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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호의 역사인물 기행 [5]

인상여(藺相如)와 염파(廉頗)
“이 죄인에게 벌을 내려 주시오!”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1년 06월 03일

인상여(藺相如)와 염파(廉頗)
“이 죄인에게 벌을 내려 주시오!”


최재호 칼럼니스트·전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


ⓒ 김천신문
중국 전국시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은 초(楚)나라 사람 화씨(和氏)가 발견한 천하제일의 보물 화씨지벽(和氏之璧)을 우연한 기회에 입수하였다. 이 소문을 들은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이 사신을 보내 진나라의 15개의 성읍(城邑)과 화씨 벽을 맞바꾸자고 제안했다. 조왕(趙王)은 대장군 염파(廉頗)를 비롯한 조정 대신들과 함께 여러 날 동안, 이 문제를 놓고 의논하여 보았지만, 모두가 탐욕스러운 진왕에게 화씨 벽을 보내서는 안 된다고만 주장할 뿐, 이렇다 할 대책도 진나라에 답신을 전달할 사신조차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환관 목현(繆賢)이 “신(臣)의 문객 중에 인상여(藺相如)라는 자가 있는데, 사신으로 보낼 만합니다”라고 하였다. 조왕이 인상여를 만나 그에게 대책을 묻자 인상여는 “먼저 진나라가 성읍을 준다는 조건으로 화씨 벽을 요구하였으니, 우리가 응하지 않는다면 그 잘못은 우리 조나라에 있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화씨 벽을 주었으나, 진나라가 성읍을 주지 않는다면 그 책임은 진나라에 있게 됩니다. 이 두 가지를 저울질해 볼 때 우리가 저들의 요구를 들어주어서, 진나라가 잘못을 지도록 하면 좋은 계책이 나을 듯합니다” 라고 하였다. 조왕이 “그렇다면 누구를 사신으로 보내면 좋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다시 묻자, 인상여는 “대왕께서 마땅한 인물을 찾지 못하셨다면, 신이 화씨 벽을 받들고 가겠습니다”라고 했다.

중국 조 나라의 재상 인상여


인상여가 사신으로 진나라에 들어가 진왕(秦王)에게 화씨 벽을 바쳤다. 하지만 예상대로 진왕은 자신이 주겠다고 약속한 성읍의 양도를 미룬 체, 차일피일 시간만 끌고 있었다. 수개월이 지나도록 진왕으로부터 소식이 없다. 인상여는 “그 벽옥(璧玉)에는 원래부터 작은 티가 있는데, 저에게 잠시 돌려주시면 티가 있는 곳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라며 화씨 벽을 넘겨받은 뒤, 몰래 시종을 시켜 원상태로 조나라로 돌려보냈다. 인상여 또한 무사히 진나라를 탈출하여 조나라에 돌아왔다. 조왕은 크게 기뻐하며 그를 상대부(上大夫)의 자리에 임명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완벽(完璧)’이란 단어는 이때 생겨난 말이다. 화씨 벽이 온전한 상태로 조나라로 돌아왔다는 뜻이다.
3년이 지난 후(B. C. 280) 진왕 소양이 조왕을 조롱하려 들자, 인상여가 소양왕을 가로막고 나서서 오히려 진왕을 망신시켰다. 이때의 공로로 인상여는 염파 장군보다 품계가 높은 종1 품 상경(上卿)에 올랐다. 그러자 염파 장군은 “나는 평생을 싸움터를 누비며 공(功)을 세웠다. 그런데 입만 놀리는 인상여 따위가 나보다 윗자리에 앉다니, 내 어찌 이런 자 밑에 있을 수 있겠는가. 언제든 만나기만 하면 단단히 혼을 내주고 말 테다.” 하고 분개하였다. 염파 장군의 말을 전해들은 인상여는, 염파의 수레가 보이면 급히 자신의 수레를 돌려 그와 마주치는 것을 피하였다. 이를 보다 못한 인상여의 시종이 “대감께서는 염파 장군보다 서열이 높으신데, 염파 장군을 피하고 두려워함이 너무 지나쳐 보입니다.”라고 했다.
인상여가 말했다. “내가 염파 장군을 피하는 것은 진나라 소양왕 때문이다. 진나라가 우리 조나라를 쳐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우리나라에 염파와 나, 두 호랑이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염파와 내가 서로 다툰다면 우리 조나라의 운명은 어찌 되겠는가”라고. 이 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그간 자신의 속 좁은 행동을 뉘우치며, 가시나무 회초리를 등에 지고 인상여의 집으로 찾아가 무릎을 꿇고 “나라의 장래를 내다보지 못한 이 죄인에게 벌을 내려 주시오!” 하며 진심으로 사죄했다. 인상여가 버선발로 뛰어나와 염파를 맞아 드렸다.
역사란 ‘오래된 미래’라 했다. 예나 지금이나 혼란한 세상사에서 허공 속 독백처럼 저마다 자기 업적과 자랑만 늘어놓는 세태를 대하면서, 생사를 초월한 문경지교(刎頸之交)의 의미와 리더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1년 06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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