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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감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곳에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1년 02월 25일
삶의 향기


감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곳에

이영신 문화재 해설사


12월 초 일요일, 바람 한 점 없는 포근한 아침이다. 지난여름에 감천 상류의 문화유산을 답사한데 이어 이번엔 감천 하류의 대표적 문화재라 할 수 있는 금오서원을 찾아간다. 9시다. 성당 앞에서 애칭이 버그먼인 그녀가 운전하는 차에 올라탄다.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반갑고 마음편한 그녀다. 버그먼과 나 그리고 애칭 스필버그 선배와 선산의 금오서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차창 밖 예쁘게 물든 나뭇잎들이 어느새 떨어져 알몸이 되어있다. 보태지도 빼지도 않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푸르고 푸른 하늘에는 평소에 보던 뭉게구름이 아닌 날개를 활짝 펴, 자유롭게 날아가는 새와 같이 보인다. 그녀와 나는 같은 시선으로 하늘을 본다. ‘저 하늘의 새처럼 자유로이 훨훨 날아다닐 것입니다.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이루어 질 거예요.’
넓은 들판에는 가을걷이가 끝나고 볕짚을 둘둘 말아 하얀 비닐로 압축하여 놓은 것들이 마치 마시멜로가 서서 재롱을 떨고 있는 것 같다. 민병도 시조시인의 시구가 떠오른다. “풀꽂에게 삶을 물었다/흔들리는 일이라 했다//물에게 삶을 물었다/흐르는 일이라 했다//산에게 삶을 물었다/견디는 일이라 했다//”(민병도, 「삶이란」)
삶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이 아닐까 한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하루. 소중히 여기며 하루하루 의미 있게 살아야 되지 않을까. 1시간 15분을 달린 후 금오서원에 도착했다. 김천의 젖줄인 감천이 낙동강과 만나는 곳에서 금오서원은 말없이 우리를 반기고 있다. 스필버그 선배가이미 오셔서 우리를 안내한다. 오늘도 우리의 스승이 되어 하루를 이끌어 주실 것이다.
새파란 스레트지붕 옆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온다. 간간이 들려오는 개짓는 소리, 조금 차지만 맑은 공기는 도시생활에 절은 몸을 정화 시켜주는 것 같다. 금오서원의 문루 이름은 읍청루이다(경북기념물 제 60호). 곧게 뻗은 대나무들이 서원 전체를 감싸고 있고, 자연 그대로의 돌계단을 나지막한 흙담이 감싸고 있다. 이 서원에는 야은(冶隱) 길재(1354~1419)를 비롯해 강호산인(江湖散人) 김숙자(1389~1456), 점필재( 畢齋) 김종직(1431~1491) 등 여러 우리나라 성리학자들이 배향돼 있다. 김숙자·김종직 부자는 경은(耕隱) 이맹전(1392~1480)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조선의 성리학은 김굉필, 정여창, 김일손과 같은 이들에게 전수, 김굉필에게 배움을 받은 정암 조광조로도 이어졌다고. 점필재를 배향한 서원은 밀양의 예림서원 함양의 백연서원, 김천의 경렴서원, 개령의 덕림서원 등이란다.
스필버그 선배는 부연해 준다. 점필재는 아버지가 김천 개령현감을 지낼 때 6년간 김천을 왕래하며 아버지께 배워 과거 급제했다고. 그러다가 그는 김천의 매계(梅溪) 조위(1454~1503)의 누나와 결혼했었고 둘째아들도 개령에 살았단다. 그가 말년에 정계를 떠날 때 김천에 서원을 세우고 후학들을 가르쳤다고. 신당(新堂) 정붕(1467~1512)은 한훤당 김굉필의 문하이며, 송당 박영,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사이에서 학덕과 실력을 인정받은 유학자였다는 것도 알게 된다. 장현광은 현재 구미의 동락서원에 배향하고 있다고 한다.
금오서원 정확당에 붙은 현판에 여기서 하면 안 되는 7가지을 써놓은 글이 눈에 들어온다. “1. 창이나 벽에 낙서 하거나 2. 책을 손상 하거나 3. 놀기만 하고 공부를 안 하거나 4. 함께 있으면 예의를 잃거나 5. 술이나 음식만 밝히거나 6. 대화가 난잡하거나 7. 옷차림이 바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적혀있다. 선배는 “이 7 가지 금기를 어기는 자가 금오서원에 왔으면 돌아가고, 오지 않았으면 오지 말라”는 내용의 한문도 풀이해 주신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나는 버그만에게 “서원은요, 학문과 자연이 멋지게 어우러진 곳이랍니다. 이곳은 학문의 장소며 배움의 공간인 동시에 경치가 너무 좋아 사람의 마음을 빼앗아 버리기도 합니다. 배산임수(背山臨水)죠.”하고 말했다.
오늘은 금오서원 사당에 문이 열려있다. 고개 숙여 묵례를 하니 버그만은 “조상님, 우리 아들 잘 되게 해 주세요” 한다. 부모마음은 하나같을 것이다. 가슴 한 켠에는 자식이 늘 자리하고 있으며 기도 하며 사는가 보다. 우리는 “金烏亭” 이라는 현판의 글씨에 마음을 빼앗겼다. “와, 저 글씨 정말 멋지네요!” 힘 있으면서도 부드러우며 발길을 당기는 저 글씨. 나무 계단을 따라 오르지만 두 발은 너무도 가볍다.
이곳은 감천이 낙동강과 맞닿는 지점이다. 아무런 장애도 없이 그저 넓은 자연 그대로의 평야에 마음은 숙연 해진다. ‘곁에 계시는 선배님, 늘 감사드립니다. 지금은 부족하지만 글쓰기 공부 계속하면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성과를 낼 거예요. 그때 오늘 같은 날을 잊지 못할 거예요. 늦은 나이에 문학과 글쓰기가 좋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좋습니다. 어느 수필가처럼 언젠가 저도 그렇게 될 거예요.’
차로 5 분밖에 안 되는 곳에 낙동강 구미보가 있다고 한다. 그곳으로 이동한다. 햇볕이 따사롭다. 그러나 강가인지라 몸은 움츠러든다. 구미 관광안내 지도가 커다랗게 서있다. 선배는 지도를 보며 주변에 있는 이곳저곳을 설명해 주신다. 세계 어느 나라, 동·서양 할 것 없이 물을 중심으로 사람이 모인다. 물이 있으니까 마을과 도시가 형성된다. 세계의 유명한 도시는 다 강을 안 낀 도시는 없다. 서울, 뉴욕, 북경, 파리, 모스크바 다 마찬가지란다. 물이 있으니 주거지나 마을이 형성되고 사람이 많이 모이니 유명한 인물이 나온단다.

