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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봉 수필가 |
3월말이다. 봄이라고 하기엔 아직 아침저녁으로 가슴에 파고드는 한기로 인해 계절은 아직 겨울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사무실 앞 연못가에 어제부터 두터운 파카를 걸치고 검은 모자를 푹 눌러 쓴 사람이들이, 사진전문가들만이 사용하는 큰 망원 렌즈 사진기를 가지고 하루 종일 죽치고 앉아 있다. 다음날, 사진작자들은 약 30여명이 대거 몰려 장사진을 이루는 것이 아닌가?
점심식사 후 공원을 산책 하다가 궁금하여 가까이 가서 물어 보았다. 겨울철새인 “홍여새”라고 하는 철새가 이곳에 나타났다는 정보 때문에 이렇게 많이들 모였다고 했다. 주위에 피라칸타 나무가 있어 열매를 먹고 난후 물을 먹기 위해 홍여새가 이곳에 날아오기 때문이라고. 홍여새는 주로 20-30 마리씩 몰려다니는데, 잠시 물을 먹다가 한 마리가 날면 순식간에 일제히 날아오르기 때문에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사진 찍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나도 같이 참여해 본다. 갑자기 누군가가 ‘쉿’하는 소리를 내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는가 싶었는데 홍여새가 한 마리, 또 한 마리 순식간에 20여 마리가 연못에 내려 물을 먹기 시작했다. 낌새를 알아 차렸는지 한 마리가 갑자기 나니 일제히 뒤를 따랐다. 날개를 활짝 펴고 비상하는 모습이 참으로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홍여새는 머리 모양은 축구스타 베컴과 같이 머리 깃을 곧추세우고 눈 주위는 검고 진하게 화장한 오페라의 여배우처럼 특이한 모습이다. 이마에서 정수리 까지는 분홍색을 띤 갈색이고 꽁지 끝이 진홍색인 것이 마치 중국 황실에서나 애완용으로 키울법한 특이한 자태다.
홍여새는 시베리아 남동부 우수리 지방이나 중국북부 등에서 번식을 하고 한국, 일본, 대만 등지에서 겨울을 난다고 한다. 충분한 음식을 섭취하고 휴식을 취한 후 수만리 떨어진 시베리아로 날아 갈 것이다.
몸체도 그렇게 날씬하지도 않고 날개깃도 그렇게 커지도 않은데 저 몸을 가지고 어떻게 그 멀리 까지 날아 갈수 있을까? 비행기로 날아가도 몇 시간이 걸릴 텐데 작은 깃을 팔딱 거리며 수만리 길을 날아가야 한다니…. 아마 혼자서는 도저히 갈수 없지만 수십 마리가 같이 떼로 날아가니까 가능한 것일까?
송어는 바다에서 3-4년 살다가 산란기가 되면 자기가 태어난 강가로 와서 물이 맑은 곳에서 산란과 방정을 하여 새 생명을 잉태하고 난후, 모두 죽는다. 어떻게 태평양 먼 바다에서 살다가 죽을 때가 되어 자기가 태어난 고향인 강가로 수만리를 헤엄쳐서 찾아올 수 있을까?
뱀이나 개구리들은 영하 20도가 넘어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는 추운 겨울을 어디에서 어떻게 동면 하다가 봄만 되면 깨어나서 알을 낳고 생존을 유지할까? 또한 잠자리나 나비들은 여름에 태풍이 불거나 비바람이 며칠간 몰아 칠 때 어느 곳에 몸을 숨겨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자연의 신비에 의문이 샘물처럼 솟아오르다가도 대자연의 섭리에 새삼 머리가 숙여진다.
법정스님은 30대 말에 쓴「미리 쓰는 유서」에서 이렇게 유언을 했다. “육신을 버린 후에는 훨훨 날아서 가고 싶은 곳이 있다. 어린왕자가 사는 별나라 같은 곳이다. 의자의 위치만 옮겨 놓으면 하루에도 해지는 광경을 몇 번이나 볼 수 있다는 아주 조그만 그런 별나라.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안 왕자는 지금쯤 장미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을까. 그런 나라에는 귀찮은 입국사증 같은 것도 필요 없을 것이므로 한번 가보고 싶다.” 법정스님은 입적하고 난후 소원대로 어린왕자가 사는 별나라에 가서 장미와 대화하며 행복하게 살고 계실까?
지금쯤 홍여새는 조그만 깃을 펄럭이며 북쪽으로 날아가고 있을까. 아니면 목적지에 도착하여 평온한 안식을 취하고 있을까. 그들이 떠난 작은 연못에는 얼마 전부터 새색시의 미소처럼 소담스러운 연꽃이 피기 시작했다.
5월인데도 대낮엔 한 여름처럼 뜨겁다. 이젠 봄도 가을처럼 잠간 왔다가 부리나케 도망가 버리는 그런 계절로 바뀌어 버린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