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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북한과의 저자세, 나랏돈 구걸외교 더 이상 국민의 자존심에 상처는 안 된다
박국천객원기자 회장
나라가 있기에 내가 있고 조국을 위한 희생이 있었기에 자랑스런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음을 우리 모두는 익히 알고 있다.
오늘날 우리민족은 지정학적 취약성으로 인하여 무려 1천 여회 크고 작은 국난을 경험하였음에도 이를 슬기롭게 극복한 저력을 가지고 있다.
이는 국가를 사랑하고 애국심을 불러일으킨 선열들의 호국수호 전통으로 후손들에게 계승하여온 결과라 하겠으나 국가를 위해 희생한 고귀한 숭고함 앞에 배려와 애국충절의 정신이 계속될 수 있는 노력은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특별히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이며 적의 포 사정권 안에 수도가 있는 국가다. 따라서 물리적으로 북한을 강력히 저지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6·25전쟁의 포성이 멎은 지 휴전 67년이 흘렀지만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삼부자의 세습이 계속되는 동안 크고 작은 도발은 온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있으며 지금도 현제 진행형이다.
북한과의 통일을 이루어 가는데도 협상도 중요하겠지만 그에 앞서 북한을 능가하는 국방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예산에 앞서 국방예산증액이 선행 되어야하며 더 이상 북한과의 저자세 구걸식 외교는 국민의 자존심에 상처만 준다. 진실을 감추며 평화가 유지되는 것은 아무의미가 없다.
지난 23일 대전현충원 제2연평해전 전사자 모역에서는 제10회 연평도 포격전 전투영웅추모식 및 제18회 제2연평해전 합동추모식이 있었다. 제2연평해전은 2002년 6월 29일 오전 9시 45분에 북한경비정의 NLL(북방한계선) 침범으로 우리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호(정장 윤영하 대위) 및 358호 고속정 2대를 출동하여 대응기동과 경고방송을 하며 접근 중 북한경비정이 경고 없이 참수리 357호에 함포 및 자동화기사격으로 교전이 시작 되었고 교전 중 10시 43분에 북한 경비정은 퇴각하였으며 이 교전으로 정장 윤영하 대위 및 우리해군 6명이 전사하고 16명이 부상했으며 참수리 357호는 침몰했다. 북한경비정은 외부갑판이 파괴되고 전사 13명, 부상 25명 이상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되는 국방부 보고가 있었다.
그 당시 위장된 북한과의 관계 및 월드컵 4강 진출 열기로 온 국민이 들떠 있을 때 우리의 바다를 지키던 해군 용사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늘 전운이 감도는 NLL 최전선에서 “적이 쏘기 전에 쏘지 말라”는 소가 들어도 웃을 교전규칙을 생각하면 필자 역시 가슴이 끌어 오른다. 사건이 지난 후 교전규칙은 경고방송-시위기동-경고사경-차단기동-경고사격-조준파괴의 5단계에서 시위기동-경고사격-조준사격의 3단계로 변경되었으며, 교전당시 북한 경비정의 조준함포가 떨어진 참수리357길 갑판은 우리해군 용사에 치명타를 주었으며 윤영하 대위에 이어 전사자 외 16명은 이희완 중위(당시 부정장)빠른 전투배치로 북한 경비정을 향하여 화력을 집중시켰다.
당시 한상국 중사는 포탄 파편에 복부파열로 창자가 밖으로 나온 상태에서 남은포탄 전부를 발사한 후 산화해 갔으며 다시 날아온 북한 경비정의 함포에 이희완 중위의 한쪽다리가 떨어져 나간다.
월드컵이 아무리 중요하고 국제적 축제 경기일지라도 국가의 안위를 능가할 수는 없다.
당시 햇빛정책을 고수하던 김대중 정부는 사건의 긴박함에도 전선을 방문치 않았으며 대통령은 일본에서 열리는 월드컵 폐막식에 참석했으며 안장식에도 장관을 비롯한 정부요원 누구도 찾지 않았으며 안장식은 해군장으로 진행되었다.
전사한 한상국 중사의 부인은 안장이 끝난 며칠 후 이런 비인도적 국가에서 살아가기 싫다며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6년전 제12회 추모위로제때 필자는 대전 현충원에서 이희환(소령)을 만난다.
이소령은 전장에서 한쪽다리를 잃고 인조의족에 의존하지만 걸을 수 있음을 감사하며 행정부에서 근무하여 전국기관단체 및 교육기관에 안보교육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으며 이소령은 고향이 김천 구성면이며 구성중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을 따라 경주로 갔으며, 경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지금도 부곡동에 외삼촌 두분과 아포에 이모님이 살고 있음을 이야기 했으며 교전 후 수도육군병원에서 입원해 있을시 박팔용 시장님이 방문하여 위로와 격려를 주심에 많은 용기를 가질 수 있었음을 시사했다.
이소령은 지금 중령으로 진급되어 더욱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
애국심은 교과서를 통해 공부하고 가르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인정해 주고 보호해줄 때 국가를 위해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용사들의 명복을 빌며 국민은 용사들의 용기를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