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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호의 역사인물 기행 [4]

고죽(孤竹) 최경창과 기생 홍랑(洪娘)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1년 05월 06일

고죽(孤竹) 최경창과 기생 홍랑(洪娘)

최재호 칼럼니스트/전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

ⓒ 김천신문
조선 중기 문신 최경창(崔慶昌 1539~1583)의 자는 가운(嘉運), 호는 고죽이며 본관은 해주(海州)이다. 일찍부터 그림과 활에 능할 뿐만 아니라, 문장과 학문에 뛰어나 조선의 팔 문장(八文章) 중의 한 명으로 꼽히며, 당시(唐詩)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삼당시인으로도 불린다. 오늘날, 그가 더욱 유명한 시인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생전에 그를 죽도록 사랑했던 기생 홍랑(洪娘)의 무덤에서 그녀의 시와 함께 고죽의 시화첩이 발견되면서부터이다.
고죽이 홍랑을 처음으로 만난 것은 그의 나이 35살, 정6품으로 북평사(北評事)에 임명되어 함경도 경성(鏡城)에서 근무할 때이다. 당시에는 관리가 국경 근처의 변방으로 떠나는 경우, 가족을 데려갈 수 없는 대신에 그 지역의 관기(官妓)로부터 수발을 받게 되어 있었다. 홍랑은 어려서부터 고아가 되어, 마을의 의원에 의탁되어 말과 글을 익히며 여염집 규수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가난을 떨쳐버릴 수 없기에 관기로 들어가 그림과 글씨, 노래와 춤 등을 익히며 기생으로서의 자질을 두루 갖추었다.
홍랑이 홍원(洪原) 관아에 있을 때다. 그때 운명처럼 당대의 문사이자 한량인 고죽이 부임했다. 인재는 인재를 서로 알아보는 법. 그들은 곧바로 글과 마음이 통하여 군막(軍幕)에서 2년여 꿈같은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고죽이 임기를 마치고 한양으로 귀임하게 됐다. 관기의 신분인 홍랑은, 경성 관활 지역의 경계인 함관령(咸關嶺)까지만 배웅할 수 있었다. 이윽고 두 사람의 발길이 함관령에 이르러 홍랑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이별 앞에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을 토로해야 했다. 옛 말에 백두여신 경개여고(白頭如新 傾蓋如故)라 했다.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백발이 되어도 남이요, 마음이 통하면 금방 만나도 정인(情人)이 된다는 뜻이다.

고죽의 송별시와 홍랑의 시조

홍랑이 복받치는 서러움을 삼키며 주변을 둘러보니, 자신의 서러운 심정을 위로라도 하듯 사방에 산 버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있었다. 홍랑은 버들 한 묶음을 꺾어 고죽에게 건네며 구슬픈 어조로 읊조렸다.

묏버들 갈혀 것거 보내노라 님의 손데
자시는 창밧괴 심거두고 보쇼셔
밤비예 새닙곳 나거든 나린가도 녀기쇼셔.

한국 문학사에서 이토록 애절한 연시(戀時)를 또 찾아볼 수 있었던가. 교과서에도 나오는 ‘묏버들 갈혀 것거’ 시조는, 이렇듯 기구한 운명 앞에 속절없이 임을 보내야 하는 변방의 이름 없는 기녀(妓女)의 가슴에서 탄생하였다.
고죽이, 한양으로 돌아간 3년 후 그가 병석에 있게 됐다는 소식을 듣게 된 홍랑은 그날로 남장(男裝)하여, 밤낮 7일을 걸어 한양에 당도해 고죽의 병수발을 들었다. 하지만 곧바로 홍랑의 근무지 이탈 사실이 밝혀지면서, 고죽은 영광군수로 좌천되고, 홍랑은 기적(妓籍)에서 쫓겨났다. 이후 고죽은 종성부사로 복직하였고 다시 성균관 직강으로 부임하던 중 종성 객관에서 45세를 일기로 객사하였다. 이에 홍랑은 고죽의 무덤 곁에 묘막(墓幕)을 짓고 3년 간 시묘했다.
홍랑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죽의 시첩을 지고 함경도 홍원으로 피신했다가, 난이 끝나자 다시 파주(坡州) 묘막으로 돌아와 수년을 더 살다 죽었다. 홍랑의 묘는 고죽과 그의 정실부인 임(林)씨와의 합장묘 아래에 남아 있었다. 400여 년이 흐른 최근, 고죽의 후손들이 조상의 묘소를 이장하다가 홍랑의 무덤 속에서 시조 ‘묏버들 갈혀 것거’ 원본을 비롯 고죽의 육필 원고를 다량으로 발견했다.
새롭게 단장된, 고죽과 임씨 부인의 묘는 한강과 자유로가 내려다보이는 파주 다율리 산언덕에 있다. 홍랑의 묘는 고죽의 묘보다 한 계단 아래에 오석으로 만든 시비(詩碑)와 함께 있다. 시비 전면에 고죽의 ‘번방곡(翻方曲)’이, 후면엔 홍랑의 ‘묏버들 갈혀 것거’가 새겨있다. 고죽과 홍랑 두 사람이 시공을 초월한 풍류의 반려임을 알리는, 청고(淸高)한 음성인 듯하다.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1년 05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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