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한 손에는 막대 들고 한 손에는 가시 들고 막았더니 백발이 미리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는 말이 괜한 것이다.
그럴수록 간절해지는 것이 사람이다.
사람에도 여러 갈래가 있지만 황혼의 인생에는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고마운 사람’이 최고가 아닐까 싶다.
개령면 황계 2리에 살고 있는 김진섭(94세) 어르신에게 있어 옆에만 있어주어도 고마운 사람은 안사람인 박태이(94세) 어르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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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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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이 어르신도 다르지 않다. 김진섭 어르신이 마냥 좋다.
금슬이 너무 좋아 농을 던졌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재미있다. 박태이 어르신이 김진섭 어르신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 쉽게 인정할 이야기가 아닌데 너무 쉽게 받아들였다.
두 어르신이 백년가약을 맺은 것은 열아홉살 때였다. 요즘으로 치면 고등학생이고 미성년자다. 하지만 그때는 풍습이 그랬다.
김진섭 어르신은 처음에 결혼을 거부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입 하나 더 들인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부친으로부터 ‘불효’라는 호통을 듣고서야 얌전히 신부로 맞이했다.
박태이 어르신은 감문면 월류에서 시집 왔다. 믿을 것이라고는 남편 하나뿐이었다.
그래서였는지 김진섭 어르신을 많이 의지하고 따랐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김진섭 어르신은 무척이나 박태이 어르신을 아꼈다.
슬하에 2남 4녀를 두었고 지금은 모두 각자의 삶을 꾸렸다.
연로한 부모를 위해 매주 찾아와 반찬을 챙기고 먹거리를 챙긴다. 딸이 넷이나 되니 교대로 챙길 수 있어 좋다.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셋째딸은 수시로 본가를 찾아 온다.
남편이 아내를 챙기고 아내가 남편을 위하고 자식이 부녀를 봉양하니 근심걱정이 없다. 그 덕분일까?
94세라는 나이에도 김진섭 어르신은 정정하다. 박태이 어르신은 하체 거동이 힘든 것 빼고는 큰 불편이 없다. 매일 청소를 하고 드라마를 즐긴다.
김진섭 어르신은 최근 들어 성경을 직접 옮겨 쓰고 있다. 덕분에 치매약을 끊고 오히려 건강해졌다.
결혼 50주년을 금혼식이라고 한다. 60주년은 회혼식이다. 두 어르신은 75주년이 되어 금강혼식을 맞이했다.
금강석은 다이아몬드의 다른 말이다. 금강혼식은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고 단단함을 의미한다. 초혼이 성행했던 시절이니 75주년이 가능했다. 결혼이 늦은 지금 세대에게 금강혼식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두 어르신의 금강혼식이 더 뜻깊다.
김진섭 어르신이 박태이 어르신에게 옷 한 벌을 해 주었다. 나이가 들수록 옆에 있어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이다.
“바라는 거 없어요. 지금처럼 옆에만 있어주면 됩니다.”
짧은 말에 많은 감정이 들어있다.
이런 부모를 바라보는 셋째 딸의 심경은 또 다르다.
“지금 그대로만 있어 주면 됩니다. 가실 때 너무 오래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고 하늘이 허락한다면 같은 날, 아니면 비슷한 시기에 귀천할 수 있으면 하는 이야기를 형제자매와 자주 합니다.”
길지 않은 말 속에 자식된 마음과 부모를 위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셋째딸의 바람이 이루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두 어르신이 금강혼식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맞이 했으며 서로에 대한 진실된 마음은 확인할 수 있었다.
이처럼 장수하는 것도 부부간에 속상한 일 없어 서로를 위하고 살아서였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김진섭 어르신은 오늘도 박태이 어르신을 위해 밥을 짓는다. 찬거리는 딸들이 준비해 놓으니 밥만 하면 된다. 이제는 밥 짓는 전문가가 됐다고 자신하고 박태이 할머니는 웃으면서 “자기보다 바깥양반이 밥을 더 잘한다”고 말한다.
서로를 위하는 두 어르신이 모습이 개령면을 넘어 김천 전역에 알려져 귀감이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