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 현대수필의 출발
김천 수필문학의 출발을 이야기하다(상)
민경탁 논설위원
우리나라에서 수필은, 근대수필의 효시라 일컬어지는 유길준의 서유견문 (1895)이 나온 이래 1920~30년대에 이광수 최남선 나도향 이희승 유진오 양주동 심훈 김진섭 같은 문인들이 문학적 향취가 있는 수필을 썼다.
경북에서는 신라 때부터 최치원 김시습을 비롯한 문인들로부터 현대에 이르기 까지 수필문학을 해왔다. 이무렵 경북에서는 경주에서 김동리·유치환 포항에서 한세광이 수필을 발표했다. 1950년대 중반 경주에서 박목월 김해석이 수필집을 내며 경북에서의 수필 문학은 본격적으로 꽃피어졌다.
김천에서 최초로 현대시를 쓴 사람은 이정기(1929~2001), 현대시조를 쓴 사람은 민동선(1902~1994), 현대소설을 쓴 사람은 이석봉(1928~1999)이다. 지역사회에서 수필 문학은 언제 출발하였을까. 맨 먼저 수필을 쓴 사람은 누구일까.
1950년대 중반 김천문화의 집이 개원되면서 김천 문화활동의 본산이 된, 기관지 겸 동인지 『소문화』 (1955.6. 창간)가 발간되면서 부터 이 지역사회에서현대수필이 양산되었다. 김천에서 최초로 현대수필을 발표한 사람은 정건양 (鄭建陽)이다. 정수봉 김수영 김홍연 배병창 박병환 전장억 정재호도 간간이 수필을 발표했는데 이때 일관되게 수필 문학의 완성도를 지닌 작품을 발표한 이는 정건양이다.
본지는 『소문화』와 『현대문학』지를 통해 김천 수필문학의 출발기에 해당하는 작품을 단독 발굴, 소개한다. 지역사회 수필 문학의 꽃 피움이라 할 수 있는 정건양의 「행복된 여백」(1955.6), 「새」 (1956.1), 「가을과 나」(1956.12) 등에서 가장 먼저 발표된 「행복된 여백」 (『소문화』 창간호)을 소개한다.
행복된 여백
정건양
아무리 바쁜 사람이라도 시간의 여백은 있다. 이 시간의 여백이 길건 짧건 누구나 헛되이 보내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누구나 틈에 잠깐 쉬며 땀을 씻는 농부의 그 무표정한 가운데도 무엇인가 사색하고 꿈꾸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인생을 깊이 파보겠느니 의를 위하여 몸이 갈갈이 찢기어도 의지를 굽히지 않겠느니 하는 지성인에 있어서야 이 시간의 여백은 정말 귀중한 힘인 것이다. 그렇다고 이일이 무슨 삶을 살피게 하고 찬란한 영광의 씨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자살을 면하는 힘, 내일의 요행을 기다리는 힘이 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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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어제도 행여나 하고, 오늘은 기어코 하며, 무한히 연속되는 인생은 이 시간의 여백에서 얻는 힘이고, 그 여백의 기만에 항거하고 대항하는 것인가 싶다. 이처럼 시간 시간의 여백에 조롱당하며 살아야 하는 나도 이제 무슨 도피처를 찾아야만 견딜 정도로 되어 궁리 끝에 짜낸 것이 짧은 여백에는 누구와 대화하고 긴 여백에는 손바닥만한 텃밭이나마 흙을 만져 보기도 하며, 일요일이면 낚시질을 가기로 한다.