금오서원


또 여기서 알게 된다. 한국의 성리학은 낙동강 연안을 중심으로 발달해 왔다고. 선산은 물론 상주, 예천, 안동 출신 유학자들이 얼마나 많았나. 낙동강이란 이름이 상주 낙양의 동쪽으로 흐르는 강이라 해서 생겨났다는 것도. 구미보를 벗어나 선산읍으로 들어가니 재래시장이 있다. 재래시장을 둘러보고 근처의 호젓한 한정식집에 든다. 푸짐한 한상차림의 점심을 배불리 먹었다. 선배로부터 김천지역에 왔다고 맛있는 점심 대접을 받는다, 감사하게도. 
 감천 하류를 거슬러 이영철 화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코튼필드 갤러리를 찾아 구미로 든다. 갤러리 코튼필드에 도착하니 마당 한 켠에 목화나무와 눈송이 같은, 하얗게 핀 목화꽂이 우리를 반긴다. 건물 2층으로 올라가니 전시장엔 그동안 보아왔던 이 화가의 그림들이 낯설지 않게 반긴다. 밝은 색상이 어른 아이, 남녀노소 누가 보아도 어렵지 않게 다가와, 코로나 파동으로 심신이 절인 사람들에게 힐링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서운하게도 오늘은 이영철 화가는 현장에 없다. 대구에서 다른 전시를 준비 중이란다. 이영철 화가의 친구 이도(본명 이동철) 화가가 우리를 안내를 한다. 안내를 받아 1층의 카페 코튼필드에 들어간다. 이도 화가는 “4-5월에 목화 파종, 8월 목화 피기 시작, 10월에 목화솜을 볼 수 있습니다.”고 설명해 주신다. 이곳은 화가님의 작업실이자 카페다. 한 쪽 벽면에는 많은 책들이 있어 서점과 같은 느낌이 든다. 카페 밖 담장에는 시크릿 처럼 그려진, 재미있는 그림이 시선을 멈추게 한다. 우리는 작가님과 함께 차를 마시며 여유로이 미술작품에 관한 담소를 나누었다. 지난 가을 동반자 버그먼과 나 그리고 스필버그 감독 님과 함께 경주 지방을 여행하며 명승지, 사찰, 미술관, 대중음악박물관 등 좋은 체험을 하며 동해 바닷가 앞에서 차를 마시던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생각해 보니 지난 가을, 경주와 동해 지역의 기행 체험과 오늘의 낙동강 지역 역사·문화 체험이 모두 물과 관계된 여행체험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 했다. 노자는 ‘최상의 도는 물처럼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는 것도 기억한다. 단군신화에서는 단군이 탄생하기 전에 이미 하늘에서 물(風伯 雨師 雲師)을 준비 했고, 구약성경 창세기에도 물을 먼저 만들고 맨 마지막에 인간을 창조했다고 했다. 중국 은나라 탕왕은 세수대야에 “일일신우일신(日日新 又日新)”이라 새겨놓고, 물로 세수할 때 마다 자신을 새롭게 변화 시키자는 다짐을 했다고 하지 않는가.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知者樂水)는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쉬지 않고 흘러가는, 끊임없는 강물처럼 자기 변화를 통해 능동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1년 0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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