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는 1960년대 중반 이래로 히피와 록 음악의 해방 구였다.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한 미국 서부 해안이 이 시절 록 음악의 황금기를 일구었던 중심지였다는 것도 두말할 필요가 없는 사실, 오죽하면 웨스트코스트 록(Weastcoast Rock)이라는 용어까지 있을까? 그런 면에서 본다면 1969년에 열린 금세기 최고의 록 페스티벌 우드스탁이 동부 뉴욕주에서 펼쳐진 것은 다소 의외였다. 캘리포니아 잼은 바로 이런 생각에서 출발해 기획된 페스티벌이었고 그래서 ‘우드스탁에 대한 서부의 대답, 혹은 샌프란시스코의 대답’ 이라고 불린다.
1974년 4월 6일 샌프란시스코 온타리오 모터 스피드웨이 에서 펼쳐진 제1회 캘리포니아 잼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 있는 페스티벌 이었다. 이글스, 딥 퍼플, 어스윈드&파이어, 블랙 사바스 등이 참여했던 캘리포니아 잼은 무려 20 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이것은 캘리포니아 잼이 단 하루 동안 치러진 행사였다는 것을 감안 하면 3일 동안 최소 45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던 것으로 추산되는 우드스탁 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물론 캘리포니아 잼이 규모면에서 최대의 페스티벌은 아니었다. 우드스탁 도 있었고, 1973년 60만 관객을 동원한 왓킨스 글렌 서머 잼 페스티벌과 단일 공연으로도 3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것으로 추산된 롤링 스톤즈의 알타몬드 공연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 공연 들이 무료 공연의 성겪 이었던 것과 비교해서 캘리포니아 잼은 168.000장의 표가 팔려나간 유료 공연으로는 당대 최고의 행사였으며 무엇보다도 공연기간 동안 사망과 폭력, 체포 등 단 한 건의 불미스러운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을 만큼 평화스러운 축제였다는 점에서 여타의 록 페스티벌에 비해 상대적인 비교 우위를 갖는다.
그로부터 4년 후인 1978년 3월 18일, 제2회 캘리포니아 잼이 개최됐다. 에어로스미스, 포리너, 테드뉴전트, 하트, 산타나, 러시 등 최강의 라인업으로 4년 전 바로 그 장소에서 다시 개최된 제2회 캘리포니아 잼은 모든 면에서 1회 행사를 뛰어넘는 최대 규모의 축제였다. 220.000장의 유료표가 팔려나갔고 30만 명이 넘는 관객이 동원됐으며 300만 달러가 넘는 판매수익을 올렸다. 물론 두 번째 캘리포니아 잼 역시 1회에 이어 2회 연속 무사고 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