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에 등을 기대고 가부좌를 틀었다.
따사로운 빛살이 어깨며 머릿결을 쓰다듬는다.
“가만히 있어, 이렇게 좀 쉬는 거야” 속삭이는데 감미로운 그의 손길에 끌려 담요 한 장 꺼내와 아예 누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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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지나가는 구름에 턱을 괴고 눈부신 가을 하늘을 올려다본다. 바람도 나무 뒤에서 잠시 쉬어가고 나뭇잎도 햇살 위에 잠시 기대어 앉는다.
저 먼 남쪽 바다에서 풀벌레 한 마리가 가을을 끌고 왔을까
쓰르람 쓰르람 매미가 울고 간 자리에 찌르르 찌르르르 풀벌레가 노래한다.
이사 오길 참 잘했다.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성냥갑 같은 아파트 숲에 끼어 어두워지면 블라인드부터 내려야 했었는데 이제 그 불편함에서 해방되었다.
그 많던 짐들도 대부분 정리하고 왔으니 이제 겨울옷에서 봄옷으로 갈아입듯 나풀나풀 가벼워졌다.
자꾸자꾸 채워야만 행복해지는 줄 알았던 시간, 머리에 이고 지고 살았던 무거운 짐들을 벗고 나니 화장을 지운 듯 홀가분해졌다.
물건이 주인이 아니라 내가 진짜 주인인 집, 물건들이 비워준 자리만큼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다.
그래서 법정 스님은 ‘버리면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하셨나 보다.
소파를 들어낸 자리에 작은 테이블을 놓고 차 한 잔의 여유를 올려놓았다.
그 많던 그릇들 대신 가벼워진 싱크대와 들꽃 한 송이를 꽂아놓았고 꼭 필요한 책들과 나무 책상을 가지런히 놓았다.
무엇을 싸놓았는지도 모르면서 봉지마다 얼려두었던 냉장고도 치우고 한눈에 금방 찾을 수 있는 작은 냉장고로 바꾸었다.
몇 년째 입지 않은 옷들과 가방, 신발들도 반은 버리고 반은 나누어주었다.
미니멀 라이프, 여백의 미......
빽빽했던 공간들 사이로 빛이 들고 바람도 숨을 길게 쉬었다 간다.
TV를 보는 대신 풀벌레의 이야기를 듣는다.
어떤 날은 달도 별도 의자에 같이 앉아 밤새 듣는다.
벌써 해 시계가 4시 반은 되었나 보다.
잠자리 한 마리가 한들한들 춤추며 지나가고 쉬었던 꽃들이 다시 일어난다.
나무들은 뿌리 밑에 물감 통을 달고 사는 걸까.
저마다 다른 빛깔로 가을을 채색한다.
내게도 햇살 한 줌 스미었으니 따뜻한 온기로 다시 피어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