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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규 수필가 |
ⓒ 김천신문 |
내가 어릴 적 1960년대 산은 거의 벌거숭이 민둥산이었다. 점심 먹고 좀 지나 쇠고삐를 목에 감아 묶어 뒷산에 풀어 방목했다.
해거름에 소를 찾으러 뒷산에 올라 산 아래쪽을 훑어보면 소가 어디에 있는지를 단박에 알 수 있다. 때로 소가 보이지 않으면 등성이 서너 개를 뛰어 다니며 골짜기를 훑어보면 소를 찾을 수 있었다. 그때는 그만큼 산에 나무가 없었다.
고작 산소 주변에 도래솔로 자란 아름드리 소나무 몇 그루가 있었을 뿐이다. 키 낮은 교목만 있고 큰 나무가 없으니 이 산 저 산 등성이를 마구 뛰어 내달릴 수가 있었다.
일제의 무자비한 산림자원 수탈과 6·25 전쟁으로 입은 피해가 컸고 당시 사람들은 ‘보릿고개’라 일컫는 참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온돌 난방을 함부로 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썼기에 더욱 심한 피해를 입었다. 헐벗은 산은 나무가 없어 내린 비가 곧바로 붉은 황톳물로 시내를 싹 쓸어내렸다. 해마다 홍수로 산사태를 키워 심각한 문제에 부딪히기도 했다.
게다가 소나무의 해충인 송충이가 어찌 그리도 많은지!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송충이 잡는 날을 잡았다. 까까머리 중학교 전교생이 십 리나 멀리 떨어진 산골 마을 야트막한 뒷산에 올랐다. 나뭇잎을 다 갉아먹어 앙상해진 가지에 올망졸망 붙어있는 송충이를 잡아 철사 꿰어 맨 깡통에 나무젓가락 집게로 잡아 구덩이에 쏟아부어 모았다. 여학생들은 주춤대고 쭈뼛거리면서 잘도 잡았다. 끝나갈 무렵 기름(석유)을 붓고 송충이를 태웠다.
이런 피해를 벗어나기 위해 정부는 1960년대 후반부터 대대적인 신림녹화(山林綠化) 사업을 시작했다. 4월 5일을 식목일로 정해 나무를 심는 것을 장려하기도 했거니와, 농군들을 부역(負役)으로 나무심기에 동원하기도 했고, 어린 고사리 손도 빌려 집안의 장정을 대신해서 나무 심는 일을 도와야만 했다.
학교에서 식목행사의 날도 잡았다. 학교에서도 제법 멀리 떨어진 산에 나무를 심는 일에 학생인 우리들이 동원되었다. 심는 방법을 선생님으로부터 대강 설명을 들었다. 새끼줄에 2m 정도의 간격으로 줄눈을 만들어 산 위쪽에서 아래로 쳤다. 한 사람이 두어 눈을 맡아 나무를 심었다.
당시에 심은 나무는 주로 소나무(리기다), 아카시, 상수리나무, 오리나무, 족제비싸리(사방용) 때로는 유실수로 밤나무, 호두나무도 있었다. 조림 사업은 산림 자원과 수자원의 확보를 위하여 실시되는 산림 개발의 기본 사업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주도로 3차에 이르는 치산녹화(治山綠化) 10개년 계획, 즉 산림기본계획(1973년~1997년)을 세우고 30여 년 동안 1백억 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어 국토의 65% 이상을 산림으로 가꿔 개발도상국으로서는 유례를 찾기 힘든 조림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2010년까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산림의 면적은 4백 23만 헥타르이고 나무는 1백 8억 그루이다. 우리의 민머리 붉은 산은 거의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산림율 부문에서 남부럽잖은 나라가 됐다. 핀란드(72.9%), 스웨덴(68.7%), 일본(68.5%)에 이은 64.1%로 네 번째 나라이다.
우리 숲의 나무는 2000년대에 들어와 소나무 재선충병으로 소나무의 피해 지역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산림 당국은 이 병이 발생하면 감염된 나무는 물론 인접한 소나무까지 모조리 베어 방제 처리한다. 감염된 나무를 중심으로 반경2km 이내 소나무의 이동을 전면 금지하고, 병을 전파하는 매개충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또한 산불에 의한 산림의 소실도 심각하다. 1996년에 일어난 고성 산불로 산림 3,834ha를 태운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산불이었다. 작년(2019년) 식목일 바로 전날 속초 산불로 여의도 면적의 6배에 이르는 1757ha가 유실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그제 식목일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식목일이 잊혀져가는데 아쉬움이 컸는데 뉴스가 온통 ‘코로나19’로 뒤덮이다 보니 매스컴에 식목에 관한 뉴스를 찾을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가 난방 연료가 석탄이나 유류로 바뀌고 온 국민의 피나는 노력으로 그나마 푸르른 산으로 바뀌어 산림율이 세계 4위가 되었다. 산이 그나마 이만하면 식목은 충분하다는 건가?
아직도 우리는 효용성이 높아 부가가치가 높은 나무로 점차 수종을 갱신하는 일이 필요하다. 산지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우리나라는 나무 심는 일에 더욱 큰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더욱 푸르고 풍요로운 산을 후손에 물려줘야할 의무가 있다.
나는 심을 땅이 없어 작은 화분에 치자와 동백 한 그루씩을 심었다. 겨우 나무 두 그루를 작은 화분에 심는 일로 식목일의 아쉬움을 대신했다. 앞으로 내가 가꿀 작은 동산을 하나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