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 현대수필의 출발
김천 수필문학의 출발을 이야기하다 (4)
민경탁 논술위원
기획 연재 ‘김천 수필문학의 출발을 이야기하다’는 3회로 종료하려 하였으나, 자료가 지속적으로 발굴되어 김천문학사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몇 회 더 연재합니다. 독자와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애독을 기대하면서 연재를 계속합니다. <편집자>
김천 수필문학의 꽃이 만개해 가던 1960년 중반 등단은 하지 않았으나 상당 편의 수필을 쓴 작가로 정수봉(鄭樹鳳)이 있었다. 봉산면 출신 정수봉은 ‘김천시민의 노래’를 작사하고(1957) 수필집 『맥령보 麥嶺譜』를 출간(1964)한 문인이다. 1950년대 말부터 수필 「성황당 주변」 외 여러편을 대구의 일간신문에 발표해온 그는 ‘경북수필’ 동인 추대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 무렵 김천 지역사회에서 수필문학의 본령을 지킨 이는 김도양이다. 그는 연작 「돌풀」(1959~1967) 외에도 「문학이란 나그네가 본」(1966) 「언덕에서」(1967) 「대우주」(1968) 등의 철학적 수필을 잇달아 발표하며 수필집 『돌풀4』(1967)까지 발간하였다.
당시 김천의 문단에서는 김도양을 ‘기인적 천재 수필가’로 일컬었다. 그는 1969년 섣달 그믐날 정신질환으로 절에 요양 중인 정수봉을 문병하고 만취돼 돌아오는 길에 부곡동 원골 개천에 쓰러져 만 39세에 타계했다.
돌풀 김도양파괴에 대하여파괴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 하나는 전체 형상을 강타, 부정하는 방법이요. 다른 하나는 형상의 세포를 이용한 극히 정적이고 수리적 해체 방법이다.
다시 죽음에 대하여죽음을 당함에 있어선 실로 ‘시간’과 ‘위치’와 ‘주체’ 이 세 가지 조건이 얽히고 활동(또는 운동)함에서 이루어짐이 근본원리가 아니겠는가.
초점에 대하여모든 생물과 물체,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미분 微分)에 이르기까지’에는 초점이 있는 것. 인간의 초점은 바로 영혼일지니.
선(線)과 원(圓)보시라, 저 피맺힌 능선에서 능선으로, 굴곡진 계곡에서 계곡으로, 바위와 바위로, 잎에서 가지로, 가지에서 수목으로. 또 돌맹이 하나 풀 한 포기를 돌아 굽이 흘러, 강줄기에서 줄기로 저리도 선명한 선은 어디서 시작되며 어디로 향하여 가는 것인가?
또 보시라, 도시 빌딩 아래 포도(鋪道)에서 사방으로 달리는 차. 차들과 사람들 어깨에서 머리를 돌아 팔을 달려 다리 아래 내려와서 머얼리 지평선을 그려 수평선을 내 달리면서 선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 .
가만히 살펴보시라, 그것들은 또 차츰 크게 또는 적게 원을 그리고 또 만들고 있음을 본다. 가만히 살피시라, 사람이 스스로 만든 것과 또 만들고 있는 것들은 원에서 이탈하여 선과 원을 이용하여 새로운 형상을 만들고 또 만듦을 본다. (중략)
다시 보시라, 그리고 우리들은 알아야 할지어니 … . 선들은 원을 그어 만들고서 둥글게 지구를 형성한데도 밖으로 밖으로 탈출을 못하고 뱅글뱅글 고독하게 지구만을 맴돌고 있다는 것을.
아아, 지구는 대우주의 외로운 섬이 아니겠으며 또 인간은 선과 원의 우주 운행 전역(轉逆)에서 탈선한 서글픈 나그네가 아니겠는가. 지금이요, 길을 찾을 때가.
시간의 흐름생활해 나아가면서 문득 시간을 응시-흐름의 경이적 체험과 경악, 공포를 체감-하는 그때야 말로 당신은 시간이 주는 행복을 차지할 때일지니.
무제용기와 과단의 최대의 적이여 너는 기우(杞憂)다.
