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반 에어 서플라이(Air Supply)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몰랐다. 오죽하면 히트 서플라이라고 불렀을까? 1976년 호주에서 결성된 에어 서플라이는 활동하면서 상당히 많은 멤버들의 부침을 겪었고 한때는 7명의 대식구를 거느린 대형 그룹의 형태를 띄기도 했지만 역시 그래험 러셀(Graham Russell)과 러셀 히치콕(Russell Hitchcok)두 사람이 핵심이었으며 이 둘의 듀오 형태라고 봐도 무방하다.
에어 서플라이는 1980년 미국 시장 데뷔 앨범인「Lost In Love」가 200만장이 넘게 팔려나가고 「All out of love」가 싱글 차트에서 선전을 보이면서 팝 씬의 증심으로 뛰어들었다. 이듬해 발표된 2집 앨범「The One That You Love」는 빌보드 싱글 차트 1위곡인 앨범 동명 타이틀 트렉과 5위에 오른 「Here I am」을 배출했으며 이후 「Sweet dreams」,「Even the nights are better」,「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등의 Top10 싱글을 연속해서 터트리면서 에어 서플라이의 인기가도는 거칠 것이 없었다. 물론 우리에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에어 서플라이의 음악이 한국형 발라드였다는 사실이다.
1982년 5월 3일,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에어 서플라이가 첫 번째 내한공연을 펼쳤다. 5월 4일까지 이틀간의 일정으로 치러진 에어 서플라이의 내한공연은 당시 톱스타가 최전성기에 한국을 찿았다는 점에서 아주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며 그만큼 큰 관심을 모았다. 국내에서는 사상 최초로 대형 체육관에서 펼쳐진 공연이라는 기록을 남겼으며 그에 걸맞게 당시까지 내한공연 사상 역대 최다 관객동원의 기록을 세웠다.
에어 서플라이는 19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전성기를 넘긴 듯 보인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한국인들의 사랑은 식을 줄 모른다. 그들의 히트 곡 들은 여전히 대표적인 스테디 셀러로 끊임없이 라디오 전파를 타고 올드 팝 팬들에게 식을줄 모르는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에어 서플라이 역시 그것을 알았는지 1982년 이후 여러 차례 한국을 찾아 공연을 펼치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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