것인지, 아영씨를 보며 그 동안의 내 생각도 점점 바뀌어간다. 작은 집에 살아도, 비록 작은 차를 탄다 해도 그 무엇도 부럽지 않은 소박함.......우리나라 사회 갈등 지수는 점점 높아지고 사회갈등 분쟁금으로 지출되는 금액 또한 연간 82조나 된다. 며칠 전 가까운 지인 중에도 생활고를 비난해 죽은 이가 있으니 상대적 빈곤이 점점 피부로 느껴진다. 없으면 없는 대로 우리 그렇게 살자. 그냥 그렇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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