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출신 최동현 작가가 구상부터 집필까지 10년을 걸려 완성한 ‘소설 송설당’(예지)이 출간됐다.
‘소설 송설당’은 영친왕의 보모상궁을 지냈으며 일제강점기에 전 재산을 희사해 송설학원을 설립한 육영사업가 최송설당의 일대기를 그린 실명 소설이다. 단순한 송설당 여사의 일대기가 아닌 김천의 근대 100여년 역사가 잘 담겨있다. 작가는 송설당을 통해 근대 조선의 교육사를 담고자 했다고 한다. 교육이 한국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일제의 식민지 교육방향은 어떠했는지 이 책은 말해주고 있다. 또한 소설은 상궁의 눈을 통해 조선왕조의 멸망과정을 생생히 보여준다. 300여 편의 가사문학작품을 남긴 문학가로서의 송설당도 만날 수 있다.총 371페이지로 된 ‘소설 송설당’은 만남, 가문의 내력, 궁중생활, 나눔의 실천, 김천고등보통학교 설립 등 다섯 장의 소제로 나눠 있다. 책의 말미에는 후기와 송설당 연보, 저자의 말이 실렸다.
저자는 “소설이 주는 극적인 면보다 역사적 사실에 따라 글을 쓰려했다”고 밝히고 “후반부는 자료가 넘쳤으나 전반부는 자료가 거의 없어 송설당 생존시의 언론 인터뷰와 유족들의 진술에 의존했다”며 집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최 작가는 “송설당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했으며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조선인의 민족 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사립인문계 고등학교를 세웠고 조선어학회 33인 중 한 분인 정열모 교장을 앞세워 민족교육을 실천한 인물”이라며 송설당에 대한 소설을 낳게 된 동기를 설명했다.
작가의 집념으로 100여 년 만에 소설로 환생한 최송설당. 양반에서 노비로 몰락했다 다시 양민으로 신분 상승해 조선 최고 갑부에서 육영사업가가 되기까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인생을 산 그녀. 김천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이름이지만 얼마나 훌륭한 인물인지는 잘 알지 못하는 송설당의 숭고한 삶을, 이 소설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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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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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설당의 파란만장 일대기를 다룬 ‘소설 송설당’노블레스 오블리주 몸소 실천
조선인의 우수성 일깨우기 위해 사립인문계고 설립
학교설립 후 민족 교육에 앞장서 독립운동의 산실로소설을 읽지 않고 제목만 본다면 김천고등학교를 세운 송설당에 대한 위인전 정도로 단정하기 쉽다. 하지만 소설을 찬찬이 들여다보면 이 속에 김천의 근대 역사가 잘 담겨 있다.
박경리의 대표소설 ‘김약국의 딸들’을 보면 충무 시가지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 수 있듯이 소설 송설당을 보면 김천의 지난 100년의 모습들이 선명하게 펼쳐진다.
조선시대 유기산업의 중심지인 김천, 안성, 정주의 유기 공장을 소개하며 김천의 약물래기를 알리고 있다. 조선시대 찰방이 있던 남산동에서 경부선 철도가 부설된 감호동 일대의 근대 김천 도시형성 과정도 알려준다.
송설당이 지은 가사 ‘금릉풍경’에는 용두동, 황산, 미곡동, 마좌동, 금곡, 추풍령, 교동 정자 등의 당시 김천의 모습이 묘사돼 있다. 이외에도 송설당과 청암사의 인연, 김천의 동학운동 등도 기술했다.
20세기 초, 김천의 학교설립 열풍으로 15개 학교가 설립됐다. 김천고등학교의 모태가 된 금릉학원의 설립과정을 통해 당시 이 지역 유지들의 교육에 대한 열망도 엿볼 수 있다.
소설의 정점은 일제 강점기에 송설당이 갖은 고난 속에 고등보통학교를 설립한 것에 있다. 이를 통해 김천이 일찍부터 교육도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학교 설립 후에는 민족교육에 앞장 섬으로써 독립운동의 산실이 된다.
