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6월 14일은 토요일이었다. 오전 11시 45분 LA발 KAL 005편이 김포공항에 조착했다. 당초 도착 예정 시간이었던 아침 7시 30분을 4시간도 더 넘긴 시간이었다. 12시 35분 세관을 통과한 금발의 미소년이 드디어 공항 입국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순간 여기저기서 취재진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일제히 터졌고 공항은 흥분으로 술렁였다. 당대의 하이틴 스타 레이프 가렛(Lief Garrett)이 드디어 서울에 온 것이다.
이날 레이프의 일정은 빠듯했다. 도착 당일 7시 30분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10시간이 넘는 비행 당일 공연을 갖는다는 것이 애초부터 무리한 일정이었지만 당시는 레이프 가렛 같은 대스타를 한국에서 보기가 쉽지않던 시절이라 그 정도는 용서 되어야만 했다.
|
 |
|
ⓒ 김천신문 |
|
저녁때가 되자 레이프 가렛의 공연이 펼쳐질 남산 숭의음악당 근처는 그르 보기 위해 몰려든 소녀팬들로 가득 찼다.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들의 행렬은 도마뱀처럼 또아리를 튼 채 음악당 입구에서부터 운동장을 가로질러 학교 정문까지 길게 늘어섰고 근처 육교 위에서는 레이프 가렛의 해적판 테입과 그의 얼굴이 새겨진 손수건, 책받침, 사진 등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었다. 이미 충분히 예상되었던 대로 공연은 지체되었고 예정보다 1시간 20분늦은 8시 50분쯤 그룹 무당의 오프닝 공연을 시작으로 드디어 레이프 가렛 내한 공연의 막이 올랐다.⌜Same goes for you⌟로 시작된 레이프 가렛의 공연은 1시간후⌜I was made for dancing⌟으로 끝났다. 특히 당시 청춘의 찬가였던⌜I was made for dancing⌟을 부를 때는 모두가 일어나서 박수치며 노래를 따라 불렀고 여기저기서 “레이프 레이프!”를 연호하는 환호성이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남산의 초여름이 금발의 미소년과 그의 이름을 연화하는 소녀들의 함성속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신문들은 1969년 클리프 리차드 내한공연 때도 그랬던 것처럼 일부 흥분한 여성들이 속옷을 벗어 던졌다는 선정적인 기사를 실었다. 당시 남산 숭의음악당에 모여 레이프를 연호했던 소녀들도 이제 어느덧 손녀와 손자를 둔 환갑의 나이를 넘어선 할머니 되었겠다. 변한 것은 소녀들만은 아니다. 누구도 세월을 비껴갈 수 없는법, 당시 18살 금발의 미소년이던 레이프 가렛도 이제는 대머리와 흰 머릿결을 흩날리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미소년의 이미지를 간직하고 싶다면 혹시 우연이라도 지금의 레이프 가렛의 모습을 보지 않은 것이 좋겠다. 이후 레이프 가렛은 2010년 5월 8일부터 3일간 30년만의 내한 공연을 갖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