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김천신문 |
일제의 경성방송국이 해방을 맞아 1947년 호출부호 HLKA의 서울중앙방송국(오늘날의 KBS)으로 태어났다. 전속가수를 모집했는데 원방현(본명 원구현), 옥두옥(본명 김문찬), 송민도, 김백희 등이 뽑혔다. 금사향(본명 최영필)은 이듬해 초 추가모집에서 뽑혔다. 이들이 서울중앙방송국 1기 전속가수들이다. 이 중에 송민도와 금사향이 가수로서의 명성을 가장 크게 얻은 것으로 보인다. 해방 직후 자재와 시설 부족으로 레코드계가 제대로 활약하지 못하자 이들은 방송가요로써 새로운 음악 보급에 큰 역할을 했다.
하늘(旻;하늘 민) 길(道:길 도)이란 이름의 송민도 가수가 지난달 28일 하늘길 끝 별이 되었다. 그녀는 1923년 평남 용강에서 태어나 이화여고녀(현 이화여고)를 졸업, 김대중 대통령의 이휘호 여사와 동기다. 만주 용정, 중국 연길에 살다가 해방을 맞아 서울로 돌아왔다. KBS 경음악단장을 지낸 트럼보니스터 송민영의 누이다. 송민도는 백진주란 또 다른 예명도 썼다.
이 가수에게 맨 먼저 곡을 준 작곡가는 손목인과 함께 서울중앙방송 경음악단을 이끌고 있던 박시춘이다. ‘고향초’(김다인 사, 박시춘 곡. 1947)란 곡이다. 오케레코드사에서 송민숙이란 이름으로 음반이 발매됐다. 6·25 동란으로 인한 실향민들이 애환을 달래며 많이 부르고, 뒷날 선배 가수 장세정이 리메이크해서 인기를 더 모았다.
1952년 손석우 작곡가가 송민도에게 ‘눈물의 왈츠’란 곡을 주었다. 이 노래는 당시 미국 스탠다드 팝의 대표 여가수 패티 페이지의 히트송 ‘당신의 결혼식에 갔습니다(I want to your ewdding)’를 손석우가 번안한 곡. 그해에 백영호 작곡가도 ‘애수’(한산도 사, 유니온레코드사, 1952)란 노래를 송민도에게 주었다.
|
 |
|
송민도 가수 히트송 음반재킷<지구레코드공사, 1974> |
|
송민도는 삼 년 뒤 ‘나 하나의 사랑’(손석우 사/곡, 1955)을 서울중앙방송 전파를 통해 알린 뒤 곧장 음반(오아시스레코드사)으로 내어 히트하며, 당대의 대표적 여가수로 부상했다. 가요의 인기 여파로 영화 “나 혼자만이”(박계주 소설 원작. 조미령·김진규 주연, 한형모 감독, 1958)가 탄생하며 그 주제가가 되었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히트 가요가 영화화한 최초의 작품이다. ‘나 하나의 사랑’은 멜로디가 단순하지만 연심에 젖은 이의 정서를 고상하게 전달하는 노래로서 송민도의 대표곡이 되었다. 춘천 남이섬에 노래비가 있다.
송민도는 안다성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방송 드라마 주제가를 부른 가수다. 1955년 12월부터 시작한 라디오 드라마 “청실홍실”의 주제가다. 안다성과 송민도가 교환창으로 부른 ‘청실홍실’(조남사 사, 손석우 곡)은, 라디오 방송가요로써 반향이 매우 컸다. 영화로 리메이크 될 때에는 현인과 백일희가 불렀다. 송민도의 음색은 톤이 굵은 허스키 알토, 쭉쭉 뽑아내는 창법이 시원스럽다.
송민도 가수에게 가장 많은 곡을 준 작곡가는 나화랑이다. 1954년에 벌써 송민도는 나화랑으로부터 ‘내일이면 늦으리’(손로원 사, 나화랑 곡, 킹스타레코드사)를 받아 부른 터였다. 1956년 3월부터 손석우와 나화랑이 KBS 전속악단을 6개월씩 교체 지휘하고 있었는데, 송민도 가수를 두고 두 작곡가는 선정 경쟁이 치열했던 것으로 전한다. 송민도는 나화랑으로부터 ‘서울의 지붕 밑’(1955), ‘푸른 꿈이여 지금 어디’(1955), ‘행복의 일요일’(1955), ‘웬 일인지’(1956), ‘목숨을 걸어 놓고’(1956), ‘서귀포 사랑’(1956), ‘하늘의 황금마차’(1957), ‘해당화 피는 마을’(1957), ‘사랑은 즐거운 스윙’(1960) 등등 30곡을 받아 불렀다.
그 송민도 가수가 미국의 한 호스피스 병동에서 100세를 한 달여 남겨놓고, 지난 1월 하늘나라로 간 안다성 가수 뒤를 따라갔다. 올해 초 두 가수가 하늘나라의 별이 되었다. 나란히 하늘나라에서도 우리의 생활사적, 역사적 깊은 울림을 전하는 진원지에 있을 것이다.