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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화 (교수) |
ⓒ 김천신문 |
언론 플레이에 능하고 잦은 TV출연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다할 정도로 지명도 높은 국회의원이 유치원을 방문했다. 아이들은 TV에서 자주 본 사람이 나타나자 유명 연예인이라도 만난 듯 손뼉 치며 환호했다. 으쓱해진 국회의원이 어깨를 가다듬으며 아이들에게 물었다.“어린이 여러분. 내가 누군지 알아요?” “예~~~ 알아요. 국회의원요. 텔레비에서 봤떠요.” 감동의 폭죽이 송이송이 뇌리에서 터질 것 같은 고무된 마음을 간신히 진정시킨 국회의원이 다시 어린이들에게 물었다.“여러분 그러면 내 이름도 아나요?”아이들이 큰소리로 말했다.“예~ 알아요. 저 새끼요!!! 엄마 아빠가 그렇게 불러요.”우리나라에 저씨 성을 본관으로 가진 사람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필자도 저런 성명을 듣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대의 민주정치의 꽃이라 불리는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바닥이다 못해 참담한 생각마저 드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면 지나친 일반화로의 비약이 되는 건가? 말로 떡을 찌고, 거짓말로 고물을 얹은 떡시루 판이 국회의사당이라면 떡시루에 둘러앉아 젓가락 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이란 말이 있다. 의회 민주주의의 역사는 기원전 아테네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인 폴리스(polis)에 형성된 광장인 아고라에서 민회를 열어 다수결에 의한 직접 민주주의의가 뿌리를 내렸고, 의회 민주주의의 대명사격인 영국은 1215년 대헌장에서 발단되었거니와 그들의 고결의무 즉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대단한 것이었다.서구의 의원인들 모두가 그렇겠는가만 유독 우리나라는 왜? 지역 사랑과 애국의 일념으로 청빈과 정의의 의정활동이 불가능하다시피 한 것일까? 한국인의 원초의식에 깊게 뿌리박고 있는 거짓말에 관대한 문화와 소모적 당쟁과 실리 없는 명분으로 백성을 도탄에 몰아넣으면서까지 당리당략을 목숨보다 우선시 하던 조선조 정치이념의 DNA가 오늘에 닿아 있음을 보는 마음은 참담하다.우선 당선부터 되고 보자는 후안무치한 선량 아닌 선량들은 자신이 당선되면 유권자와 국민의 뜻을 추상 같이 받들어, 유권자가 원한다면 남자를 여자로 바꿔주고, 산에다가도 다리를 놓아주겠다는 공약(空約)을 남발하기도 한다. 그런데 또 여기에 속아 넘어가는 것도 세계에서 대학 진학률 최고인 우리의 잘 배운 대한민국 국민들이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유체가 이탈된 듯한 무뇌(無腦)의 잘못된 선택은 낙랑공주가 찢은 자명고의 칼이 될 것이다. 2020년 4월 15일. 제21대 국회의원선거일이 채 6개월이 남지 않은 가운데 이미 공직선거법에 의한 공명선거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좌우 이념의 극한 대립으로 정치, 외교, 국방, 경제 어느 한 분야 없이 총체적 난국에 직면해 있고, 우리 김천도 중흥이냐, 퇴락이냐 하는 중차대한 역사적 기로에 와 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정의인줄을 아는 김천시민이라면 이처럼 심각한 과제를 자신의 진솔한 철학과 가슴으로 떠안겠다는 출마자를 향해 신성한 한 표로 선거의 혁명을 이뤄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정치 지도자는 꼭 유권자의 수준에 맞는 사람이 뽑힌다. 권리 위에서 잠자는 권리는 구제 받지 못한다는 교훈을 금과옥조로 새겨볼 때이다. “국회의원은 죄가 없다니까…아니 뇌가 없다니까…”그러니 국회의원은 아무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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