어려서부터 해변에서 자란 나는 바다는 커녕 호수 하나 제대로 없는 곳에 살게 되니, 비 온 뒤에 뜰에 고인 조그마한 물고임에도 어려서부터 뛰놀던 바닷가 고기냄새가 풍기고 창파가 너울거리며, 멀리 보이는 수평선이 어렴풋이 눈에 떠오고 잔잔한 넓은 호수가 연상되는 것이다. 이처럼 물에 향수를 느끼는 나는 이십 리 삼십 리를 자전거로 달리며 못을 찾아가는 것은 고기를 낚겠다는 욕심보다, 시간의 여백을 물과 대화하고 싶고 어제의 허무를 망각하고 싶은 심리인 까닭에서다. 그래도 큰 잉어라도 잡을 듯이 채비를 하고 팍팍해지는 다리를 억지로 참고 못에 도달하면 속옷까지 촉촉이 젖은 땀이 잊어지고 무표정한 못에 고요와 시원스런 미풍이 나를 안아주며 나도 모르게 시르르 눈에 물이 곱히어진다. 풀잎 하나라도 나를 싫지 않게 맞아주는 못가에 있으면 지난 시간 번뇌로 몸부림침이 몹시 후회되어 진다.
집을 나올 때 “아이 당신이 무슨 고기를 낚으신다고 그러오” 하며 싱거운 웃음으로 나의 뒷모습을 우두커니 서서 내다보던 아내에 “글쎄 두고 보지” 하며 속으로 큰 것을 하나 낚아서 놀래이고 말겠다는 응수를 한 것이 생각나 요행히 잉어라도 하나 물어라 하고 낚싯대를 물에 담구어 본다. 십분, 삼십분 아무 기별이 없다. 또 오분 버티어 본다. 그래도 꿈쩍을 안 한다. 이제 받침대에다 낚싯대를 받쳐 놓고 비스듬이 언덕에 누워 담배를 피워 물고 새파란 하늘에 하얀 솜 같은 구름을 쳐다본다. 구름 하나하나가 모두 사람의 얼굴로 변한다.
사진을 보아야 기억나는 돌아가신 아버지, 삼십 년을 홀로 아들 하나인 나만을 위하여 살아오신 고향 어머니, 열아홉 꿈 많던 소년 때 둘이서 무서운 줄도 모르고 달밤에 산에 올라 목을 서로 잡고 울던 옛 벗! 밤마다 몸부림치며 사랑하던 이름 모를 귀엽던 소녀 그리고 백발이 하얗게 되어 죽기 싫다고 몸부림치던 늙은이, 이런 얼굴들이 연달아 명멸한다.
가까이에서 고기를 낚던 노인이 “여보, 여보 낚싯대를 들어보시오.” 하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낚싯대를 드니 미끼만 고스란히 따 먹고 가버렸다. “아, 그것 참 큰 것을 놓쳤는데요.” 하며 중얼거리니 노인은 “아니 누워서 낚시질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오, 원.” 하며 못 마땅한 듯이 꾸짖는다. 나는 이때 내가 걸어오고 있는 인생이 이 낚시질처럼 무성의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되었다. 인생살이가 그리 쉬운 것이 아닌 줄을 알면서도 그저 멍하니 딴 길을 가며 때를 놓치는 것이 아닌가? 훌륭한 기술과 오랜 경험을 가진 그 노인도 온 정신을 낚싯대에 두고 인내 있게 노력하는데, 고기를 낚겠다는 내가 딴 생각을 한다는 것은 그대로 나의 생축도(生縮圖)인 것 같이 여겨진다.
나는 다시 미끼를 끼어 낚싯줄을 던지고 이번에는 기어코 낚아 내리라고 정신을 바짝 차려 낚싯대가 뚫어질듯이 바라보고 앉았다. 또 십분 이십분 삼십분이 되어도 까딱 안 한다. 그러자 그 노인은 손바닥 만한 붕어를 낚아 내었다.
나는 시기심이 벅차오른다. 불과 몇 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인데 ‘거기만 낚기고 여기가 안 낚길 리가 없을 것이다’ 생각되어 다시 미끼를 살펴보아도 고기는 흔적도 없다. 또 십분이 지났다. 역시 아무기별이 없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그 노인 곁으로 자리를 옮겨 본다. 노인은 옆에 내가 앉은 것도 무관심한 듯 그저 낚싯대만 물끄러미 쳐다보며 곰방대로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고 있다.
