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테라피
이태균 한국문인협회김천시지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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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균 |
얼마 전 친구의 권유로 예쁜 구피를 분양받아 작은 어항에 키우게 되었다. 아이들은 외지에 나가 있고 처와 단둘이 살고 있어 거실에 들어서면 구피가 우리를 맞이해주는 유일한 사랑의 전령사였다.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함께 하는 것은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기쁨과 위안을 주기 때문이리라. 구피도 처음 먹이를 줄 때 놀라서 도망 다니더니 며칠 사이에 지느러미와 꼬리를 파르르 떨면서 우리를 맞이해주어 가족처럼 행복했다. 수 개월간 그처럼 좋아했던 주홍 무늬 꼬리를 가진 구피 세 마리가 어느 날부터 시름시름 앓더니 배를 반쯤 물 위로 드러내고 누웠다. 아주 오랫동안 무슨 말을 하려는 듯 한쪽 지느러미만 까딱까딱하다가 결국은 사투 끝에 내 곁을 떠났다. 텅 빈 어항만 남아 오래도록 가슴이 너무 아팠다. 사랑땜이다. 이제는 그 자리를 예쁜 화분이 차지하고 있지만 문득문득 미안한 마음이 스쳐간다. 지금 이 순간도 비움과 채움의 중간일까? 그들이 살았던 순간들이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게 된 것인가. 우리도 머지않아 구피와 같아지지는 않을까. 평소에 사람들이 그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며 살았던 날들은 마침내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 법정스님은 수필 ‘무소유’에서 정성스레 키운 난초 때문에 출타를 마음대로 못하게 되자, 집착에 얽매임을 온몸으로 느껴 친구에게 안겨 주었다고 하였다. 많은 위정자들이 권력과 명예로 성과를 남기려고 하고, 가지면 가질수록 머리가 더 복잡해져도 사람들은 소유욕을 쉽게 떨치지 못한다. 행복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황제이자 철학자인 아우렐리우스는 ‘이성을 지닌 생물,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의 본성이 원하는 일을 하는 데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명심하라는 말도 반복한다. 코로나19와 정국혼돈의 우울한 상황 속에서, 인생의 고단함이 절절히 녹아든 가황 나훈아의 ‘테스형!’과 노사연의 ‘바램’을 듣고 따라 부르면서 우리 부부는 카타르시스와 음악 치유의 행복감을 느낀다. 그리고 시인으로서 시 한 편에 몰입하면서 느끼는 문학적 치유감도 소소한 행복이며, 함께 나누는 커피 한잔의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 예순이 조금 지난 지금, 내려놓고 비우는 작업이 쉽지는 않지만 세상사 ‘일체유심조’라면서 남과 비교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 세상에서 고유한 나는 나 하나 뿐이다!’라는 자긍심으로, 평소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과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지금 느끼는 그대로 나답게 살고 싶다. 오늘도 밤새도록 서 있는 가로등과 눈 덮인 마당의 인동초를 바라보며, 「숙흥야매잠」*을 외우고 음미한다.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 : 남송(南宋)의 진무경이 지은 것이며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에 이르기까지 일상에서 지켜야 할 자세를 설명한 글. ‘이 마음을 수습하면 떠오르는 태양처럼 환하고, 몸을 엄숙하게 정돈하여 가지런하게 하면 마음이 텅 비고 밝고 고요하여 전일하게 될 것이다.’라는 글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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