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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봄비가 소리 없이 내리는 이른 아침이다. 강가에 피는 물안개가 보고 싶어 팔당대교 인근 남한강을 찾았다. 인적은 드물고 강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언제 찾아와도 강물은 묵묵히 흐른다. 강물 위에는 앞산 그림자가 포근히 내려 앉아있다.
바람결에 산 그림자가 가늘게 떨린다. 그 위를 철새들이 떼를 지어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지나간다. 생태습지를 만들어 놓은 덕분에 이름 모를 많은 새들이 아침 협주곡을 연주한다.
외로운 백로는 먹이를 찾다가 마치 비행기가 이륙하듯 긴 날개를 펼치며 멋진 비상을 한다. 강변 산책로에는 별명이 공주머리인 노란 황매화와 이름이 예쁜 마가렛이 반갑게 손님을 맞이한다. 홍자색의 앵초와 자주색의 꽃창포가 자기들도 질수 없다고 자태를 뽐낸다.
자연의 잔치를 벌이는 봄꽃들도 예쁘다. 연두 빛깔의 새순이 나의 눈을 사로잡는다. 겨우내 움츠렸던 꽃들과 새들이 모두 함께 아름다운 계절을 축복하고 있다. 매년 이 맘 때쯤이면 대자연의 위대함에 자연 고개가 숙여진다.
한강은 언제부터 이렇게 흘렀을까? 기원전 18년 한강 유역의 위례성에 자리 잡은 백제 때도 한강은 흘렀을 것이다. 인류문명의 발상지인 다른 4대 강과 비슷한 시기인 BC 4000~BC 3000년부터라고 한다. 실제로는 수십 만 년 전부터 한강은 흘렀을 것이다.
한강은 어디서 발원해 어디로 흘러갈까? 북한강은 강원도 금강군의 옥발봉이 발원지다. 금강산의 비로봉 부근에서 발원하는 금강천 등과 합류해 남으로 남으로 흘러 소양강, 홍천강 등과 만난다.
남한강의 발원지로 강원도 오대원을 든다. 태백시 검룡소를 발원지로 보기도 한다. 남한강은 강원도 평창, 영월을 거쳐, 충북 제천, 단양 ,충주를, 경기도에서는 여주, 이천을 지난다.
이 두 강이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에서 합류해 한강으로 흘러든다. 나뭇잎에 맺힌 한 방울의 작은 빗물이 첩첩산중의 실개천이 되어 흐른다. 흘러 시냇물이 되고 강물이 돼 넓은 태평양으로 든다. 때로는 폭포수가 되어 시원하고 멋진 모습을 뽐내다가 폭포수 아래 깊은 못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다가 폭우가 쏟아지면 무서운 급류로 변해 마침내 범람해 순식간에 논밭을 다 삼켜버리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침 뚝 떼고 유유히 흐른다.
우리는 골치 아프거나 심각한 일이 생기면 자주 한강 둔치를 찾는다. 흘러가는 물을 보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한강 둔치에 가보면 콘크리트 바닥을 뚫고 잡초가 올라와 자연 제방처럼 모습이 변했다.
예전에는 고수부지라 불렀다. 고수는 일본어 ‘고스이코지’의 줄임말이고 부지는 빈터를 뜻하는 일본어 ‘시키지’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둔치는 물가 또는 물가의 둔덕진 곳을 뜻하는 순수 우리말이니 한강둔치로 부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한강둔치에서 각종 스포츠를 즐길 수 있고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차나 식사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아마 세계 어느 나라를 가 봐도 한강둔치 만큼 넓고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 강가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 ‘바다와 강은 아내라기보다 연인이다’라고 한 말이 기억난다. 가끔 와 보면 좋지만 매일 쳐다보고 있으면 우울증에 걸리기 때문에 그런 말이 생겨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강물을 보면 가슴 답답한 것이 해소되고 스트레스가 풀린다. 하지만 쳐다보고 있으면 흘러오는 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물을 보게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파리 세느 강변의 아파트가 다른 지역의 아파트보다 훨씬 비싸지만 자살률이 다른 곳보다 높다고 한다. 강물이 사람을 감상적으로 만들기 때문이 아닐까.
한강 다리가 생기기 전에는 나룻배로 강을 건넜을 것이다. 옛날에 이 나루터에서 수많은 애환과 사연과 낭만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다리가 생기면서 생활은 편리해졌을지 몰라도 그 대신 추억과 낭만은 모두 사라져 버린 것 같다.
헤르만 헷세는 ‘싯타르타’에서 강물에서 배워야 한다고 했다. 강물로부터 경청하는 법을 배우고, 격정이나 욕망에 동요하지 않고, 쉽게 판단이나 의견을 내려 하지 않고, 조용하고 열린 마음과 기대하는 자세로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노자(老子)는,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약하고 부드러운 것이 물이다. 하지만 물은 바위 보다 강할 때도 있다. 사랑이 총칼보다 강하다는 진리를 강물로부터 배울 수 있겠다.
노자의 “도덕경” 한 구절을 되뇌어 본다. ‘물은 상하를 두고 싸우지 않는다. 그저 선하게 만물에 이로움을 주면서 조용히 자신의 일만 할 뿐이다. 자신의 위치를 낮게하고 시끄럽게 다투지 않는다.’
이른 아침 강가를 거니는 것도 좋지만 해 질 무렵 석양을 보며 걷는 것 또한 좋다. 바람결에 날아오는 꽃들의 향내도 좋고 새들의 지저귐도 감미롭다. 앞만 보며 달리기 하듯 빠르게 걷는 것도 때로는 필요하리라. 강가에서 시간에 얽매이지 말고, 특정한 목적 없이 보폭이나 속도를 늦춰 자유롭게 자연을 즐기며 걷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