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시 뮤직(Roxy Music)은 1970년대의 록 씬에서 빼 놓을 수 업는 중요한 그룹이다. 록시 뮤직이 1972년 5월 30일, 영국 링컨셔에서 있은 그레이트 웨스턴 익스프레스 페스티벌 무대를 통해 본격적인 메이저 데뷔 무대를 장식했다.
두 명의 브라이언(Brian Ino, Broyan Ferry)이 이끌었던 록시 뮤직은 1972년 또 한 명의 핵심인 필 만자네라(Phil Manzanera)가 합류하면서 마침내 우리가 아는 록시 뮤직의 라인업을 완성했다. 그리고 그 해 5월 30일, 메이저 대뷔 무대를 장식한 것이다. 록시 뮤직은 흔히 아트 록 그룹으로 분류되지만 사실 이들의 음악을 한 단어로 정의내리기는 어렵다.
기본적으로 아트 록의 성향을 보이기는 했지만 록시 뮤직은 한편으로는 데이빗 보위에 의해 주도되던 당대의 인기 장르 글램 록의 경향도 두드러졌고 무억 보다도 브라이언 이노에 의해 선도되던 형식파괴와 실험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여타의 그룹이 따라올 수 없는 탁월함을 보였다. 그래서 록시 뮤직은 록 음악사에서 가장 실험적인 음악집단으로 꼽혔으며 아방가르드의 전형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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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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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형식과의 미학을 신봉했던 혁신주의자 브라이언 이노와 보다 팝 지향적이었던 브라이언 페리의 개성 차이는 한편으로는 록시 뮤직의 강점이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기도 했다. 브라이언 이노는 2집 앨범「For Your Pleasure」발매 직후 밴드를 떠났고 이후 록시 뮤직 최고의 명반으로 꼽히는 「Avalon(여기에는 다소의 이견이 있을 수도 있다)」을 끝으로 ‘더 이상은 없다’를 외치며 끝내 해산했다. 물론 그 이후로도 브라이언 페리는 솔로로 독립해 뛰어난 활약을 펼지고 있고 브라이언 이노는 유투, 데이빗 보위, 존 케일 등의 거물 뮤지션들과의 공동 작업을 통해 자신만의 실험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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