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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87세 어머니가 천하장사다.
한 손에 지팡이 짚고 물 호스를 끌어당겨 창문청소까지 하신다.
상추며 고추, 오이 심은 텃밭도 단발머리 빗은 듯, 잡초 하나 없이 가지런하고 삼, 사십 개 되는 장독대도 반질반질 윤기가 흐른다.
매운탕도 얼마나 잘 끓이시는지 나는 맨날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들면 된다. 사실, 엄마가 이렇게까지 오래 사실 줄은 몰랐다.
수술해도 일 년이고, 안 해도 일 년이니 잡수시고 싶은 것 사드리고 가고 싶은 여행 보내드리라는 의사의 선고를 받은 지가 30년도 훌쩍 넘었는데 지금도 끄떡없으시니 아마 100세는 하지 않을까 싶다.
자궁암 말기 수술도 하셨고, 당뇨병약도 사십 년째 드시며, 한쪽 눈은 실명이고, 한쪽 귀도 전혀 들리지 않으며, 치아도 전부 틀니에다 무릎 수술에 관절염에 어디 빼꼼한 곳 하나 없는 종합병원이건만 하루도 가만히 있지 않고 저렇게 부지런히 움직이신다.
“엄마, 제발 좀 쉬세요.”해도 지팡이에 의지해 온갖 일을 다 하시니 말릴 수도 없고, 환갑 된 내가 그저 할 수 있는 일은 돋보기 끼고 손톱, 발톱 깎아드리는 것과 하얀 백발을 곱게 깎아드리는 일 밖에 없는데 엄마는 미용실보다 낫다며 썩 마음에 들어하신다.
요즘은 코로나 덕분에 어디 갈 데도 없고 엄마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데 8.15 해방, 6.25 전쟁 때 이야기, 보릿고개 넘던 어린 시절 이야기로 영화 같은 필름이 돈다.
가끔은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허전해 하기도 하지만 멀지않은 곳에 산소가 있으니 술 한 병 들고 봄나들이를 다녀오기도 한다. 이렇듯 엄마 앞엔 아직도 어린 자식인데, 어느새 내 나이도 정년을 바라봐야 하니 인정하긴 싫지만 노후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 우울해 지기도 한다.
인생이 뭘까? 결국 스스로 만들어가는 자기만의 길이기에 남은 시간들을 더 소중하게 보내고 싶다. 한 번도 그림을 배운 적이 없는 모지스 할머니는 76세에 처음으로 붓을 들었고 101세까지 1,600여점의 작품을 남겼는데 88세에 미국의 ‘올해의 젊은 여성’으로 선정이 되었으며 93세에는 「타임」지의 표지를 장식했다.
2년 전인가, 인간극장에 방영된 93세 현역의사 한원주 내과 과장은 지금도 현역 의사로 뛰고 있는데, 환자 앞에 나가기 전 항상 거울을 보고 립스틱을 바르며 화장을 단정하게 하고 의사가운에 커다란 스마일 배지를 달고 나선다.
그 뿐인가. 시바타 도요는 98세에 ‘약해지지마’라는 시집을 출간 했으며 구로다 나쓰코는 75세 문학소녀로 일본의 최고 권위 있는 신인 문학상을 받았다.
커넬 샌터스는 1,008번의 거절을 당하고 62세에 자신의 조리법과 레시피로 전 세계 48개국 6,000여개의 패스트푸드점을 낸 최고의 기업가가 되었다.
내가 가장 닮고 싶은 카르멘 델로피체는 90세 최고령 실버모델인데 지금도 젊은 모델들과 견주어도 빠지지 않는 포스와 몸매를 자랑하며 “나이가 늘어 열정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열정이 사라져서 나이가 든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정말 백세시대가 맞긴 맞는가 보다.
아니, 지금의 20대들은 130까지 산다고들 하지 않는가. 생각해 보니 운명은 자기의 의지대로 펼쳐지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자기(自己)는 스스로 자(自), 몸 기(己) 그러니까 몸은 마음을 담은 그릇이고 모든 건 마음먹기 아닐까 싶다. 아무런 의욕 없이 모든 걸 놓아버리면 하나도 없게 되고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꿈을 꾸면 청춘으로 살 수 있다는 말이다.
78세에 쓴 사무엘 울반의 시 ‘청춘’에 보면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우리가 늙는 것이 아니라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 것이다”고 했다.
그러니 87세 우리 어머니도 지금 한참 꿈을 꾸는 중이고, 나 역시 새로운 꿈을 다시 한 번 꾸어야겠다. 인생에서 가장 좋은 때는 ‘지금’이고 나는 아직 새파란 청춘인데 그걸 왜 몰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