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 현대수필의 출발
김천 수필문학의 출발을 이야기하다
(하)
민경탁 논설위원
김도양의 수필 「돌풀」은 단상(斷想) 또는 수상(隨想)으로도 불리며 잠언 형식의 글이 옴니버스식으로 연결돼 있다. 「돌풀」은 『현대문학』지에 발표한 것을 상당 부문 『소문화』지에 재게재하면서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김도양의 수필은 인간의 눈에 비치는 세상의 모습과 삶의 지혜를 철학적으로 진술한다. 관찰과 통찰 그리고 사색에서 나오는 서정적 자아의 언술이 매우 사변적이다. 이런 점에서 몽테뉴의 『수상록』과 매우 닮아 있다. 인생의 지혜와 우주의 섭리와 자연의 질서, 예술, 종교와 신(神)의 문제에 이르기까지의 거침없는 철학적 진술이다.
김도양을 비롯해 김수명(전 대구교대 교수) 정수봉 박용설 정완영 등이 1960년대 말까지 김천에서 본격적인 수필 작품을 썼었다. 그 외의 수필들은 단기성 신변잡기류였다.
돌풀
김도양
종교에 대하여
값있는 종교란 천 명의 신자를 얻으려고 발버둥 치는 게 아니라 단 한 사람의 영혼을 귀중히 여기며, 이를 위하여 희생적인 노력의 사랑을 이름이다.
다시 죽음에 대하여
죽은 뒤에 자기를 단 한 사람인들 욕하지 않도록 생시에 늘 세심해야 할지니.
친밀
아무리 친밀한 사이라도 어떠한 일(또는 감정)과 장소에 따라 자기 자신이 상대에게 이유 없는 불쾌감을 줄 수 있느니. 이런 점 서로 주의와 이해가 필요할 것이요. 또 그대의 모습(또는 행동)을 보고 상대의 그대에 대한 인식(황홀, 쾌, 불쾌, 기피)이 수시로 달라지나니 이점 또한 항시 유의해야 할지어니.
지금 우리에게
지금 우리에게 실로 신념과 부지런함, 이것이 가장 긴요할 것이다.
무제
자기 자신을 속이는 날, 진실을 망각하게 되고 진실을 망각하는 날, 이윽고 모든 것을 상실하고 말 것이다.
존재가치에 대하여
존재 가치를 높이도록 애써라, 그것을 지속시켜라, 그것은 어느 때 어떠한 사정(또는 일)에 부닥쳤을 때 그 사정을 좌지우지하는 커다란 힘이 되는 것이니. - 『현대문학』(1962.1)
나감과 듦 그리고 위치
(전략)
‘들어간다’는 것은 ‘간다’로 통하고 ‘나온다’는 것은 ‘온다’는 것으로 통한다. ‘간다’ ‘가본다’는 기대에의 의미와 통하게 됨을 우리는 보고, ‘온다’ ‘돌아오다’는 만족 또는 실망으로 통할 수 있음을 우리는 체험한다. 그러면 가서 오는 과정인 위치는 뭣으로 통하겠는가. 그것은 곧 대별해서 나쁜 것과 좋은 것으로 통함을 본다. ‘인생으로 들어간다’를 탄생으로 본다면 ‘인생에 있어서 나온다’는 것은 ‘인생살이’ 그 자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인간은 생명이 이 지상에 처음으로 태어났을 때 타고난 운명의 여지는 어쨌든 간에, 인생에게 기대를 걸고 살아 나아가서 생명이 다하는 날 만족과 혹은 실망을 안고 돌아온다면, 우리는 살아가는데 있어서 어떤 것을 가장 중요시 해야겠는가. 그것은 살아가는 동안 과정의 일일 것이요 그 중에서도 보다 중한 것이 현실일 것이다. 또 이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사랑과 용기와 인내로서 현실을 이겨 정리할 수 있음이 아니겠는가.
다시 미(美)에 대하여
미는 그 나타남이 크게 세 가지로 구분 된다. 첫째가 암흑 속에서, 둘째가 어스름 속에서, 셋째가 밝음에서 나타나오는 것이다. 훌륭한 미란 밝음에서 부각되는 것이요, 보다 참된 미란 전기한 세 가지 입장에 하등의 영향을 받지 않고 찬란히 나타남을 이름이다.
어려운 일 중의 하나
어려운 일 중에 하나를 말하라면, 자기가 높은 지위에 올랐을 때 그 지위에 있기 전의 자기로서 남을 위해 일하는 것이리라.
과반 이상의 오단(誤斷)
자기가 대상을 보고 그 대상에 대해 갖는 사상적, 애정적인 느낌(또는 척도)은 실로 과반 이상이 오단을 내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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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無題)현재 우리 눈에 나타나는 이 사회와 인생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은 위대하다. 보다 위대한 것은 인생의 머언 훗날까지 두고두고 사람들을 뉘우치게 하고, 가르치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일들이다.
그 위대한 것 중에서도 가장 사람에게 가까워질 수 있는 게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예술, 바로 그것인 것이다.
최대의 행복과 불행 최대의 행복과 최대의 불행을 겸해서 가지고 태어난 게 바로 우리 인간이 아니겠는가. - 『현대문학』(1962.1)
권태에 대하여권태, 이 얼마나 많은 명작을 상실한 이름인가-.
체면과 비평정(情)과 대상에 대한 체면 때문에 그 얼마나 하고 싶은 말과 비평이 자제 속에 죽어가는가.
무제인생은 순간에서 시작되어 순간에서 그치는 것이다.
모노 토온(mono tone)한 생각실없는 여자란 백가지 세상 소문보다 한마디 “당신은 참 아름답다”는 말이 귀에 쏙 들어오는 여자다.
언어에 대하여인간 언어의 분재(分在)로 인하여 인생은 얼마나 많은 슬픔과 비극을 낳게 하는가.
지금 그대는지금 그대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그대 생각이 깨끗하고 귀한 것이라면 그대 주위와 나라와 인생이 그만큼 아름다워지고 있느니라.
자제(自制)의 의지자제할 수 있는 의지! 이는 운명을 많이 변모케 하는 조종자다.
망설임에 대하여망설이는 일은 안 하는 게 좋을지니.
위치에 대하여장소(또는 위치)는 느낌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가치성을 달리한다.
무제신을 감정으로 요리하지 마라. - 『소문학』(1962.3)
다시 미소에 대하여보시라! 이 착찹한 인생에서 아직 미소가 없어지지 않음은 신의 호흡이 인간 마음 깊숙이 자리잡고 있음을 증명함이려니.
무제저 광막무변한 대우주를 인간이 기계로 정복한다는 것은 영원한 불가능이다. 그러나 영원한 불가능도 가능케 하는 길이 있으니 그것은 실로 참되고 신념 있고 지속되는 신앙을 지닌 인간 영혼으로서의 노력일지니라.
또다시 악(惡)에 대하여큰 악일수록 진한 선으로 자기를 엄폐하는 것이다. - 『현대문학』(19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