그 노인은 또 한 마리 낚아 내었다. 나는 자리를 옮겨 보아도 아무 다름이 없다. 화가 치밀어 온다. 노인이 쓰는 미끼를 살펴본다. 나와 같은 지렁이다. 역시 기술이 모자라는 것으로 돌려 버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십이삼 세 쯤 되는 어린애가 아까 내가 앉았던 자리에 와서 낚고 있다. 그 애는 나의 낚싯대에 절반 밖에 되지 않는 꼬불꼬불한 낚싯대에 시울도 무명실을 꼰 굵직한 것이다. 나는 속으로 ‘아이 저런 것으로 낚기나 하나’ 하고 비웃었다.
그런데 당장에 조그만 붕어 새끼를 낚아 올린다. 그 애가 부러운 것보다 몹시 신기로웠다. 다시 낚싯대를 살펴보아도 내 것은 건드리지도 않았다. ‘이제는 장기전을 쓸 수밖에 없다’ 생각하며 나의 정신이 통일되지 않았다고 혼자 자기를 꾸짖어도 본다. 그러나 아무리 정신을 가다듬어도 낚기지 않는다. 해가 서산에 기웃기웃 할 때까지 앉았어도 피리새끼 한 마리도 못 낚았다. 이제는 화도 사그러지고 저물어 가는 호반의 저녁노을이 나를 못 견디게 황홀히 해 준다.
낚싯대를 걸어 메고 돌아오는 길에 혼자 ‘아무리 호수가 좋기로서니 낚시를 와서 피리새끼 한 마리도 못 낚고 가다니 이제 낚시질을 그만 둘까’ 하고 중얼거려 본다. 그러나 또 다음 일요일이 오면 오늘에야 그렇지 않겠지 하고 또 땀을 팥죽같이 흘리며 먼 못을 찾아가게 된다, 하루 종일 피리새끼 한 마리 낚아 올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낚아 올리다가 놓쳐버리거나 하는 것만 되풀이 하였다. 그러면서도 꼭 마음에는 잉어가 낚일 것만 같아서 가고 속고 단념할 수 없는 매혹이 나를 이끌곤 한다. 생각해 보면 넓은 못에 머리카락만한 시울을 담그고 고기를 잡겠다는 짓은 퍽 어리석은 일 같지만 딴 사람들은 낚아오고 있으니, 어리석은 줄 알면서도 쏠리어 가서는 헛탕을 하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인생살이와 무슨 다름 있으랴. 무슨 요행이나 올까. 오늘이나 내일이나 소원이 풀릴까 하고 별별 수단을 써가며 남을 시기하고 화를 내고 버티어 보고 자리를 옮겨보고 하는 것이다.
나의 시간의 여백에서 택한 낚시질이, 어제의 위선과 불만과 항거와 조롱은 사람의 진실한 삶에서 오는, 노정의 번민이라는 것을 역력히 그려주는 것 같다. 그러니 착잡한 마음과 향수를 잊으려는 낭만보다 실존의 사회가, 이 조그만 오락에까지 반영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사실이 허무한 시간의 여백에서 오는 지선의 교훈이 아닌가 생각한다. 단념할 수 없는 희망, 자살할 수 없는 모진 생의 미련은 내 자신 부정할 수 없는 영원한 본능이 아니랴. 내 또 호수로 가련다. 녹음이 우거진 창포그늘에 개구리가 놀고 흰 구름 잔잔한 호면에 아롱지면 먼 산 노송가지에 두루미 파닥이는 풍치가 좋고 애끓는 사랑 하나 없어도 누구인가 따뜻이 껴안아 주는 부드러운 사랑의 촉감, 고독한 주위에 더욱 고독한 행복 깃들고 인자하신 어머님의 이러심 보다 가슴에 사무치는 삶의 뉘우침이 몰려오는, 이 나의 행복된 시간의 여백이 있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