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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해 지면 달이 뜨고 꽃 지면 별 뜨는데
너 떠난 동해에는 파도 소리 소복하고
독도는 내 삶의 부력 밀어 올린 꽃대다
강치야, 내 새끼 강치야 말해 줄래, 너 있는 곳
물그림자만 비쳐도 너인 줄만 여겼는데, 너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느냐, 용모가 수려해서 한울님이 데려갔니, 몸매가 날렵해서 용왕님이 데려갔니, 아니야, 아니야 아무래도 그건 아냐. 이웃 나라 도적들이 느닷없이 나타나 화승총을 쏘아대며 그물을 던졌겠지,
비단 같은 네 살결에 눈알이 획 돌아서 이 넓은 바닷속을 샅샅이 뒤졌겠지 ……아! 네 흔적 찾으려고 기름진 배에 걸린 허리띠도 살펴보고 발에서 번쩍이는 구두까지 훑었는데
너 찾아 껌벅이는 눈 머물 곳이 없더라
아비는 종의 핏줄, 어미는 위안부 출신
바람을 막기에는 팔다리가 너무 짧아
바위에 납작 엎드려 해국만 피워댔지
강치야, 내 새끼 강치야 들어볼래, 엄마의 말
미안하다, 미안하다 모든 게 내 탓이다 꼭꼭 숨어서 잡히지 않아야 했는데, 잡히더라도 끝까지 버텼어야 했는데, 버티지 못할 거면 차라리 꽃잎처럼 지고 말 것을
……아니다, 아니다 내 탓이 아니다 잡혀가지 않았다면 우리 집 온전했을까, 무작정 버텼다면 성한 곳이 있었을까, 활짝 피지 못하고 꽃망울로 졌었다면 내 부모님 상심은 또 얼마나 컸을까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삶 여기까지 끌고 왔다
울 없고
담이 없어
어디든 갈 수 있어도
가족으로 맺어진
네가 있고 내가 있어
다시금
퍼덕대고 싶다,
동해의 심장에서
강치야, 우리 강치야 파도 너머 하늘 보자
떠도는 저 구름도 돌아갈 집이 있고 손꼽아 기다리는 가족이 있을 테지, 더운밥 묻어놓은 구들장 아랫목엔 된장국 같은 얘기 보골보골 끓을 테지, 또렷한 눈빛들이 오손도손 앉은 자리 목이 긴 한숨들이 슬금슬금 빠져나가고 해말간 웃음소리가 등불처럼 펴 오르면
멸문의 빗장을 열고 네가 들어설지 몰라
파도가 지운 이야기 파도로 다시 쓴다
해조음 불러 모아 너의 자취 물어보며
독도는 동해를 펼치고
서사시를 쓰고 있다
[제10회 독도문예대전] 당선소감 - 일반부 대상(詩)-김석인
"독도 주인 강치의 눈빛 외면하지 않은 심사위원께 감사"
"여보, 우리 강치 어떻게 됐어?" "글쎄, 아직은…"
느닷없이 툭 던지는 아내의 말에 말끝을 흐렸다 독도문예대전 응모작을 퇴고하는 과정을 지켜본 아내가 몹시 궁금했던 모양이다. 아내의 입에서 '강치'라는 말이 이렇게 쉽게 나올 줄 몰랐다 이쯤이면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사실 아내는 강치를 잘 몰랐다. 그냥 물고기의 일종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독도문예대전 때문에 강치에 대해 대강 알게 된 것이다.
바다사자의 일종인 강치는 독도를 무대로 수만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일본인의 무자비한 포획으로 지금은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을 이 강치가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속에서부터 살아서 꿈틀거려야 한다는 것을
강치는 독도의 주인이었다. 주인이 떠난 그곳은 파도소리 소복하고, 멍만 퍼렇게 들고 있다. 독도는 위안부 문제와 함께 첨예한 한일관계의 중심에 놓여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뒤틀려버린 한국의 근현대사는 다시 풀어야 할 숙제다. 우리 민족의 정형시인 시조를 통해서 그 실마리를 찾는 몸짓을 해본다. 파도가 지운 이야기 파도로 다시 쓰기 위해.
강치의 눈빛을 외면하지 않고 위안부의 하소연에 귀 기울여 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독도문예대전 관계자 여러분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