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한 그릇
한국의 ‘테이블 마운틴’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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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래
수필가, 전 구미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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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에서 인동이 있는 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정상부근이 거의 수평으로 자른 듯 평평하게 생긴 산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사방이 자연 석벽으로 된 절험의 산, 천생산이다. 하늘에서 생겨난 형상이라는 뜻으로 천생산(天生山)이라 불렀지만, 지역에서는 산의 모양이 방티를 엎어 놓은 것과 같아서 방티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정상부의 큰 바위는 병풍을 둘러 친 것 같다 해서 병풍바위라고도 부른다. 해발 407m의 천생산 정상에는 경상북도 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된 산성이 있다. 서쪽은 자연 절벽이고 북, 동, 남부에 성을 축조하였다. 이 성은 삼국시대의 산성 양식으로 건축되었을 뿐 아니라 당시의 무덤들도 있어 처음 쌓았던 연대를 삼국시대로 볼 수 있다. 산성의 둘레가 1㎞를 넘으며 험준한 암벽 사이사이를 돌로 이어 쌓은 특유의 산성 형식을 띠고 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곽재우 장군은 이 천생산성에 의병을 집결시켜 왜적과 싸웠으며, 인근의 주민들이 산성에 대피하여 목숨을 구하기도 하였다. 산성은 천연적으로 깍은 듯이 험준하게 생긴 지형에 장군의 신출귀몰한 전법까지 더해져서 난공불락을 자랑하던 요새지였다. 왜군은 공격을 해도 함락할 수가 없자 계략을 꾸미기를 산성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물이라 생각하고 이 산기슭에 큰 못을 팠다. 산 위의 샘물이 점점 줄어들게 되자 산성 안에서는 식수가 부족하여 큰 고난을 겪게 되었다. 장군은 이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물이 많이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하여 산성 서쪽에 우뚝 솟아있는 바위 끝에 백마를 세우고 말 등에다 쌀을 주르르 부으면서 말을 씻는 모습을 보였다. 멀리서 바라보는 왜군의 눈에 마치 물로써 말을 씻고 있는 것같이 보였음은 물론이다. 왜군은 산성에 물이 많아서 말까지 씻기는 줄 알고 공격을 단념하고 물러갔다는 이야기다. 또 다른 전설도 있다. 왜적이 성을 포위하고 물을 끊자, 곽재우 장군은 성벽 끝에 흑마를 세우고 엉덩이에 쌀알을 붙여 말을 씻는 시늉을 했다. 이 쌀알이 빛에 반사되어 물방울로 보이자 왜적이 포기하고 돌아갔다는 것이다. 산성 서쪽에 불쑥 튀어 나온 큰 바위의 이름은 본래 밀득암이었으나 왜군을 물리치는 데 쌀의 덕을 보았다고 해서 미덕암이 되었다 한다. 천생산에 오르면 구미 시가지와 금오산 그리고 유학산까지 볼 수 있다. 천생산성은 서남쪽에 있는 금오산성과, 동남쪽에 있는 가산산성과 더불어 영남 일대의 중요한 산성이다. 정상으로 가는 길이 여러 개 있고, 산이 높지 않아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다. 인동에서 천평 쪽으로 한국 유일의 ‘테이블 마운틴’을 바라보면서 가다가 천룡사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된다. 산성 내에는 지금도 무기고, 군정, 우물 하나와 연못 2개가 남아 있으며, 지금의 성벽과 문터는 임진왜란 이후 여러 차례 보수한 것이다.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 선조들의 지혜를 재발견할 수 있는 천생산에 한 번 쯤 올라가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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