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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 현대수필의 출발

김천 수필문학의 출발을 이야기하다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0년 12월 10일

지역사회 현대수필의 출발
김천 수필문학의 출발을 이야기하다 (8)

민경탁 논설위원

존비타령(尊卑打鈴)

                                                                                                                                 한봉진(韓鳳鎭)


토속적 서민어의 주인공인 농민이 차라리, 지능을 생활의 방편으로 삼으려는 도회인의 생활태도에 비긴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십 두락 미만의 작은 농토지만 거기에 생활의 근거를 두고, 착실한 삶의 보람을 위해 피땀을 흘린 대가로 추수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농부의 낙천주의. 손해를 당할지언정 남을 해칠 줄 모르는 양순한 그들은 가물면 비를 기다리고 호우를 막기 위해 둑을 보수하는, 단순하고 순박한 토착민 그들이야말로 바로 한국적인 인간상이 아닐까!
계(契) 바람이 일어 한 때 지상을 어지럽히더니만 아직껏 고개를 숙이지 않고 성행하고 있다. 샐러리맨으로서 아무리 운이 좋았댔자 어디서 황금이 막 굴러 들어올 리 없기에 푼푼이 저축해서 목돈을 마련해야만 한다. 그러나 상부상조 미덕을 깨치고 중도에서 계가 깨지고 마니, 그것도 남의 권유가 아니고 친척의 소개로 들어간 계이고 보면 떼인 돈도 아깝지만 정에 금이 갔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된다. 남을 속이고 중상모략을 해야만 내가 잘되고 성공 ‘존(尊)’할 수 있겠지만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건실한 사고방식이 아쉽다.
쇼처럼 즐거운 인생은 없다고 하지만 나는 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 고장은 다른 지방보다 쇼 팬이 많은 것 같다. 쇼만 들어오면 평상시보다 관람객이 3배는 늘어나니. 통로는 물론 입구까지 꽉 차서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없는 인산인해의 아비규환이 된다. 그래서 보신탕을 먹을 때보다 몇 갑절의 땀을 흘리면서도 무대로 향한 시선은 조금도 불평이 없다. 모두들 이렇도록 좋아하는 쇼를 왜 기피하나? 일주일 남짓한 레이션을 받고 무대에 오른 가수는 수십만 팬들로부터 화환에 파묻혀 박수갈채를 받지만, 십육 년의 수업과 구년 간의 연구과정을 겪고 교단에 오른 나에게 있어 학생들의 반응은 너무나 실망을 주기 때문이다. 쇼를 볼 때에 열등의식과 수치심, 자책감이 나를 괴롭혀 웃어야할 장면에 상을 찌푸리게 되니 어차피 그 자리를 떠나야만 한다. 인기가수와 시골 교사에 이렇게도 엄청난 차이가 있어야 할까.

1960년대 말 김천의 농민들이 공동 모심기하는 모습


며칠 전 제자들이 방문했다. 취직을 하고서도 일찍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인사를 하더니 밖으로 나가자고 내 손을 끌었다. 내 주제에 어찌 맥주를 마시랴. 제자들의 따뜻한 대접이니 OB홀에 들렀다. 술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분위기가 좋았고 정겨운 제자들의 권주에 그만 만취가 되었다. 깨고 보니 이튼 날 아침에 내 방에 누워 있는 것이다.
두 제자들은, 한 사람은 한전에 또 한 사람은 은행에 근무하는데 나보다 월급이 월등히 많으니 난 참으로 한심스러웠다. 청출어람이란 말이 있긴 하지만 막상 제자들의 월봉이 많고 보니 부럽기도 하고 가벼운 셈까지 마음 한 구석을 맴돈다. 직업의 권태가 생각의 갈피를 못 잡게 한다. 국제경기장에 나선 운동선수, 인기배우, 가요계의 이름난 가수, 국회의원, 대통령 등등 이 모두가 되어보고 싶은 것들이다. 이것도 청년기를 넘어선 장년의 넋두리라면 비정상임엔 틀림없을 것이다.
사회생활의 조화는 존비(尊卑)가 양존해야 하지 않을까. 모두 지위가 높고 가산이 부유하다면 이 사회는 발전은커녕 오히려 멸망을 자초할 것이다. 흉조(凶兆)의 상징인 흑색 ‘비(卑)’를 모두가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연분홍 빛깔의 고운 장미보다 흑장미를 더 좋아하고, 금발미녀 뿐이 아니요 흑발미인도 있으며, 검은 스타킹, 검은 장갑, 검은 원피스 ……. 그러고 보니 동양의 대서예가들은 모두 천편일률적으로 검은 먹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아니냐!
내가 장기를 둔 지는 퍽 오래다. 자그마치 십년이 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두어도 더 늘지는 않는다. 그래서 올해부터 바둑에 손을 데었는데 무슨 일에든 집착력이 강한 탓으로 바둑 광이란 별호를 받았다. 퇴근시간을 잊어버리고 통금 사이렌을 듣고는 바삐 집으로 달려왔으니 아내로부터 충고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건강에도 좋을 리 없다.
하계휴가를 맞이하고 거의 한 달을 바둑으로 소일 하다가 종국엔 몸살까지 하고 말았으니 바둑 광으로 지칭될 수밖에. 이 사회가 바둑만큼 정직하다면 얼마나 명랑할까 …. 바둑 단수를 15급부터 친다하더라도 유단자에 이르기 까지 많은 등급으로 나눌 수 있는데 실력이 나은 자가 꼭 이기게 마련이다. 여기에는 사(邪)가 정(正)을 누르고 악이 선을 무색하게 할 수 없으며 존비의 시비가 있을 수 없다.
이런 사회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한 학기의 방학을 몽땅 소비했지만 후회는 없다. 나는 바둑을 두는 중 생활 철리를 터득했기 때문이다. ‘바둑을 두는 태도로 사회생활을 하자’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심사숙고해서 바둑알 하나하나를 주의 깊게 다루며 만일 실수를 했다손 치더라도 다음 판에는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조심성 있는 건실한 태도야 말로 얼마나 착실하고 건전한 태도일까. 매사에 이렇게 생활한다면 반드시 큰 진전이 있을 것이다.
남의 위치와 직업을 선망할 것이 아니라 자기 직업에 충실할 수 있는 열의가 필요하리라. 새 학기부터 생활고에만 허덕일 것이 아니라 호연지기의 자세로 좀 더 교사다운 인간성 형성을 위해 노력하고자 마음 속으로 굳게 다짐한다.

-『소문화』(1967.10)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0년 1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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