작가는 송설당을 통해 김천을 소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 교육입국을 통한 국내 독립운동상황을 소설에서 소개한다. 만해 한용운, 도산 안창호, 몽양 여운형, 고하 송진우, 남강 이승훈, 백남훈, 방응모 등 국내에서 활동한 근대 선각자들과 송설당이 어떤 교류를 했는지와 정열모 김천고등보통학교 교장이 조선어학회 사건에 어떻게 관련이 있었는지를 기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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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진우, 여운형 선생과 함께한 송설당 |
ⓒ 김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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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송설당을 통해 근대 조선의 교육사를 담고자 했다. 서당-신교육-학교로 이어지는 근대 조선의 교육제도 변천 과정을 보여준다. 교육이 한국사회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알려주고 일제의 식민지 교육방향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 소설은 상궁이 지켜보고 겪은 조선왕조의 멸망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송설당은 1896년부터 조선왕조가 멸망한 1910년까지 황태자 영친왕의 보모상궁이었다. 엄순헌황귀비를 옆에서 보좌하면서 조선왕조 멸망 과정을 지켜봤다. 왕조 멸망이후의 궁인들의 삶도 알 수 있다.
이 소설은 근대 150년의 역사 속에서 백성의 삶이 어떠했는지도 보여 준다. 홍경래의 난에서 보여준 민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김천의 동학운동, 수천 년간 지속돼 온 노비제도의 붕괴과정, 일본 식민시대의 토지조사 사업, 일제 강점기 교육제도를 통해 백성의 삶을 엿보게 한다.
김천 사람 중 최송설당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송설당이 얼마만큼 훌륭한 인물이었는지는 잘 모른다.
송설당은 일제 강점기 친일 세력으로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도 아니고 독립운동가도 아니다. 70대 고령의 시골 할머니에 불과했다.
송설당이 생존했을 당시 동아일보는 “백·최 양씨의 봉사적 삶”이라고 사설을 실었다. 여기서 백씨는 평양의 백선행 씨를 의미하고 최씨는 김천의 최송설당을 의미한다. 그만큼 최송설당은 당시 조선의 대표적인 여성 사회사업가였다. 평양 사람은 백씨에 대한 보답으로 동상을 세우고 기념관을 세웠다.
송설당과 청암사의 인연
김천의 동학운동
근대 김천의 교육사
조선일보는 송설당을 두고 ‘거룩한 삶’이라는 사설을 실었다. 언론에서 한 인간을 두고 거룩하다는 표현을 하기는 쉽지 않다. 삭막한 조선 사회에서 김천고등학교는 ‘사막 속의 오아시스’였기 때문이다.
작가는 송설당과 고향 김천에 대한 애정으로 10년이라는 준비기간을 거쳐 이 책을 완성했다.
교보문고, YES24, 알라딘, 인터파크 등 온라인과 김천 춘양당 서점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출판사(031-900-8061)로 전화하면 다음 날 배송된다. 가격은 1만5천원.
인터뷰 - 최동현 작가 “김천의 근대 100년 역사 담겼다”
김천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다. 최근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자기 고향 출신의 문화 아이콘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김천을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이 필요할 것 같아 김천의 문화 아이콘으로 최송설당을 추천하고 싶다.
송설당은 조선시대부터 시작해 조선왕조 말기에 사라진 가사 문학의 말미를 장식한 가사문학가이기도 하다. 송설당은 49편의 가사 문학을 남겼다. 송설당 가사로 근현대 가사문학의 맥을 이어 부흥시킨다면 김천을 문화의 도시로 재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송설당을 전국적으로 좀 더 알려야 하겠다. 김천시가 중심이 돼 송설당 현양사업을 추진하고 사라진 가사 문학을 부흥시킨다면 김천은 새로운 모습의 문화도시가 될 수 있다.
전주시는 판소리를 살려냈고 김덕수씨는 사물놀이를 만들어냈다. 평창의 효석문화메밀마을, 통영과 원주의 박경리기념관과 문학공원, 춘천의 김유정문학촌 등을 벤치마킹한다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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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고 교내에 세워진 최송설당 동상 앞에 선 저자 |
ⓒ 김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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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약력 최동현 작가는 김천 출신으로 김천중, 김천고를 거쳐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로 복무했다. 행정사무관으로 전직해 대통령 민정비서실에서 근무했다.
국세청에서 세무서장을 역임하고 본청근무 후 부이사관으로 30년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경영학박사학위를 취득 후 경희대 경영대학원에서 12년간 겸임교수로 강단에 섰다. 한국세무사회 상근부회장을 거쳐 현재 세무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김천고총동창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송설당교육재단 이사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