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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공원 - 아름다운 눈물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1년 05월 27일

조용휘
수필가·전 서울우신초교 교장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 태양은 빛나고. 연초록 나뭇잎은 산들바람에 맞춰 춤춘다. 오월이다. 오늘의 주인공은 홍콩 출신 L. K NG 개리(오락권)군과 중국 동포 김란 양이다. 보라색 턱시도에 흰 나비넥타이가 잘 어울리는 신랑과 물방울 다이아몬드 화관을 쓴 신부의 화사한 미소가 아름답다.

“지금부터 신랑 개리 군과, 신부 김 란 양의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멘트에 떠들썩하던 식장이 조용해졌다. 신부의 사촌 오빠인 사회자는 우리말과 중국어를 번갈아 진행을 했다. 우리말을 전혀 모르는 신랑과 신랑 측 하객을 위해서였다. 나는 예식 직전에 식순과 주례사 내용을 신부를 통해 신랑에게 알려줄 것을 부탁했다. 혼주인 양가 어머니의 화촉 점화, 주례 소개, 신랑 및 신부 입장, 맞절, 예물교환, 혼인서약과 성혼선언문 선포, 주례사, 축가, 감사인사, 행진 순서로 진행되었다. 혼인 서약을 받을 땐, 내가 가장 자신 있게 구사하는 영어로 받겠다고 하며. “신랑 개리 군과 신부 김란 양은, 어떠한 경우라도 항시 사랑하고 존중하며, 어른을 공경하고 진실한 남편과 아내로서의 도리를, 다할 것을 맹세합니까?”

“Yes or No?”
“Yes!”

신랑이 큰 소리로 대답하자 식장엔 웃음꽃이 피었다. 신랑과 신부가 맞절을 하다가 이마를 부딪치고, 예물 교환 땐 반지가 바뀐 줄도 모르고 상대의 손가락에 끼우느라 끙끙대는 바람에 하객들은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다. 나는 두 사람의 행복한 혼인생활을 위한 주례사를 준비했다. ‘첫째,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둘째, 인내심을 가지며, 셋째, 절대로 다른 부부와 비교하지 말라’ 고 세 가지를 당부했다. 축가 순서가 되자 신부 친구 두 사람이 나와서 신나는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그때야 신랑 신부도 긴장이 풀렸는지 웃는 얼굴로 하객들과 함께 박수를 쳤다.

“아름다운 신부와 멋진 신랑을 낳아서 사랑과 정성으로 키워주신 부모님께 인사드리겠습니다. 행복하게 잘 살겠다는 마음을 담아 부모님께 경례!”

혼주인 부모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 포옹할 때는 무덤덤한 표정의 신랑과 대조적으로, 신부는 눈가가 붉어졌다.

“다음은 신부가 부모님과 하객 여러분에게 쓴 편지 낭독이 있겠습니다.”

예식 마지막 순서인 신랑 신부 행진을 앞두고 예정에 없던 사회자의 말에 깜짝 놀랐다. 신부가 웨딩드레스 안에서 편지를 꺼내어, 떨리는 음성으로 읽었다. 순간 떠들썩했던 장내가 숙연해졌다. 신부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편지를 읽자 양가 부모와 하객들은 손수건을 꺼내 연신 눈물을 닦았다. 중국어라고는 ‘씨에!’ 밖에 모르는 나로서는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가슴이 먹먹했다.

예식을 마치고 사회자에게 편지 내용을 물었다. 신부가 어렸을 때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간 부모와 떨어져 친척 도움을 받으면서 살았다고 했다. 편지에는 그동안 친자식처럼 보살펴 준 친척과 또한 한국에서 힘들게 번 돈으로 자신을 호주 유학까지 보내준 부모에 대한 고마움이 절절히 담겨 있었던 것이다.

신랑 신부는 호주의 브리즈번에서 신혼살림을 차린다고 했다. 앞으로 이국땅에서 외롭게 살아갈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서 눈물을 쏟아내는 것일까? 검은 마스카라가 눈물 자국에 흘러내려 식장 도우미가 신부의 얼굴 화장을 몇 차례나 고쳐 주었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기쁜 혼인 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신부 때문에 양가 부모와 하객들도 함께 울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물을 보았다. 그 눈물 속에는 신부의 피맺힌 삶의 애환이 묻어 있으리라.

신부의 모습을 보면서 불현듯 나의 결혼식이 떠올랐다. 40여 년 전 10월, 나와 아내는 고향 의 성당에서 혼배미사를 올렸다. 우리말이 어눌한 백발의 프랑스 신부님의 집전으로. 스물아홉 노총각인 나와 꽃다운 아내 나이 스물 셋이었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아내는 유난히도 눈물을 많이 쏟았다. 검정 마스카라가 흘러 내려 신부 화장이 엉망이 되었다. 아내의 울음에 장인어른을 비롯한 친지들도 눈물을 흘렸다. 순간 식장은 눈물을 훔치는 하객들로 눈물바다가 되었다. 어머니를 대신하여 많은 가족의 살림을 책임지다가 결혼한 아내와 오늘 신부의 지난했던 삶이 많이 닮았다.

지금까지 많은 예식에 참석했지만, 오늘처럼 뭉클한 일은 처음이다. 오늘의 예식은 신랑 신부와 하객들이 한마음이 되어 눈물을 펑펑 쏟다니.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감동적인 순간이다

“신랑, 신부! 행복한 앞날을 향하여 행진!”

사회자의 구령에 맞춰 새로운 미래를 향해 출발하는 아름다운 한 쌍의 젊은이에게 하객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그 순간, 예식장 천정이 양 쪽으로 열리면서 파란 하늘에서 하얀 꽃가루가 팔랑거리며, 두 사람의 머리위로 내려앉았다. 아무쪼록 이국땅에서의 첫 출발이 연착륙하기를 빈다. 오월의 햇살이 눈부시다.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1년 05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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