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과 같은 명절이 오면 더 힘들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자산동 용파사거리에서 지좌동 방향 도로 옆 작은 골목 안에 있는 보성 떡방앗간의 할아버지와 손자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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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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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섭 할아버지의 나이는 84세이다. 호적이 아닌 실제 나이는 86세라고 한다.
할아버지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겼다. 담담히 이야기를 풀어 내던 중 작년 10월에 작고한 할머니를 떠올리자 목이 잠기고 눈빛이 촉촉해졌다.
돌아가신 할머니는 손자를 지극정성으로 돌보셨다. 손자 사랑에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구분이 없지만 유독 사랑을 쏟았다.
5살부터 키워온 손자는 지체장애 2급이다. 이제는 31살이 되었다.
오롯이 할아버지의 몫으로 남았다.
할아버지는 손자가 장애인이라고 차별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교육청에 연락하고 찾아가는 것을 감수하면서 일반 학교를 보냈다. 지금은 경북보건대로 이름이 바뀐 경북과학대까지 보내 졸업장을 받았다.
31살이 된 지금은 복지관을 다니고 있다. 코로나로 복지관 운영이 중단됐을 때는 하루 종일 방앗간에서 같이 생활했다.
직접 밥상을 차렸고 라면이 먹고 싶다고 하면 라면을 끓여주었다. 그 덕분인지 손자가 통통해졌다.
비만이 걱정되어 이제는 매일 같이 운동을 다닌다.
“옛날 같지가 않습니다. 상권이 죽어서 손님이 없고 손님이 있다고 하더라도 떡을 만드는 힘든 일은 하지 못합니다. 소일거리 삼아 기름만 짜고 있습니다.”
떡 방앗간인데 떡을 만들지 못하니 수입이 없다. 겨우 용돈이나 하면 다행이다.
노령연금을 받아 겨우 버티고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답답한 마음에 자산동주민센터에 기초수급자 신청을 했지만 탈락됐다.
아이러니하게도 할머니의 손자 사랑이 이유다. 돌아가신 할머니는 사후에 손자에게 보탬이 될까 남은 돈을 모두 손자 앞으로 해 놓았다.
기초수급자로 선정이 되었더라면 한 시름 놓았을텐데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다.
할아버지는 아직 정정하다고 말한다.
겉보기에는 떡 방앗간을 운영하면서 기름을 짜고 있으니 맞는 말 같다. 하지만 매일 먹고 있는 약이 한 주먹이다.
게다가 고령이다.
손자 나이가 서른 하나이니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다. 그 모습을 같이 하고 싶지만 앞날은 알 수가 없다.
이럴 때 일수록 작년에 세상을 버린 할머니가 생각난다.
안 먹고 안 쓰며 손자를 위해 돈을 모았다. 그래도 셋이 생활하는 것이 좋았다.
가끔씩 목이 잠기고 눈빛이 촉촉이 젖은 할아버지 눈에는 단란했던 그 때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나이가 있다보니 단골손님이 모두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월 앞에 장사는 없어요. 하지만 저에게는 손자가 있습니다. 앞날이 창창한 손자를 위해 힘을 낼 생각입니다. 소망이 있다면 손자와 오래 오래 같이 살고 싶습니다.”
할아버지의 소망처럼 손자와 함께 걱정 없이 오래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또 한가위처럼 넉넉한 마음으로 보성 떡 방앗간 할아버지와 손자에게 손을 내미는 아름다운 이웃이 많이 생기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