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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 방초정(芳草亭)

민경탁 시인·수필가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2년 04월 21일

방초정(芳草亭)


민경탁 시인·수필가


ⓒ 김천신문
이태백이 고개를 푹 숙이고 붓을 내던지게 한 시가 있다. 그보다 나이 세 살 어린, 당 나라 시인 최호(崔顥 704~754)의 시「등황학루」다. 이 시는 역대 중국의 칠언시 중 최고봉이라 일컬어진다. 최호는 시를 잘 지어 현종 때 진사가 되었는데 일찍이 각지를 떠돌아 널리 자취와 시를 남겼다. 젊어선 시풍이 경박했으나 늘그막엔 기개가 있는 시를 썼다.

이백이 황악루에 올라 한 잔 하고 눈앞의 경치를 보며, 시 한 수를 읊으려다가 이 시를 발견하곤 고개를 푹 숙이며 붓을 내던진 것이다. 이 시에 “강 중의 앵무 섬엔 향기로운 풀 우거졌네(芳草萋萋鸚鵡州)”란 구절이 있다. ‘방초’는 꽃다운 풀. ‘앵무주’는 중국 삼국시대 억울하게 살해된 예형이란 사람이 묻힌 섬. 양쯔강의 황악루는 악양루, 등왕각과 함께 중국 강남의 3대 누정으로 꼽힌다. 최호의 「등황학루」에 충격을 받아 이태백이 「등금릉봉황대」를 썼다. 김천의 황학산과 연화지 봉황대는 이런 것에서 취한 이름이다. 직지사 경 내에는 황학루가 있다.

한국의 누정은 경상도에 가장 많이 있다. 그 다음에 전라도, 그 다음에 충청도 순으로 분포돼 있다. 영남의 누정들은 주로 은거와 강학, 조상 추모와 수양의 공간으로 쓰여 왔는데 김천에는 현존 30여 동이 있다. 현존 김천의 누정 가운데 가장 역사 깊은 것이 구성에 있는 방초정이다(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2047호).
조선 중기 구성 원터마을 태생의 부호군 이정복(李廷馥 1575~1637)의 호가 방초(芳草)다. 그는, 선조의 무덤 아래 방초가 뒤섞여 푸른 곳에 정자를 세우고 ‘방초정’이라 이름 하였다. 창문 앞에 푸른 풀을 살린, 주돈이의 일반적인 뜻을 담은 이름이다. 이 방초정 중건 상량문에도 ‘앵무주’란 말이 나온다. 고소설 춘향전에서는 광한루의 봄 풍경을 “녹음방초 우거져 금잔디 좌르륵 깔린 곳”이라 묘사한다. ‘방초’라는 말은 만물과 봄을 같이 누린다는 마음을 담고 있다.

방초정은 1625년(인조 3)에 지었는데 1788년(정조 12) 후손 이의조(李宜朝)가 현 위치로 이전, 중수한 문화유산이다. 위치가 마을 공간과 바깥 공간이 만나는 곳이어서, 지역 공동체적 정신을 다분히 지니고 있는 건축유산이라 할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우리 민족의 쓰라림과 뼈아픈 가족사를 안고 있다. 이정복이 17세 된 화순최씨와 결혼했는데 신행하기 직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신부는 죽더라도 시가에서 죽으리라는 생각에 부항 대야리에서 구성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시가 식구는 이미 용호리 능지산으로 피란을 간 뒤였다. 능지산 지곡리(속칭 못골)에 이르렀을 때 왜군이 들이닥쳤다. 이에 신부는 '깨끗하게 죽느니만 못하다'하고 명주옷으로 갈아입은 뒤 못에 몸을 던졌다. 종 석이도 뒤따라 투신했다. 최씨의 가족들도 비보를 접하고 못에 투신했다. 후세 사람들은 이 못을 '최씨담'이라 불렀다. 

방초정

방초는 부인이 그리워 울고 또 울었다. 나이 어렸던 신부를 그리워하며 여러 해 울고 또 울었다. 누정을 지어 '방초정'이란 편액을 걸었다. 뒷날, 후손을 이어야 한다는 집안 어른의 종용에 결국 그는 의성김씨와 재혼했다. 하지만 첫 부인의 절의를 잊을 수 없어 방초정 앞에 연못을 조성, '최씨부인 연못'이라 이름하여 지금껏 그 부인과의 인연을 기리고 있다. 먼 뒷날 연못 준설 공사 도중 ‘충노석이지비(忠奴石伊之碑)’가 발견돼 또 한번 세인을 놀랬다. 이 비석은 지금도 최씨부인 정려각을 지키고 있어 보는 이를 숙연케 한다.

중국의 최호보다 조선의 이정복이 윗길이다. 최호는 도박을 좋아하고 주색에 빠져 미인을 골라 아내를 삼았는데 서너 번 갈았다. 여성 편력이 복잡 난무하였지만 이정복은 그러하진 않았다. 자질이 온화 순수 방정했다고 역사에 전한다.
방초정에는 스무 개가 넘는 시판(詩板)이 걸려 있다. 그만큼 조경이 뛰어나고 내력이 유별하단 의미를 전하는 것이리라. 이 중에 한 수를 읊어본다. “올뱅이 도랑에 고기잡이 불이 밤새도록 밝으니/기러기가 달인가 의심하여 모래밭에 떨어지는구나/돌아갈 때 사람들이 강남의 경치를 물으면/방초 높은 정자가 가장 유명하다고 하여라”(작자 미상,「방초십경」중 제5경). 이 고장이 중앙 정치세력의 노론과 교류, 우암 송시열이 유람했던 배경이었음으로 인해 은진 송씨의 시판이 다섯 개나 있다.

방초정 건축 구조에는 천지인 사상과 음양 조화, 사계절 변화가 반영돼 있다. 동양의 우주관과 선비문화 창성, 공동체 정신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는 해석한다. 또한 방초정 연못에는 유교적 우주관이 담겨 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天圓地方)는 우주관이. 방초정 난간에서 내려다보면 정방형 연못 가운데에 작은 섬 두 개가 보이는데 이는 해와 달을 가리킨다고 한다. 또는 최씨부인과 여종 석이를 가리킨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방초정은 환경친화적 건축물이다. 최씨부인 연못이 수질정화 기능을 갖춰, 마을 생활하수와 빗물을 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 공동체를 위한 배려의 환경친화적 건축유산이다. 인근의 숭례각에서는 후손 이의조가 강설하던 가정예절 해설서『가례증해』와 이수호의 소학 해설서『소학증해』판목을 보관하고 있다. 이는 황악산 느티나무로 만든 것인데 판각기술이 우수하고 보존 상태가 양호해 서지학 연구의 귀중한 기록유산이 되고 있다.
방초정 일대는 복합문화 콘테츠의 터전이다. 민족의 아픈 역사와 가슴 찡한 가족사 이야기, 누정의 건축미, 연못의 조경미 뿐 아니라 선조가 남긴 인쇄술유산까지 연계돼 있으니. 인근 황남구곡의 선비문화유산과 연결하면 매우 다채로운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역사문화 콘테츠의 고장이다.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2년 04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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