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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호의 역사인물 기행[14]

목은 이색(李穡, 1328~1396)
“반가운 매화(梅花)는 어느 곳에 피었는가.”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2년 03월 03일
목은 이색(李穡, 1328~1396)
“반가운 매화(梅花)는 어느 곳에 피었는가.”

최재호, 칼럼니스트/전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

ⓒ 김천신문
우수(雨水)를 지나면서 하얗게 흩날리는 눈발 사이로 그윽한 매화 향을 실은 남도의 봄소식이 하나둘씩 들려오고 있다. 매화는 추운 날씨를 이겨내고 이른 봄에 꽃망울을 터트리면서, 예로부터 선비들의 사랑을 받아온 꽃이다. 옛 선비들은 이른 봄 매화꽃을 보기 위하여 눈밭을 가로지르고 설산을 헤매는 이른바 답설심매(踏雪尋梅)에 빠져들었다. 또한, 음력 2월을 매견월(梅見月)이라 하여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리는 날을 기다려 매화음(梅花飮)을 즐겼다.

‘매화(梅花) 옛 등걸에 봄철이 돌아오니/ 옛 피던 가지에 피엄 즉도 하다마는/ 춘설이 하 분분하니 필동말동 하여라’. 조선 시대의 가사집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실려 있는〈매화타령〉이다. 이처럼 옛 선비들은 매화나무를 소나무, 대나무와 더불어 세한삼우(歲寒三友)로 부르며 아끼고 사랑하였다. 우아한 자태와 은은한 향기를 가진 매화는 꽃말 자체가 충실, 고결이다. 매화는 장원급제한 선비가 평생을 춥게 사는 한이 있어도 그 향기를 팔지 않겠다(梅一生寒不梅香)고 임금께 충성을 맹세하는 충절의 꽃이다. 사육신의 한 명인 매죽헌(梅竹軒) 성삼문(成三問)은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실패하여 처형되는 순간에도 자신의 절개를 굽히지 않았다.

고려말 삼은(三隱)의 좌장이었던 목은(牧隱) 이색(李穡)은 그간의 막역했던 동료 이성계(재위 1392~1398)의 갑작스러운 배신과, 아끼던 제자 정몽주(鄭夢周)와 정도전(鄭道傳) 간의 죽음을 불사한 싸움을 힘없이 지켜보아야 했던 고려의 마지막 유신(遺臣)이다. 그는 기울어 가는 왕조의 운명을 석양으로, 나라를 지키려는 우국지사를 매화로, 그것을 뒤집으려는 무리를 구름에 빗대어, 자신의 참담한 심정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백설(白雪)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흘에라/ 반가운 매화(梅花)는 어느 곳에 피었는가/ 석양(夕陽)에 홀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

조선 중기 매화 사랑에 각별한 애정을 보였던 인물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이다. 그는 생전에 100수가 넘는 매화시(梅花詩)를 남기며, 스스로 ‘매화를 참으로 아는 사람(眞知梅者)’임을 자처하였다. 그는 생전에 그의 정인(情人) 두향(杜香)이, 이별의 정표로 준 매화분(梅花盆)을 극진히 사랑하였다. 퇴계는 평소 그 매화분을 상에 올려놓고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말을 걸고 대작을 즐겼다. 퇴계가 말년에 병이 든 뒤에는 매화분에 자신의 누추한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며, 매화분을 다른 방으로 옮기게 하였다. 숨을 거두기 직전에는 “매화분에 물을 주라”는 말을 남가고 눈을 감았다고 한다.

퇴계와 동갑내기인 남명 조식(曹植, 1501~1572) 역시 남명매(南冥梅)라는 특유의 이름을 남길 정도로 매화에 일가견이 있었다. 이익의 《성호사설(星湖僿說)》에는 남명 문하의 두 제자 사이에 일어난 매화에 얽힌 일화가 있다. ‘성주(星州) 땅에 정구(鄭逑)라는 선비가 자신의 뜰에 매화를 여러 그루 심어놓고 백매원(百梅園)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어느 봄날 이곳을 지나던 최영경(崔永慶)이란 큰선비가 동자를 시켜 도끼로 매화나무를 모두 찍어 내라고 하였다. 이유는 이른 봄 눈 속에서 피어야 할 매화가 너무 늦게 피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한쪽은 대쪽같았고 또 한쪽은 두루 원만하기를 바랐던 두 선비의 성격을 매화로 대변하여 주고 있다.

지금은 매화의 지조를 흠모하거나, 매화와 사랑에 빠졌다는 사람도 없다. 달 밝은 밤에 보는 월매(月梅), 눈 속에 피어나는 설중매(雪中梅), 옥같이 고운 옥매(玉梅)의 향기(香氣)에 취하여 매화시를 읊조리는 풍류도 사라졌다. 그저 매화(梅花)에 꽃을 강조하면 매화나무, 열매를 강조하면 매실나무가 되는 메마른 세상이다. 눈 속에 피어날 매화를 찾아 들메끈을 조인다.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2년 03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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