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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공원-황혼 이혼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1년 04월 22일

수필공원

황혼 이혼


박영희
김천 남면 출생
경산 대원보건진료소장

앙상하다. 딸의 부축을 받아 보건진료소로 들어선 할아버지의 몸은 곧 쓰러질 것 같다. 타고 난 약한 체질인데다가, 지난번 감기로 진료소에 왔을 때도 얼굴이 반쪽이더니 그 사이 더욱 쇠약해졌다. 마음고생이 심했나 보다.

작년 여름이었다. 수영장 앞 나무의자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를 만났다. 언제부터 그렇게 있었던 것일까. 나를 보자 피우던 담배를 껐다. 할아버지는 집 나간 지 열흘이 넘은 할머니를 찾고 있었다. 평소 할머니가 다니던 수영장 앞에서 할머니를 만날 수 있을까 기다리고 있었다.
내 차로 함께 돌아오는 할아버지의 몸에서는 담배냄새가 강하게 났다. 어디에도 풀 수 없는 답답한 심정을 담배로 달랜 것일까.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쌓인 불만을 토해 냈다. 그동안 할머니에게 들어간 비용을 얘기했다. 같이 살면서 돈 때문에 겪어야 했던 스트레스로 마음고생이 심했나 보다. 여러 번 집을 나간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쉽게 해결 되지 않을 것 같다는 할아버지의 말 속에 불안이 묻어났다.
두 분은 이십 년 전에 재혼으로 만난 사이다. 할머니는 언변이 좋고 활달하다. 시골의 보통 할머니와는 다르게 승용차를 운전하였다. 그에 비해 할아버지는 운전도 못 하고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전형적인 시골 노인이다. 예전에 할머니의 부탁으로 노래 교실에서 배우는 악보와 게이트볼 단체의 요구 사항을 적은 자료를 복사해 드린 적이 있다. 그러니까 할머니는 매우 적극적이며 모임에서 리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에게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이어서 반갑다며 대화 중 ‘주님’을 자주 찾는 바람에 살짝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다. 평소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융통성이 없고 너무 아끼고 지나치게 알뜰한 성격 때문에 생기는 일상사의 속상한 일들을 풀어내곤 하였다. 이런 저런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할머니에 대한 마음을 이해하는 심정과는 달리 왠지 할아버지가 걱정되었다.

그들은 최근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이른바 황혼 이혼이다. 무던히 어울리는 부부는 아니었지만 부부라는 인연으로 만났고, 이십 년 살아온 세월만으로도 함께 살 이유가 될 터인데 그들은 헤어졌다. 서로에게 많은 아픔과 상처가 있었을 것이다. 두 분이 함께한 굴곡진 삶의 고단함을 나는 다 알 수 없다. 서로 줄 것과 받을 것을 따지다가 균형이 깨져 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이혼 이후 할머니를 수영장에서 뵈었다. 할머니는 법적으로 혼자가 되면 기초 생활 수급자 신청을 하여 생계를 해결하려 했으나 딸이 수입이 있어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돈이 없어 팔아버린 중고차를 다시 사서 새벽기도를 마치고 폐지를 모아 수입원으로 삼는다고 했다. 그 일도 경쟁이 많아 생각처럼 쉽지 않더라고 했다.
혼자 몇 달을 사시던 할아버지는 극도로 쇠약해져서 돌봄의 손길이 필요하게 되었다. 딸과 함께 진료소에 들른 것도 요양보호사 신청을 하기 위해 절차를 물으러 온 것이다. 서로 의지하며 살던 관계가 깨졌을 때 가족이 해결해 주지 못하는 현실을 이제 사회 제도가 조금은 보완해 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십 년쯤 전인가. 일본의 사회 현상을 접하면서 ‘황혼 이혼’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다. 우리 정서에 참으로 낯설기만 했던 그 단어가 이제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지금은 우리나라 이혼율이 세계의 선두에 올라섰고, 황혼 이혼이 차지하는 비중 또한 신혼 이혼을 넘어섰다고 한다.
전에는 부부들이 이혼하지 못하는 첫째 이유가 경제적인 문제라고 했다. 그때는 여성이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사회적인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래서 온갖 불합리함 속에서도 참고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세상이 달라지고 약자였던 여성의 위치가 변했다.
“다시 태어나도 지금 배우자와 결혼하시겠어요?” 육십 세 이상의 여성을 대상으로 강의하던 강사가 던진 질문이다. 백여 명이 넘는 사람 중 단 한 분만 손을 번쩍 들었다. 강사는 그나마 한 분이라도 계신 것에 안도하였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은 치매 환자였다고 한다. 서글픈 현실을 풍자한 얘기다.
인간의 불완전함은 누구나 예외가 아니다. 부부는 서로의 부족함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의 위치에 있기도 한다. 이렇게 모순투성이 인생을 잘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가정은 무언가를 얻어 가는 곳이 아니라 서로 주어야 유지가 되는 곳이 아닐까. 어쩌면 가정은 신이 정말 특별한 것을 경험하고 깨닫게 해 주기 위해 끝없이 인간을 단련하는 장소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각각의 인생의 배를 탄 두 사람이 쓰리고 아픈 상처를 딛고 일어서서 각자의 남은 생을 잘 꾸려나갔으면 좋겠다. 홀로 남은 고독과 버려진 것 같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느라 지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1년 04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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