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 현대수필의 출발
김천 수필문학의 출발을 이야기하다(9)
민경탁 논설위원
길과 여행
허인무(許寅茂)
나는 길과 여행을 좋아하고 즐긴다. 도시의 넓은 활주로 가로수 그늘 밑을 드라이브하며 흘러나오는 째즈 곡에 도취하는 것을 좋아한다. 촌락의 좁고 구부러진 세로(細路)를 거닐며 대자연의 품에 안겨 홀로 사색하는 무아지경을 좋아한다. 정다운 이와 같이 걸으면서 서로의 미래를 꿈꾸고 지난날의 흘러간 추억과 로맨스를 되새기면서 걷는 것도 좋아한다. 목적 없는 길이라도 끝없이 가고프다. 길이라면 바로 여로(旅路)를 상증하게 된다. 여로라면 어쩐지 가슴이 부풀어 오르며 일찍이 보지도 느끼지도 못한 여러 사물과 사건이 눈 앞에 끝없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비이트의 젊은 세대들은 나그네처럼 산다고 한다. 움직이는 생을 영위하기 위해서 그들은 길 위에서 사랑하고 길 위에서 죽음을 맞이한다고 한다. 그들은 서재에서나 온실의 화분에서 생각하고 듣는 인생이 아니라 직접 보고 듣고 행동하고 감각하는 생을 누리는 것이리라. 옛날 우리 선조는 자식의 견문을 넓히기 위해 여행을 시켰다. 인생의 쓴맛 단맛을 체험시키기 위해서 여로를 떠나라고 하였다. 돈이 없으면 무전여행이라도 하게 했다. 국내는 물론 세계를 가로세로 질러서 다니며 각국의 생활풍습 등을 일일이 답사하는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과 같이 삶에 매우 유익하다고 봤다. 여기서 지드의 행동론이 대두 되었을는지 모른다. 그는 “서책을 불살라 버리라”고 하였다. 강변의 모래알들이 아름답다고 글을 읽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원컨대 그 반짝이는 모래를 맨발로 거닐면서 직접 느껴보고 싶었으리라. 어떤 지식도 우선 감각을 통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면 아무 값어치 없다는 것이다. 나는 6.25 사변 때에 천리 길을 걸었다. 수도 서울에서 한반도 남단 항구인 목포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흘 동안 줄곧 남으로, 남으로 향해서 걸었다. 지상에는 총알이 날아오고 공중에서 기총소리와 폭탄이 마구 떨어지는 전화(戰火) 속이었다. 낭만이라고는 너무 대담한 표현, 오직 생명 보존에만 급급했다. 그렇지만 팔도 음식을 모두 맛보았고 각 지방의 흙냄새와 풀냄새를 모두 맡아보았다. 내 두 발바닥이 헤지고 발톱이 빠지도록 걸어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흐뭇하기 비할 바 없다. 밤이면 시원한 달빛을 벗 삼아 발걸음을 옮겼고 낮에는 찌는 듯한 태양의 혹열(酷熱)과 싸우면서 걸었다. 나는 이 천리 도보여행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느끼고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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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 초 지례(옛지명 지품천) 상가에서 거창 가는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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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에는 달콤한 밀월의 여행을 한다. 그 후에는 결혼 후의 권태기를 메꾸고 달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난다. 신경쇠약이나 기타 정신적인 원인에 의한 장애에는 소위 전지요법(轉地療法)이라 하여 여행을 권해 받기도 한다. 바캉스의 목적도 피서에도 있겠지만 변화 없고 메마르고 단조한 생활에서 탈피해, 단 며칠간이라도 산이나 들과 바다로 나아가 생활환경을 변화시키고, 늠름하고 자약한 대자연 속에서 참다운 인생을 배우고 마음껏 심회를 풀어놓고 자연과 속삭이기도 하며, 사색도 하고자 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일찍이 베르길리우스는 “운명이 내게 내 멋대로 살게 허용한다면 나는 말안장 위에서 보내기로 택하였다”라고 했다. 우리 인생이 고달프고 생활이 무미건조해서 짜증난다거나 허무와 고독에서 새 희망과 참다운 가치를 찾으려면 그대, 목적지 없는 여로에 올라 보라. 먼 지평선을 향해서 미지의 세계를 파헤치면서 인생의 수수께끼를 풀고 참다운 인생을 소유하고자 탐구해 보라. 살며시 생의 가치를 느낄 것이다. 나그네의 인생길이 좀 더 길어질 것이 아니겠는가!
-『소문화』(196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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