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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영호 (공박사연구소 소장) |
ⓒ 김천신문 |
몇 달 전에 어머님이 화장실에서 넘어지면서 갈비뼈가 부러져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매우 쇠약해지셨다. 그래서 나와 아내가 어머님을 모시고 와서 한 달 정도 어머님이 우리 집에 계셨다. 아내와 내가 정성스럽게 어머님을 돌보았다. 아내가 화장실 청소도 매일 하고 이부자리도 매일 갈아드리고 방 청소도 깨끗이 하고 아침마다 뇌건강 회복에 도움이 되는 건강보조식품을 드렸다. 어머님께서 며칠 지나고 나서 우리에게 뜻밖의 말을 하셨다. “너희가 나를 위해 너무 열심히 일을 하니 내 마음이 편치 못하다. 이제 그렇게 열심히 하지마라. 너희들도 힘든데 대충해라”어머니의 이 말씀을 듣고 나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어머님을 진정으로 대접하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인가? 아무리 내가 내 생각으로 어머님을 잘 대접한다고 해도 어머님이 불편해하시면 결국 잘 대접하지 못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나는 효도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불효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접이라는 것이 나 혼자만 잘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상대가 있기에 상대의 처지와 형편을 고려하면서 해야 하는 것이다.
옛날에 바닷새 한 마리가 노나라 서울 밖에 날아와 앉아 노래 부르고 있었다. 노나라 왕은 새의 소식을 듣고 신하들에게 새를 데려오게 했다. 왕은 그 새를 친히 궁 안으로 모시고 와서 자신의 기준에서 최선을 다해 대접했다. 새에게 술을 권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었고 아름다운 무희들의 춤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소와 돼지 양을 잡아서 새를 대접했다. 그런데 새는 어리둥절해하며 슬퍼하기만 했고 고기 한 점 먹지 않고 술도 한잔 마시지 않았다. 결국 그 새는 노나라 왕의 극진한 대접 속에 3일 만에 죽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장자’의 외편 중 ‘지락’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왕은 정성을 다해 새를 대접했지만 그 결과는 새의 죽음이었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며 남을 대접하지만 그 결과는 전혀 반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노나라 왕은 자신의 판단으로 자신이 해주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려고 했을 뿐 상대방이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새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장자는 새를 예로 들어서 말하고 있지만 정작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 모두는 어떻게 보면 타인을 노나라 왕이 새를 대하는 방식으로 대접한다. 그렇지 않은가? 내가 어머니를 내 방식으로 대접해서 불편하게 했듯이. 우리는 내 방식 내 생각 나의 기준에 맞추어 남을 평가하고 심지어 타인을 대접한다고 할 때에도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고려 없이 내 판단과 기준으로 행하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남편이 아내를 위한다고 하는 말이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아내가 남편을 위해서 한다고 하는 말이 남편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부모가 자식을 위한다고 하는 말이 자식의 마음에 큰 상처가 될 수 있고 자식이 부모를 위한다고 하는 말이 부모의 마음을 정말 아프게 할 수 있고 내가 사회를 위해서 한다는 바로 그 행위가 우리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리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먼저 나 스스로가 그렇게 하고 있지 않나 다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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