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나무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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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희. 효동어린이집 원장/수필가 |
출근하자마자 30년 지기 친구, 벚나무에게로 갔다. 악어 등 같은 몸을 만지며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를 건냈다. 내 몸통보다 더 굵은 나무가 앙상한 가지를 흔들며 활짝 웃는다.
김광석이 부른 ‘나무’를 들려줬다. 출근길에 들으며 온 노래다. 끝까지 다 듣고 난 그가 ‘나는 나에게 황홀을 느낄 뿐이오’ 그 가사가 제일 맘에 든다고 했다. 자기도 어제 저녁에 생각한 게 있다며 내게 말을 걸어온다. 나무로 태어난 것이 새삼 감사하단다, 그러면서 자기가 왜 여기 서 있는가를 알게 되었다고.
나는 물었다. 움직일 수도 없고 옷도 없는데 춥지 않느냐고. 나무는 고개를 흔들며 아까보다 더 크게 웃었다. 물과 태양만 있으면 족하다 했다. 한밤중에 속삭이는 수많은 작은 별들, 매일 바뀌는 달의 모습, 아침이면 제일 먼저 찾아오는 새들과 구름과 바람. 거기에다가 아이들이 뛰어나와 놀아주니 무엇이 더 부러울 게 있냐 한다.
나는 요즘 무섭고 두려운 게 있다고 마스크를 낀 채 말했다. 나무는 매무새를 가다듬더니 하늘을 한번 쳐다보고는 말한다. 원래 삶이란 그런 것인데 왜 그렇게 호들갑을 떠냐고. 밤이 지나면 낮이 오고, 태어나서 언젠가는 죽고, 양극이 있으면 음극이 있고, 모이면 흩어지는 것이니 더 멀리 더 넓게 보라한다.
나는 또 물었다. 누구에게 배웠냐고 학교도 안 다녔는데 어떻게 아느냐고. 나무는, 지구가 생길 때부터 인류가 시작될 때부터 그냥 당연히 아는 것 아니냐고 한다. 나는 다급한 마음에 밑도 끝도 없이 말을 이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건 서로 어울려야 하건만 어떻게 서로를 멀리하고 두려워해야 하니 이게 말이 되느냐고.
나무는 ‘인생이란 폭풍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퍼 붓는 빗속에서도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라고 어떤 이가 말했지 않냐며 지금 이 순간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한다.
나무는 조용히 말을 잇는다. 그 추웠던 겨울을 이겨내고 살갗을 찢으며 새싹을 싹 틔우는 나를 못 보았냐고.
그 뜨거운 뙤약볕 아래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한여름을 견디는 나를 보지 않았냐고 깊은 눈빛을 준다. 그러면서 주머니 속에 몇 개 밖에 남지 않은 나뭇잎을 꺼내 내게 보여준다.
나무는 말을 잇는다. 흠 없고 벌레 먹지 않은 몸이 있느냐. 나뭇잎 한 장 한 장 밤새 편지를 써서 사람들에게 보냈건만 제대로 읽지 않더라. 어떤 이파리엔 ‘잠시 멈춤’이라고 썼고, 또 어떤 이파리엔 ‘마음 챙기기’라고 썼으며 어떤 잎에는 ‘묵묵히 너의 길을 걸어라’라고 썼다고 한다.
고개가 끄덕여 진다. 이제 알았다. 중심 잘 잡고 흔들리지 않겠노라고 답했다. 그가 가지 하나를 살며시 꺼내 내 어깨에 얹어준다. ‘이제 겨울이야, 나는 땅 속 깊이 박힌 내 뿌리에 온 힘을 다 쏟을 거야. 너도 너의 내면의 뿌리를 보살펴 보렴’
아이들이 노란 버스에서 우르르 내린다. 나는 미처 나무에게 인사도 못 하고 아이들을 맞이한다. 아이들 몸에서 나무향기가 난다. 오늘도 나는 뿌리 깊은 나무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힘껏 노래 부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