다시 신(神)에 대하여신을 찾지 못한 자는 아직도 자기 자신을 모르는 자다.
비평에 대하여참된 비평가란 비평의 대상과 자기가 같이 호흡하는 것이요, 참되지 못한 비평가란 대상을 자기의 양자(養子)로 만들려고 하는 자다.
무제인생 지속의 근본이여, 너는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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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봉 문집 『맥령보』 출판기념회(1964.5.10)에서. 앞줄 왼편에서부터 박병환, 강중구 원장, 정수봉, 한 사람 건너 정완영 문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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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얘기를 다시 한 번자기 자신을 다시 가만히 살펴보시라. 이 세상에서 아끼고 사랑하는 중에서도 가장 귀중히 여기는 것이 자기 자신이 아니겠는가. 또 그 귀중히 여김이 부모, 형제, 자매에서 핏줄기로 뻗침을 우리는 보고 경험한다.
그 뻗침은 가정에서 주위로 거기서 지방으로 민족, 국가로 뻗치어 풍속과 언어를 추월하는 전체 인류로 뻗칠 수 있음을 알리라. 이는 계단적인 위치요. 사람들은, 제 각기의 위치에서 널리 뻗치어 감이 어려움을 우리는 알고 있다.
좁은 위치에서 보다 넓은 위치로 옮길 수 있도록 노력함이 우리는 중하겠지만, 보다 중한 것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바로 제일 넓은 위치(전체 인류를 위하는)에서 다시 서서히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와, 돌아온 자신을 질책하여 다시 자기를 중심한 위치로 뻗치어 갈 때의 신중과 사색과 용기일지어니.
실제(失題)자기에게 이익 됨을 잡고 남을 도우려 할 때 괴로움이 수반된다는 것을 잊지 말라.
존재와 가치무엇이든 존재한다는 것은 가치성을 지니고 있다. 그 존재하는 게 지닌 가치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제 자리에서 변화하는 존재물의 가치보다 유동성을 지니고 스스로 가치성을 보다 높이 훌륭하게 만들 수 있도록 존재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게 바로 우리 인간인 것이다. -
『현대문학』(1962.7)
자제의 의지자제할 수 있는 의지! 이는 운명을 많이 변모케 하는 조종자.
나뭇잎처럼바람과 햇빛과 대지의 것을 빨아 성성히 자라나는 저 나뭇잎을 보십시오. 억눌렸던, 갑갑하게 숨통이 막히도록 오오랜 세월을 참아 싸워서 한 가락 노래, 그 푸른 노래를 위하여 무딘 일월을 뚫고 푸른 잎이 성성히 지금 당신 앞에 자라나고 있음을 보십시오.
또 자신을 입증하여 조용도 한 저 모습도 바람, 그렇습니다. 한 오리 바람으로 하여 생명의 호흡이 환희가 또 노래가 저토록 밖으로 밖으로 쏟아짐을 보십시오.
저 자그만 움직임 하나하나와 장엄에서 경탄으로 그리고 하루살이 나래 소리 만한 움직임도 그저 막연히 실없이 또는 우연히 태어나고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은 대우주의 발걸음으로 하여 창조에서 새로운 변모와 발전함에의 증명일지니.
또 나무의 뿌리는 어머니로 하여 대지에서 빨아올린 젖을 자기보다 제일 먼 곳에서부터 보내어 잎을 키우는 것을 우리는 다시 한 번 바라봅시다. 서로 저 싱싱하게 자라나는 나뭇잎과 나무뿌리처럼 … .
이해(理解)칭찬 할 손 너 이해여! 너로 하여 얼마나 숫한 분노가 무마되었으며, 너로 하여 얼마나 숫한 비극이 억제 되었던가! -
『소문화』(1962.10)
이 세상에는이 세상에는 언제나 외롭고 슬프고 곤란한 사람이 많은데 그 중에는 닥쳐오는 사납고 쓰린 환경과 싸워서 그 도탄 속에서 감연히 탈출하는 사람도 있지만, 거의 모두는 복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을 귀히 여기고 돕고 해서 구출해야 할지어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